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꽤 큼지막한 눈발이 하얗게 나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또 저 노래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보려다 가자마 눈을 하고 흘기는 것이 무서워 관둔다.
“그래, 창 밖에 봐봐, 당신이 요즘 그렇게 목청껏 불러 마다않는 겨울이야. 근데 원래 넌 여름이 더 좋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도 활기차보이고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린 얼음골 폭포 보는 거 좋아했잖아.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며.”
“응, 여름도 좋아. 그런데 난 우리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으면 좋겠어.”
아내는 갑자기 태어나지도 아니 계획에도 없던 아이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본체만체하곤 아이 그리고 겨울이야기를 독백처럼 떠들어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니까.”
오늘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고 핀잔을 주려다 꾹 참는다. 아내는 가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니까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전형적인 이과남자라며 이과생이 문학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냐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해 질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도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름은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니까 우리가 매년 얼음골로 피서를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민소매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그러니까 여름은 시원한 거고 겨울은 흰 눈이 온 세상을 감싸니까 왠지 따뜻해보여. 연말엔 기부도 많이 하니까.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겨울 겨울 그런다. 흰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니.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때문에.”
사과? 네가 사과를 좋아했던가? 연애만 4년 그리고 결혼 2주년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사과를 특별하게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무심했던 건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그렇지도 않았다.
“사과? 겨울하면 넌 사과가 생각난다고?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아니고?”
“그래. 사과! 아.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사과를 떠올렸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과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철이 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나를 골라 집어 의무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과? 먹고 싶으면 사다줄까? 이렇게 추운데. 눈이 펑펑 오는데?”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그것도 암묵적으로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설마 다녀오라고 할까.
“정말? 그래 주면 좋고. 아참, 그냥 사과 말고 꼭 얼음골 사과로!”
오랜만에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싫은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주면 좋다는 대답아 날아온 걸로 보아서는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알겠어. 추우니까 요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큼지막한 눈발이 내렸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이 한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얼음골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는지.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이 사과를 찾았다.
“어머, 색시가 아기를 가졌나 보네, 얼음골 사과를 찾는 거 보니. 아삭하고 달콤한 게 태기가 있을 땐 그런 게 땡기는 법이거든.”
“아기요? 에이. 아니에요.”
“그래? 난 또. 아무튼 야무진 놈들로만 골랐으니 얼른 가져다 줘요.”
아기라고? 에이 설마.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가 혹시 숨기고 있던 건가? 그래서 아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머릿속이 흰 눈송이만큼 하얘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고는 문을 열었다.
“사과 사왔어! 아주 시원하고 아삭한 얼음골 사과”
아내는 이불 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로버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3년 전. 로버트는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나이기에 괜히 더듬더듬 말을 붙여 본 것이 인연이 깊어졌고, 우리는 어느 새 연인이 되었다.
창밖으로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서 환히 웃는다. 카페 안의 시선이 일순간 모두 나에게로 쏠리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로버트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로버트 또한 그렇다. 우리 둘만 행복하면 다 괜찮은 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평생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나는 불안하다.
우리 둘은 아직 한 번도 다퉈 본 일이 없었다. 성격이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로버트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다. 영국 남자와의 연애에서 결혼생활까지를 그리고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끈 이후로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 졌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어르신들이 눈을 흘기며 혀를 차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정장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오늘 저녁에 로버트는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2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노라 선언하고 집을 나왔는데, 그 남자친구가 미국인이라는 것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혹시 거리의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선택에 불만이 없다. 행복하게 살 자신도 있다. 로버트는 나와 결혼 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으므로, 지금 내 생활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가 이런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눈 앞의 행복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이블에 놓인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입술만 물어뜯고 있자,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챈 듯 로버트가 내 손을 잡았다.
“걱정, 안 돼.”
‘그럼, 안 되지. 우리 둘은 잘 헤쳐가 갈 수 있을 거야.’하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점심으로는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로버트가 좋은 생각이 났단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정장을 입고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에 올 줄은 몰랐는데,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세 좋게 이모를 부르며 부대찌개 2인분을 시킨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는 어디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 탓일까. 나도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걱정이란 게 없어 보이는 로버트를 보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찌개가 끓자 로버트가 내 앞의 접시를 가져가 찌개를 덜어 주었다. 그런데 내 몫의 접시에는 햄만 가득 담겨 있었다. 건너다보니 로버트의 접시에는 김치만 담겨 있다. 의아한 내 표정을 본 로버트가 웃었다.
“혜연은 햄을 좋아하고, 나는 김치를 좋아해. 그래서 나는 부대찌개가 맛있어.”
문득 한국 전쟁 이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추장이나 김치 등의 재료를 넣어 끓인 것이 부대찌개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버트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처음에는 김치는 물론이고 라면도 잘 먹지 못하던 로버트인데, 매일같이 나와 함께 있다 보니 어느 새 김치 국물에 밥도 비벼 먹을 정도로 매운 맛에 익숙해졌다. 김치에 파를 얹어 먹는 모양새가 이제는 제법 한국인 같기도 했다.
“맛있을 거야, 앞으로도.”
“임신하면 태교가 가장 중요한 거 몰라? 그리고 그렇게 사람 많은 곳 갔다가 뭔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임신하면 좀 예민해진다고는 들었지만 아내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머리에서 뿔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들꽃 같던 아내는 여전히 예뻤지만 입덧을 꽤나 심하게 하더니 좀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여름휴가로 그냥 집에만 있겠다고? 그냥 주말이랑 별다를 게 없잖아. 그리고 자기도 바깥바람 쐬고 그러면 입덧도 좀 나아지고 기분전환도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고 잘 생각해봐.”
“내가 지금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내가 나 좋자고 그래? 이게 다 우리 아가 생각해서 이러는 거잖아.”
네버엔딩이다. 내가 수그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좀처럼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했고 그러는 것이 나도 편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이렇게 집에서 아내와 투덕거리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는 플로리스트다. 그런데 혹여나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하여 임신을 한 뒤로는 꽃꽂이를 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꽃들도 시들어 버리자 그냥 내다버렸고 오로지 아이를 위한 태교음악과 미술전시만 간간히 보러다닐뿐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유난 안 떨어도 된다고 하려다가 더 큰 불씨로 돌아올까 봐 말을 삼켰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하나 빵빵하게 틀지 못하게 하여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선풍기 앞에서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회사 동료 중 한명이 폭포사진을 하나 올렸다.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려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곳의 폭포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것처럼 시원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폭포의 이름이었다. ‘피아노 폭포’. 폭포가 떨어지면서 피아노 소리를 내나? 궁금한 마음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여름휴가로 가까운 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면서 집도 가까우니 한번 다녀오라는 조언과 함께. 머리에 반짝하는 불빛이 들면서 나는 곧장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자기야, 내가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시원한 여름휴가도 즐기면서 태교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이 있는 거야. 어때? 끌리지? 내일 당장 가보자. 절대 휴가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곳 같아서 그래, 이름도 피아노 폭포랑 피아노 화장실이라니까?”
아내는 내 여름휴가 집착증에 두 손을 든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피아노 폭포라는 말에 호기심을 가진 것인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야? 그치? 자기도 막상 나와 보니 기분 좋지? 집에만 있으면 아기도 심심하고 답답할 거야.”
“응, 좋네. 바깥바람도 쐬고. 근데 에어컨 좀 줄일 수 없어? 창문을 열자 차라리.”
아내는 쉬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밝은 모습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피아노 폭포는 교외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곳이 피아노폭포 인듯했다. 그런데 피아노 폭포보다 더 먼저 우리 둘의 시선을 끈 곳은 다름 아닌 그랜드 피아노 모양을 한 건물이었다. 백색의 그랜드 피아노 형식을 한 건물은 화장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수원에 반딧불이 화장실은 들어보았어도 피아노 화장실은 또 처음이다.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 선율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내는 화장실은 찝찝하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은근히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네다섯 살 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92m 높이의 피아노 폭포에 감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하수처리 방류수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폭포라는 데 꽤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에 시원하게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폭포를 보니 멀리 계곡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때? 나오길 잘했지?”
“응, 그러네. 여기 우리 아가 태어나면 또 와도 좋겠다. 아기들 노는 거 보니까 보기도 좋고. 우리아가 빨리 만나고 싶어.”
아내의 입에서 또 오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치 큰 성과를 내 회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오는 그 날에도 피아노 폭포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 같다.
달빛이 그대로 비치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 턱 와서 앉았다. 희끗하게 센 턱수염을 거칠게 깎은 박 씨 아저씨였다.
“강 씨, 오늘도 나왔네 그려.”
“박 씨 아저씨도 여전하시네요.”
오늘도 한적한 동네 냇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았다. 냇가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의 큰 지류여서, 우리 동네의 숨은 낚시꾼들에게는 아주 중한 장소였다.
퇴직 후에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어 수도권 언저리의 한 동네로 내려 온 것이 이래저래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이사를 온 뒤에도 한동안 동네 사람들과 소원하게 지냈는데, 달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란히 앉으니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피는 것도 이 밤낚시의 묘미 중 하나였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다들 혼자 집에 있기가 심심하니 그저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며 낚싯대 하나를 챙겨 냇가에 나왔는데, 어느 새 이 ‘낚시꾼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이가 고만고만한 중늙은이들이 전문적인 장비도 없이 나란히 낚싯대를 내리고 있으니, 고기를 잡는 일도 드물었다.
“옛날에는 물속으로 그냥 뛰어들어 손으로 잡아 올려도 월척이었는데 말이야.”
박 씨 아저씨의 농담에 다들 말문이 트였다. 아마 우리가 몇 번이고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잡힐 고기들도 다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조금은 고기 잡을 욕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낚싯대를 바꾸고 미끼를 바꿔가며 애를 써 봐도 소득이 없더니, 어느 날은 항상 웃음을 주도하시던 박 씨 아저씨가 물골에서 손바닥만 한 붕어를 낚아 올리셨다. 박 씨 아저씨는 제가 고기를 잡고도 놀라신 모양이었다. 매일 농담만 주고받느라 낚시는 뒷전이었던 우리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물론이다.
다음 날, 낚시꾼 모임 멤버들이 나만 빼 두고 무슨 계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상 나만 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가장 늦게 이사 온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엿듣는 모양새가 되어 한참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가, 성이 나서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자 했더니 모두가 껄껄 웃었다.
“그래, 강 씨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르는 이야기겠네. 여기, 김 씨 아저씨 고향이 저어기 부산에 있는 가덕도인데 말이야. 거기 숭어들이가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작년부터 한 번 가 볼까 하고 있었지.”
“며칠 전에 박 씨 아저씨가 붕어를 낚았잖아? 그거 보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숭어들이가 생각 난 거야. 마침 가덕도 숭어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기에, 거기나 한 번 가 볼까 하고. 강 씨도 갈 거지?”
먼 길 여정이 달가운 나이는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조금 꺼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니, 배 수 척으로 바다를 둥그렇게 싸고, 숭어가 지나 갈 때에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것이 숭어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다들 고기를 이렇게 잡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가덕도가 유일하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낚시도 고기를 찾아 가서 잡는 게 아니라, 고기가 바늘을 물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우리에게 딱 맞는 축제지. 안 그런가?”
박 씨 아저씨의 말에 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축제 날짜에 맞추어 부산으로 떠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박 씨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숭어들이는 어류장이라는 분이 있어, 그 분이 한 평생 동안 고기가 가는 길을 알려주신다 하였다. 망망대해를 보고 있다가도 숭어 떼만 지나가면 기가 막히게 바다 위의 배들에게 신호를 보내 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낚싯줄을 곱게 감아도 보고, 낚싯대를 행주로 박박 문질러 닦아도 본 끝에 전화기 앞에 섰다. 저녁만 되면 낚시를 하러 나온 것은, 저녁만 되면 울리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나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한 번 들었다 놓아 보았다.
내일 낚시꾼 모임은 하루 쉬어야겠다. 내일도 숭어가 올 터이니, 내가 그 고기를 한 번 낚아보아야겠으니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걸려온 전화이다. 사실 그녀가 학교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초등학교 동창생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거지를 하던 도중에 급히 받은 전화라 대충 받고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길어진 통화에 고무장갑까지 벗고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다.
1993년 폐교가 된 생둔분교. 가물가물한 이름을 말하는 동창생이지만 일단 반갑게 통화를 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에 동창생과 통화를 하는지 콜 상담원직원과 통화를 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걸려온 전화의 요지는 이번 동창회는 특별하게 분교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것. 권유가 아닌 통보다.
홍천에서 서울로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옛 친구들과의 분교캠핑이라니. 다 늙어서 무슨 캠핑이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홍천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마을. 그동안 궁금하긴 했다. 매캐한 연기와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이곳이 궁금하긴 했다. 학교도 친구들도 마음속으로 안녕을 전해야만 했던 추억들이었다.
미숙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동창회에 나가기로 했다. 약속장소 도착 5분 전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얼굴이 많이 변했을 텐데. 똑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였으나 어쩐지 늙는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동창회 소식을 알리던 미숙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화 속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머 반갑다. 얘, 얘는 어떻게 늙지를 않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엉?”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졸업을 하기 전 떠난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많지 않은 전교생이라 소풍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 나름의 추억이 있었다.
도심의 때가 묻지 않은 마을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점심도 그때의 추억 그대로 김밥에 주황색이 진한 환타 병까지 준비되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들. 맨 앞자리에 앉던 키 작은 친구, 뺑뺑이 안경에 반에서 일 등만 하던 반장 모두 그대로이다.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족대를 들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계곡으로 향했고 여자들은 금방 쪄낸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 시집갔던 친구는 벌써 손주를 보았고 여태껏 일만 하다 결혼을 못 한 친구도 있었다. 삶이 다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나 보다.
언젠가 경비아저씨와 악을 싸우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중년의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중년의 여성은 쉬지 않고 말을 했고 그 모습이 적잖이 꼴 보기 싫었다. 그 이후로 중년의 여성이 쉼 없이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 앞에서 쉼 없이 지난날을 곱씹고 있다. 누가 보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미숙이가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거봐, 오길 잘했지?”
빙그레 웃었다. 오길 잘했다. 2013년이 아닌 1993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으면 열대야라며 손부채질을 끊임없이 해댔겠지만 이곳의 공기는 청명했다. 달도 밝고 별도 쏟아질 듯이 빛났다.
어느 샌가 친구들은 모두 별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모일 수 있을까. 벌써 헤어짐이 아쉬운 걸까. 그리움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과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밤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지 따뜻한지 모를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에 머문다.
79년생 여자가 티켓의 자리표를 보며 서성인다. 열차 안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음에도 여자는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86년생 여자이다.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이 여자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춘천까지 함께 앉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탐색했고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정거장쯤 지난 후였을까 젊고 앳된 모습의 90년생 여자가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이 셋은 마주 보며 앉게 되었다.
우연일까. 세 여자 모두 홀로 춘천으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79년생 여자는 책을 들고 있었고 86년생 여자는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다. 90년생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연신 메시지를 날렸지만 셋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신경이 쓰인 79년생 여자가 연장자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춘천까지 가시나 봐요?”
79년생 여자가 입을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여자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다시 어색함이 짙은 안개만큼이나 무겁게 깔렸으나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한번 말을 붙여봐서일까 그 다음부터의 질문은 어렵지가 않았다. 세 여자는 각자 통성명을 하고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질문을 했다. 왜 혼자인지. 다른 사람이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세 여자는 나름의 추측을 던졌다. 실연을 당했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떠나는 건가? 각자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세 여자의 대답은 같았다.
‘젊었을 때 언제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춘천으로의 여행은 청춘 그리고 낭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지정한 것이 아님에도 세 여자의 머릿속엔 춘천 이코르 청춘이었다.
이번엔 가장 젊은 90년생 여자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1박 2일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 그들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었음에도 거절하기가 미안해서였는지 그녀들은 쉽게 수락을 했다.
여행이 주는 맛이 이런 것일까?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의 1박 2일의 여행이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여행처럼 편안했다. 이곳이 춘천이어서 그런 것인지 세 여자의 취향이 우연히 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셋은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셋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서 그럴까 세 여자는 조금 센티멘털해졌다. 왠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86년생 여자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말했다.
“사실 난 내가 정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 늘 가던 편의점만 가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왔었으니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놀라운 하루야.”
가만히 듣고 있던 79년생 여자도 거들었다.
“그러게.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 추스르려고 온 여행이었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거든. 그리고는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나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롭기도 했고.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것도 아닌가 봐. 이렇게 우리 셋이 있는 걸 보면.”
79년생 여자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파혼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아무렴 어떤가. 왜 그런 이야기까지 내게 하느냐고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없었고 안쓰럽거나 가여워하지도 않는 둘이었으니까 괜찮았다.
세 여자가 오늘의 여행을 뒤로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여자는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고 그 토닥임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들만 알 수 있었다.
높고 큰 백화점 사이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 유니폼을 챙겨 입고 나타난 것을 보니 오늘도 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형준의 모습이 보였다. 혜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형준과 혜연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학창시절 당시에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나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나면서 둘은 새삼 가까워졌다. 30대를 넘긴 나이라 그런지 거리감이 없었고 이야기도 훨씬 잘 통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니 직장은 어떠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시간을 추억하다 자연스레 서로의 취미에 대해 물었다.
“나 쭉 야구부였던 거 알지? 물론 지금은 선수로 생활은 못하지만 주말이면 거의 프로야구 보러 잠실에 가.”
“아 맞다! 너 야구부였지? 유니폼 참 멋있었는데. 근데 난 잠실에 살면서도 야구는 한 번도 보러 간적이 없어. 기회가 없기도 했고 딱히 응원하는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래? 그럼 나 이번 주 주말에 야구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저 멀리서 혜연이 급하게 달려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미리 티켓을 준비해 온 형준을 따라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의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빽빽하게 자리를 채워나갔다. 형준도 맥주 두 캔과 치킨을 들고 미리 끊어놓은 티켓의 좌석을 확인했다. 경기 시작 전 임에도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 정말 많다. 야구가 인기가 많긴 하구나.”혜연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선수들이 몸을 풀기위해 나왔고 시구를 하기위한 연예인이 등장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시구구나!”
“크큭, 야구 처음 보러 온 것 제대로 티내네. 곧 경기 시작이다. 가볍게 맥주 한 잔으로 시작해 볼까?”
사람들은 시구에 열띤 환호를 보냈고 형준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경기 관람을 위한 워밍업을 했다. 드디어 1회 초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룰을 잘 모르는 혜연을 위해 형준은 자상하게 룰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야구는 던지고 치고 뛰고 잡는 게 다야’라며 한줄 정리를 해준 것이 다였다. 혜연은 룰을 잘 몰랐지만 사람들의 분위기와 경기의 긴장감에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며 구단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이 나왔다. 사람들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목청껏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이 왜 야구장에 오는 지 알 것 같아.”
“그야 재밌으니까.”
“맞아. 재밌으니까.”
5회 말 경기가 끝났을 때 야구장의 꽃 ‘키스타임’이 돌아왔다. 가장먼저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백발의 노부부였다. 할머니는 쑥쓰러운 듯 손사래를 쳤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사람들은 노부부에게 열띤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전광판에 잡힌 커플은 20대 귀여운 커플이었다. 당당하게 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세 번째는 귀여운 엄마와 아들이었다. 신체보다 훨씬 큰 유니폼에 귀여운 야구모자를 쓴 아이는 엄마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혜연은 기분이 참 묘했다. 물론 야구장엔 2~30대 젊은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가족부터 연인까지 그 세대도 참 다양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건전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키스타임의 마지막 커플로 형준과 혜연이 잡혔다.
사실 둘이 함께 왔으니 카메라를 잡아주는 사람도 둘이 커플인지 친구인지 알 길은 없었다. 혜연은 놀란 마음에 손사래를 쳤으나 형준이 돌연 혜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작게 “원래 이런 데 와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속삭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보내자 혜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열띤 응원을 하는 형준과 달리 혜연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서른 넘은 나이에 주책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나 왠지 형준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경기가 끝이 나고 형준이 응원하던 구단이 승리를 얻자 형준의 기분은 더욱 좋아보였다.
“야구장 처음 와본 소감이 어때?”
“음, 재밌었던 것 같아. 다음에 오면 응원도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너도 이 매력에 푹 빠졌구나. 다음에 또 오자! 그땐 제대로 더 신나게 놀다가자고.”
“으응.”
형준과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늙음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노부부. 가족이 함께 유니폼을 맞춰 입고 목마를 타며 목청껏 응원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는 주말.
‘야구장. 참 재밌는 곳이네.’라며 혜연은 잠시 중얼거렸다.
입맛이 어쩜 이렇게 토속적이야?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면 의례적으로 이런 말 한마디씩 꼭 한다. 하긴 금발의 외국인이 청국장, 김치찌개, 불고기 백반을 즐겨먹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런 것이 외국인에게 갖는 첫 번째 편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외국인이라고 다 햄버거나 빵을 좋아할 것이다 라는 편견. 남자친구는 처음에 토속적이라는 뜻을 몰라 물은 적이 있다. 한국적이고 좋다는 거라고 이야기 해주니 대번 웃으며 나는 토속적이에요 한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것인데 외국인과의 소개팅이라고 해서 나는 일부러 이태원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내국인의 배려랄까. 처음 본 남자친구의 첫인상은 단정한 금발머리에 피부가 하얀 유럽풍 사람이었다. 평소 영어는 스펙을 쌓으며 만들어진 회화정도였기에 처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네에. 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맛도 예상하기 힘든 그리스식 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도 평범한 파스타에 쁘띠 피자를 시켰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한국음식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내 입에서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였다. 삼겹살이 뭐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처음만난 소개팅자리에 그것도 외국인 앞에서 비빔밥이나 김치볶음밥이 아닌 삼겹살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반가워하며 자기도 삼겹살 좋아한다며 ‘삼겹살 좋아! 삼겹살 좋아!’라며 서툰 한국말을 했다. 거기에 ‘소주 한잔까지!’를 빼먹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외국인인지 내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는 어색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었다.
남자친구는 친구들을 만나러 이태원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나는 이태원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혼동되어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한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는 꽤 현명한 답을 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있어서 무섭다고? 왜?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서울 전체가 다 낯선 사람들뿐이고 낯선 문화인데?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오히려 즐거운 걸.”
정답이다. 조금 다르게 생기고 조금은 낯선 문화라고 겁부터 내는 내가 참 바보 같았다.
나는 이태원에서 프랑스식 요리나 커리, 케밥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많이 배려했고 이태원 맛집 지도라며 귀엽게 그림을 그려 온 적도 있다.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고 있었어?”
“응, 오늘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재미있는 옷들 좀 같이 구경하려고.”
“파티? 우와 재미있겠다. 할로윈 같은 건가?”
역시 외국문화 집결지답게 각 나라의 전통의상이나 만화 캐릭터들의 의상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의 나라 스위스의 전통의상을 골랐다. 남자친구는 알프스 소녀처럼 귀엽다고 했다.
의상과 액세서리를 치장하고 간 파티자리엔 역시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세계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놓여있었고 술도 종류별로 있었다. 언어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질감이나 거리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고 궁금증도 많아졌다.
이태원, 역시 자유로움 속에 정돈된 질서가 숨어있는 곳이다.
희뿌연 듯 하면서도 선명하고 어질러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깨끗한 곳. 언제나 또 언제나 새로운 곳, 그곳은 이태원이다.
이태원 프리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