문득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너와 나의 끝. 그리고 이 기나긴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이다.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오늘도 예보는 어긋났다. 남자가 별똥별을 기다린 탓일 수도 있다. 남자가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아니 하늘을 보고 별똥별을 기다리지만 않았어도 그날 떨어지기로 한 별똥별은 떨어지며 많은 이들에게 환희의 순간을 선물하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였을 수도 있다. 남자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면 얄궂게 빗나가곤 했다.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하기엔 야속하리만큼 지속적인 반복이었다.
“오늘도 꽝이네.”
남자는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사람처럼 아쉬워했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심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덩그러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왠지 검지도 푸르지도 않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 남자는 입고 있던 재킷의 옷깃을 여미었다.
남자의 도전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몇 년째 사실상 백수로 지내고 있는 것도 남자에게도 남자의 가족에게도 가시방석과 같은 나날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때 남자는 항상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제2외국어인 중국어 테이프를 들었다. 일 년 그리고 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깊은 산 속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항상 2차 면접까지는 무난히 통과했으나 결국엔 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남자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남자는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어디로든. 항상 중국어가 나오던 MP3에 잔잔한 발라드로 감성을 채웠다.
남자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끝이 어딘지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은 홀로 걷기 좋은 곳이었다. 숨을 가슴 가득 품어보았다. 가슴이 부푼 모습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어깨는 좁아졌고 초라해졌다.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가슴가득 품고 있던 공기가 일순간 밖으로 품어져 나오니 가슴이 후련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더욱 깨끗한 공기가 남자의 양 볼을 스쳤다. 쉬엄쉬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고 다음날 있을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그저 끝이 보일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남자가 치러야할 시험이자 강박이었다. 그것쯤은 별것 아니었기에 남자는 더욱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찌감치 관호산성이 보였다. 늠름하고 호젓한 자태가 남자와는 다르게 당당해보였다.
치열함이 감돌던 곳. 남자도 항상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이곳의 고요함에서 소리 없는 갈등이 느껴졌다. 두려움에 떠는 많은 사람들의 비명과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함성이 뒤섞였을 이곳.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치열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성과 없이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남자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시금 어깨를 펴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다음날을 걱정했다. 다음날을 걱정하고 나면 그 다음날이 걱정이었다. 남자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늘 걱정의 반복이었다. 그런 남자가 여유를 찾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날이 흐려져도 어두워져도 걱정하지 않았다.
발로 흙을 비벼보았다. 이렇게 흙길로 난 길은 누가 만든 것인지 궁금해졌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 길 자체가 표지판인 셈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다른 길로 빠질 염려가 없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조금 늦어지면 어떤가, 도착할 곳이 남들과 조금 다른 곳이면 또 어떤가.
남자는 다시 한 번 가슴에 숨을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숨을 내뱉었다. 하늘은 맑았다. 해가 지고 난 자리에 스며든 어둠은 따뜻했다. 여전히 검지도 푸르지도 않은 빛이었지만 오늘이라면 별똥별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별똥별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눈으로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남자는 여기가 이 길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난 흙길이 조금 남아있지만 남자에게 이 길의 끝은 이곳이었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남자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벼웠다.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 같은 반 아이들은 우리가 사는 동네가 교과서에 나온다며 즐거워했지만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내가 원미동에 살게 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마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한 사람처럼 나는 눈앞에 닥쳐온 걱정들을 빠르고 무딘 방법으로 해결하길 원했으며 별다른 불만사항은 물론이고 별다른 꿈도 없었다.
넉넉지 못한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난 탓일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 본 곳이라고는 국립공원이나 친척 집뿐이었다. 또래들과 같은 시기에 컴퓨터를 사지도 못했고, 유원지나 해외여행 같은 곳에 가자고 졸라본 적도 없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디지털 시대를 달릴 때 나는 홀로 아날로그 시대를 걸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틀 만에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에게 방학숙제를 위해 박물관에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웃으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셨고, 나는 묵묵히 오천 원짜리를 받아들고 집을 나섰다. 내가 원미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부천 만화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하신 아버지 때문이었다. 좀처럼 돈을 벌기 힘들다는 직업을 택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자간의 대화가 갈수록 줄고 있는 것 또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원미 1동의 연립주택 203호에서 가장 가까운 박물관은 지하철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는 부천 만화박물관.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현실적인 범주 안에서의 판단이었다. 대강 훑어보고 견학문을 쓸 요량으로 빠르게 걸었다. 영화관에 가기보다는 만화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은 나였지만, 아이들처럼 뽀로로를 외치며 뛰어다닐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멈추어 선 곳은 볼록거울 앞이었다. 돌연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 내 모습이 사방에 펼쳐진 것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뒤틀리고 구부러진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온갖 생각을 다 해 보았다.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 기껏 외출할 기회가 생겼는데, 왜 고작 집 근처에 위치한 박물관에 와야 하는 것일까. 내 어깨는 왜 항상 움츠러들어 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여기에 이상한 거울을 설치해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건지에 대한 의문에 코너의 이름을 보니 ‘만화가의 머릿속’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뭐야.”
웃음이 터진 나는 만화가의 머릿속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찬찬히 살펴보았다. 엉뚱한 상상력과 꿈이 넘치는 일상. 그곳은 아버지의 머릿속이었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 하였듯이, 우스꽝스러움과 독특함 또한 종이 한 장의 차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폐관시간까지 박물관을 떠나지 못했다. 만화가들은 여전히 가난해 보였고,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내 몫의 저녁상을 차려놓은 채로 잠들어계셨다. 분명 어젯밤에도, 어쩌면 그제 밤에도 밤샘을 하셨을 것이다. 나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아버지에게 덮어드리고는 다 식은 국을 맛있게 떠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한국 만화 영상 진흥원 안에 위치한 비즈니스 센터로 일터를 옮기셨다. 입주 경쟁이 꽤 치열한 곳이라고 했는데, 용케 심사를 통과하셨다. 한국 만화 영상 진흥원과 부천 만화박물관이 부천 영상 문화 단지 안에 나란히 입주해 있었다. 사무실 이전을 도우며, 나는 아버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빠, 나 있잖아. 나도 그림을 그려볼까 해.”
아버지는 대답 대신 웃으셨다.
그날 저녁, 나는 원미동 연립주택의 거실에 누워 <원미동 사람들>을 읽었다. 교과서에 실린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 얘기가 전부인 줄 알았더니 꽤 두꺼운 연작소설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 첫 단편의 소제목이 보였다.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그곳은 내가 사는 동네였으며, 아버지가 사는 동네였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옛적에 청도에는 아주 힘이 센 소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들은 항상 서로의 힘을 자랑하려고 다투기 일쑤였죠. 소의 뿔이 맞닿을 때마다 하늘과 땅이 흔들렸습니다. 청도에 사는 동물들과 식물들은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투는 두 마리 소 때문에 하늘과 땅이 흔들리니 식물들은 땅에 뿌리 내릴 수 없었고, 동물들은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금세 풀들은 시들어 버리고 동물들은 서로를 힐난하고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도 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힘이 비등하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어요. 뿔을 더욱 곤두세워지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늘과 땅은 날이 갈수록 거세게 흔들렸죠.
결국 참다못해 적중산 중턱에 사는 지혜로운 감나무가 나섰습니다. 천년을 살았다는 이 나무는 청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황소들이라지만 감나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감나무는 소들을 적중산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너희들 중에 저 하늘의 별을 떨어뜨린다면 자신이 아끼는 감 하나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별을 떨어뜨리기 전에는 둘이서 싸우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소들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감나무가 품은 감을 먹으면 힘이 더욱 세어지고 온몸에서는 아름다운 색동빛을 뿜게 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또한 청도 감나무의 감은 반시라고 불리며, 그 육질이 굉장히 연하고 너무나 달콤해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두 마리의 소는 서로가 아닌 하늘의 별을 떨어뜨리기 위해 열심히 하늘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떨어뜨리려고 해도 별들에게 그들의 뿔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다투지 않고 머리를 맞댄 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답답했던 황소 한 마리가 산을 향해 뿔을 내다박았습니다. 그러자 뿔이 조금 부스러지더니 반짝이는 빛으로 흩어졌습니다. 밤에 흩날리는 빛은 마치 별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소는 그게 별인줄 알았습니다. 소는 감나무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만든 빛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감나무는 감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조금씩 닳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별로 보였습니다. 별을 가져올 때마다 감나무는 감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소들은 자신들의 뿔이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별을 만들어 달콤한 반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황소들의 뿔이 점점 닳자 하늘과 땅을 흔드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적중산에는 커다란 구멍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적중산 중턱에는 아주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습니다. 그러자 소들은 서로의 뿔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점점 더 빨리 닳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날렵하게 크던 뿔은 아주 작아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들이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하늘과 땅이 울리지 않았어요. 청도는 평화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소들은 멈추지 않고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지금도 소들은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맞대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소들이 만들던 별들을 기리기 위해 빛 축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그것 좀 내려놓을 수 없어요?”
한 달 전,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쉬게 되신 아버지는 저녁을 먹자마자 또 통기타를 잡으셨다. 퇴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얼큰하게 취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의 등에 난데없이 업혀 있던 바로 그 기타다.
“기억 안 나? 내가 왕년엔 기타로 아주 날렸잖어, 민정이 엄마!”
“그건 왕년 얘기고!”
어머니의 반격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예전엔 아주 잘 치셨다지만,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기타를 연주한 적이 없는 아버지의 솜씨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다는 사실이 마냥 좋으신 모양이었다. 내게 부탁하셔서 MP3에 가곡들을 잔뜩 다운로드 받으신 것은 물론이고, 7080 콘서트 프로그램 시간을 미리 적어두었다가 꼬박꼬박 챙겨보시기도 하셨다.
“어휴, 얘. 난 네 아빠 기타 소리 때문에 죽겠어, 아주.”
말씀은 항상 그렇게 하시지만, 나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타 치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신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반했다고 하셨다. 옛날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는 바로 그 모습, 바로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장발을 한 채로 잔디밭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 말이다.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는 소설처럼 아버지에게 첫 눈에 반했고, 매일 먼 발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 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셨다고 했다.
“왜, 낭만적이고 좋은데.”
“다 늙어가지고 낭만은 무슨. 예전처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저걸 듣고 있자니 고역이다, 야. 저 양반, 내일이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까먹은 건 아닌지 몰라.”
어머니의 말에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독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맞는 부모님의 기념일인 만큼, 올해는 꼭 내 손으로 챙겨드리고자 다짐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여보, 민정이 엄마. 이리 좀 와 봐. 티비에 지금 누군 나오는지 알아?”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지만, 어머니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듯 어머니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셨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시는 모습이 정겨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대체 어딜 가는 거냐?”
“가 보시면 다 알아요.”
저녁 식사 때 자르실 요량으로 아버지께서 사 오신 케이크를 그대로 조수석에 싣고,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미사리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 라이브 카페촌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 나 어제 부랴부랴 검색을 해 보았더니, 꽤나 유명한 곳인데다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서두른다는 것이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기에, 조정 경기장에 차를 세웠다. 운이 좋으면 모터보트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잔디밭과 꽃나무로 꾸며진 경정공원과 산책로, 솟대가 데이트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나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예약된 카페의 전화번호와 약도를 건네 드렸다. 어머니는 초대 가수의 이름을 듣고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네 아버지 알면 아마 여기서 춤을 추실 거다.”
“그럼, 방해꾼은 이만 빠질게요. 한 삼십 분 있다가 이 길 따라서 쭉 걸어가시면 돼요.”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카페 앞으로 두 분을 모시러 갈 것을 약속한 나는 혼자 자전거를 빌렸다. 공도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갔다 오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 종종 팔짱을 꼭 끼고 걷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는 노래 가사처럼, 추억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평소 쉽게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었던 남자. 그래서 주기적으로 떠나는 휴가도 한번 제대로 떠나본 일이 없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3년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지난 3년간 아내와 아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이게 다 처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버는 돈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미안하긴 했어도 조금은 당당했다. 그런 남편을 아내도 적잖이 이해해주는 눈치였다.
생전 가게로 전화를 안 하는 아내인데 웬일인지 가게로 다 전화를 했다. 아내의 말이 빨랐고 약간은 울먹였다.
“전화가 왔었어요. 방금. 민준이 담임선생님한테.”
“담임선생님한테? 왜? 민준이 뭐 사고친거야?”
“아, 아니. 학교에서 청소년 우울증 상담검사 같은 걸 받았는데. 결과가….”
평소 전화는커녕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소리 한번 듣지 않았던 터라 심장이 덜컹했다. 차라리 친구와 싸우거나 숙제를 안 해왔다는 전화였으면 좋았을 걸. 담임선생님의 전화는 뜻밖에도 아이가 학교에서 받은 청소년 우울증에서 우울증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였다.
우울증. 학교 다니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나? 아니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나? 그런 것도 아니다. 아내의 말대로라면 담임선생님께선 아이들과의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으니까.
누구를 위한 3년의 시간이었나 생각한다. 남자는 가장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는데 아이는 아빠의 빈자리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나보다.
모처럼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월성계곡으로 떠났다. 병원을 가보기 전 일단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담임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아이는 즐거워보였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아니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정 상태는 어떤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방송을 타서인지 계곡에는 때 늦은 피서객이 몰려들었다. 아빠와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아이도 보였고 튜브를 타고 물살을 즐기는 아이들도 보였다. 멀리서 고기 굽는 냄새와 옥수수를 먹는 아이들이 보이며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내 아이의 머릿속도 아니 마음속도 한가롭다고 느껴지면 좋을 텐데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물은 시리도록 맑았고 푸른빛이 맴도는 풍경은 봄의 화사함만큼이나 밝았다. 저마다 하하 호호 웃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방갈로 마다 퍼져나갔다.
하루를 아이와 꼬박 즐겁게 놀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남자의 머릿속은 금세 까마득해졌다. 내심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해맑게 방갈로를 뛰어다녔고 여느 때와 같이 즐거워보였다. 은근슬쩍 학교에서의 생활을 물어보기 좋은 시간이었다.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어? 친구들과 사이는 어때? 공부하는 것이 지치니?”
“아빠,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빨리 대답해봐. 응?”
“음. 아빠! 우리 다음에는 또 어디가요?”
괜찮아.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말이었다. 말. 단지 말뿐이었다. 조금 느린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건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동차, 인형, 기차 등 많은 장난감들 사이에서도 말 모양 인형을 가장 아꼈다. 럭키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럭키와 함께했다. 아이가 말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자폐아이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도 남편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에게서 말 인형을 빼앗아 숨긴 적도 있었다. 말 인형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차츰차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어서였다. 점점 아이의 불안증세가 깊어지고 말 인형을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아이에게 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동물이 말이잖아라고 타일러봐도 아이는 고집 있는 말투로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결국 또 그래, 럭키. 라고 대답을 한 나다.
아이가 말을 좋아하니 남편은 이제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말에 아이가 좋아하는 말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가 뛸 듯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엷은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많은 말들을 보고 다 럭키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10살이다. 태어나서 살아있는 말을 처음 보아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럭키를 닮은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눈앞에 펼쳐져서 신기해서일까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속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남편은 다정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말과 교감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과 교감을 나누었다.
“아들, 여기는 말 정말 많다. 그치? 말 어때? 다 럭키처럼 보여?”
“아니. 난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 아이만 럭키라고 불러줄거야.”
아이는 뜻밖에도 말 한 마리를 콕 집어 말했다. 말이라면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나온 순간에는 그저 엄마인 내가 이건 좋지? 이건 별로다 안 그래? 이런 식으로 아이의 선택을 나 스스로 해왔다. 그것이 아이의 결정인양. 아이의 선택이나 생각은 뒷전이었다. 알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내세워 그렇게 살아온 것이 미안해졌다. 충분히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진짜 말인 럭키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였다. 아이도 헤어짐을 아는지 더 있겠다는 떼를 쓰지 않고 말과 인사를 나누었다. 잘 있으라며 또 보러 오겠다고했다. 작은 손바닥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말이 먹을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었다.
마사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로 향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우리가 별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반짝반짝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반짝반짝.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에 보이는 별자리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들은 후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말이 보인다고 했다. 말?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말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 페가수스자리를 본 모양이구나?”
페가수스자리가 말 모양을 했다고 해도 저렇게 큰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로 말을 떠올리긴 힘들 텐데.
“우리아들 대단하네.”
아이에게 참 오랜만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것 같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보였다.
또! 또 이야기 해주세요! 네?
손주 녀석이 주위를 맴맴 돌며 자꾸만 성가시게 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늙은이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했을 때 하도 심심해하기에 옛날이야기를 한 번 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화책보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는 게 훨씬 재미있단 말이야.”
“할머니 귀찮으시니까 책을 보든가 비디오 봐.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빌려왔어.”
“싫어. 싫어,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이야기 들을 거야. 메롱~”
손주 녀석이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눕더니 기어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기야 이제 좀 더 크면 이런 어리광도 못 보겠다 싶어 못이기는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옛날 옛날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사과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 우물 옆에 있었지.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면 우물물처럼 공동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 남는 것은 따다가 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큰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사람들의 탐욕이었단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자라났고 옆 동네 김씨가 자기네보다 더 많은 사과를 가져가는 것 같았고 옆 집 박씨가 더 탐스럽고 빛깔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가는 것 같이 느꼈던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자기네 소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막 싸우고 그랬어요?”
“원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 문제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씨가 사과나무 근처로 가서 마을사람들 몰래 탐스러운 사과를 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한 다섯 개만 몰래 가지고 왔지. 그런데 도둑질이라는 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법이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김씨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열 개, 스무 개씩 몰래 따오기 시작했단다. 원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 때 누군가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김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런 양심 없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걸리면 가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마을사람들은 김씨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과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김씨는 머리를 썼단다. 자신이 도둑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거지. 도둑은 아무래도 새벽녘에 나타날 테니 자신이 숨어 있다가 도둑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속셈이었단다.
날은 어두워졌고 김씨는 우물 옆에 숨어있었단다. 그리고는 잽싸게 사과를 땄지. 그런데 그 때였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김씨를 눈여겨 본 박씨였지. 박씨는 ‘도둑이다. 사과 도둑이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치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며 김씨에게로 달려왔단다. 놀란 김씨는 그만 휘청하여 옆에 있던 우물에 빠지고 말았어.”
“헉, 그래서 김씨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물에 빠져서 죽었어요?”
“뒷이야기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우물에 빠진 김씨는 박씨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박씨는 김씨를 용서하고 우물에서 꺼내어 주었지. 그런데 박씨가 우물에서 김씨를 구해주자 마자 김씨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졌단다. 목숨을 구해준 박씨에게 오늘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박씨를 협박했지. 박씨는 무서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단다. 그런데 마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새벽녘이 되면 우물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
자기가 사과도둑이었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마을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김씨가 우물에 빠졌을 때 말한 내용이었지.
우물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김씨의 잘못이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났고 김씨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쳤고 박씨에게도 사과를 했단다.”
“이야. 역시 할머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야 해요!”
이번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던 모양이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오늘도 행복한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초조한 마음에 소식 없는 문 앞만을 지키고 서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남자는 자리에 멈추어서 소식을 말해줄이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모는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혹은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말을 물었을 텐데 아이의 성별을 먼저 묻는 걸 보니 한참을 기다렸던 아들인가보다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방금 나온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들은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뻤다. 딸이었어도 기뻤을 것이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한참 만에 시골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아이가 아들임을 당당히 말했다.
“그게 정말이가? 고추가 나왔단 말이지? 아이고, 장하다. 장해.”
“어머니도 참.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그래, 마. 아가한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알긋나?”
남자의 엄마는 수화기 주변으로 모여 앉은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또 고추라는 단어를 쓰며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아가라는 말을 단어를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골집에 금줄에 고추를 매달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벌이시겠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시골에 계신 시부모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들귀한 집안에 줄줄이 딸을 낳았으니 애가 타는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넷째를 가졌다는 말에 시골에서는 아들 낳기 좋다는 한약재들과 각종 음식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도 고추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여자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바라왔던 이들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아들을 잘 낳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인구비율이 제대로 맞춰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담가지지 말라며 보내온 음식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여자는 온몸으로 모든 시선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의사는 양수와 분비물로 뒤섞인, 마치 핏덩어리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뱃속에 있다 나와서인지 따뜻했다.
“아들을 많이 기다리셨나봐요.”
“네.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그동안 고추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아, 네. 참, 아이도 산모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마무리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의사에게 괜한 소리까지 한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감격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가 딸아이였다면 아니, 또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맵기도 정말 매웠던 고추를 그렇게 씹어 먹으며 눈물로 기다리던 아이였다. 막상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눈가가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