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꽤 큼지막한 눈발이 하얗게 나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또 저 노래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보려다 가자마 눈을 하고 흘기는 것이 무서워 관둔다.
“그래, 창 밖에 봐봐, 당신이 요즘 그렇게 목청껏 불러 마다않는 겨울이야. 근데 원래 넌 여름이 더 좋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도 활기차보이고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린 얼음골 폭포 보는 거 좋아했잖아.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며.”
“응, 여름도 좋아. 그런데 난 우리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으면 좋겠어.”
아내는 갑자기 태어나지도 아니 계획에도 없던 아이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본체만체하곤 아이 그리고 겨울이야기를 독백처럼 떠들어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니까.”
오늘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고 핀잔을 주려다 꾹 참는다. 아내는 가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니까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전형적인 이과남자라며 이과생이 문학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냐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해 질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도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름은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니까 우리가 매년 얼음골로 피서를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민소매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그러니까 여름은 시원한 거고 겨울은 흰 눈이 온 세상을 감싸니까 왠지 따뜻해보여. 연말엔 기부도 많이 하니까.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겨울 겨울 그런다. 흰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니.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때문에.”
사과? 네가 사과를 좋아했던가? 연애만 4년 그리고 결혼 2주년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사과를 특별하게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무심했던 건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그렇지도 않았다.
“사과? 겨울하면 넌 사과가 생각난다고?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아니고?”
“그래. 사과! 아.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사과를 떠올렸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과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철이 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나를 골라 집어 의무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과? 먹고 싶으면 사다줄까? 이렇게 추운데. 눈이 펑펑 오는데?”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그것도 암묵적으로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설마 다녀오라고 할까.
“정말? 그래 주면 좋고. 아참, 그냥 사과 말고 꼭 얼음골 사과로!”
오랜만에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싫은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주면 좋다는 대답아 날아온 걸로 보아서는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알겠어. 추우니까 요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큼지막한 눈발이 내렸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이 한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얼음골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는지.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이 사과를 찾았다.
“어머, 색시가 아기를 가졌나 보네, 얼음골 사과를 찾는 거 보니. 아삭하고 달콤한 게 태기가 있을 땐 그런 게 땡기는 법이거든.”
“아기요? 에이. 아니에요.”
“그래? 난 또. 아무튼 야무진 놈들로만 골랐으니 얼른 가져다 줘요.”
아기라고? 에이 설마.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가 혹시 숨기고 있던 건가? 그래서 아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머릿속이 흰 눈송이만큼 하얘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고는 문을 열었다.
“사과 사왔어! 아주 시원하고 아삭한 얼음골 사과”
아내는 이불 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들썩임이 가득했고 언제나 돌아오는 연말연시였지만 사람들은 늘 같은 흥분과 설렘으로 시간을 보냈다.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은 영하의 온도에 아랑곳하지 않듯 붉어있었고 저마다의 한 해를 안주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한테 연락 왔어? 경찰서에서는?”
“아직.”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는 엄마를 찾고 있다. 알츠하이머 중기 판정을 받은 후로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탓에 이렇게 가끔씩 집밖을 나가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연말연시라 경찰들도 우리엄마를 찾아주기엔 할 일이 많았는지 자꾸만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혹시 엄마 거기 가신 거 아니야?”
“어디? 생각나는 곳이라도 있어?”
“왜, 엄마 요 근래 자꾸 기차, 화본역! 그러지 않았어?”
해가 떨어졌어도 한참 전에 떨어져 달빛과 가로등 불빛으로만 시야를 분간해야 했다, 자그마한 대합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시계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겨울 막바지라 금방 손발이 얼어붙듯 차가운 날씨였는데 엄마는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엄마의 기억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기에 여기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걸까. 치매 초기 때에는 밤이 오는 것이 무섭다며 방에 불도 못 끄게 했던 엄마였다. 엄마가 깊게 잠이 들어서야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마저도 자다 깨면 누가 불을 껐냐며 불호령이었지만, 그랬던 엄마가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간이역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눈빛에 무서움과 두려움은 없었다.
“엄마, 왜 여기와 있어. 기차타고 어디 가려고?”
“기다려. 기다리고 있어.”
“누구를 기다린다는 거야. 오밤중에. 정말 속상해 죽겠어.”
“마중 간다고 했어. 이제 곧 올 거야. 기차소리 들리잖아.”
“무슨 이 시간에 기차소리가 들린다 그래! 정말, 집에가, 빨리 일어나라고!”
“저리가. 마중 간다고 약속해서 기다려야해.”
엄마는 단호하게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추위도 잊은 채 오지 않는 기차를 아니 누군가를 마중가야 한다고 했다. 노인네가 고집만큼이나 힘이 얼마나 센지 두 팔을 힘껏 잡아당겨도 꿈쩍도 안했다.
엄마는 낑낑거리며 거기 남아 있겠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엄마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여 겨우 집으로 모시고 왔다. 집으로 오는 중에도 엄마는 계속 기차소리만 연발했다.
그날이후로 엄마가 또 한 번 사라진 적이 있다. 이번에는 경찰서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억이 머물던 자리로 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집에 안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면 어쩌나 하고 화본역으로 달려갔고 엄마는 그 자리에 계셨다.
어쩐지 엄마가 조금 이상했다. 눈빛도 또렷했고 기차고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엄마, 거기서 뭐해?”
“왜 또 왔어. 어련히 집에 안들어갈까봐서.”
“우리엄마 맞네. 저번부터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는 거야? 누구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 보고 싶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내 새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어렸을 적 큰오빠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유괴인지 실종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잃어버린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삼십년 째 가슴에 품고 있던 아이를 이제야 마중 나가겠다며 기억을 잃은 그 순간에도 엄마는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다섯 살 난 아들을 잃은 엄마는 구슬프게 우셨다. 그리고는 다시금 기차소리가 들린다고 하며 기찻길로 뛰어들었다. 기차는 오지 않았지만 엄마는 자리에 쓰러지셨다.
‘엄마가 마중 갈게. 조금만 기다려.’그렇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산시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얼음을 나르며 생선들에게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 수산시장만의 비릿한 냄새가 이제는 익숙한 사람들은 손에 물이 안 묻는 날이 없다.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껴입어봐도 고무장갑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 때문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지런히 정돈된 생선들과 횟감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오늘 횟감 좋아요~ 사장님 한번 둘러보고 가셔.”
준영은 멀리서 엄마가 장사를 하시는 걸 보고만 있다. 손님이 엄마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나서야 엄마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여긴 또 뭐 하러 와. 공부하라니까. 이 좋은 옷에 비린내 배겠다.”
“오늘 장사 많이 했어? 추운데 얼른 접고 같이 들어가자.”
“무슨 소리, 너는 얼른 공부하고 나는 얼른 장사하고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그만 가봐. 엄마 일 해야 해.”
준영은 엄마를 주려고 가져온 손난로를 채 건네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준영은 노량진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이따금씩 엄마를 보러 수산시장에 오면 엄마는 옷에 냄새 밴다며 한사코 돌아가라고만 한다. 생선박스나 얼음은 덩치가 큰 장정들도 혼자 옮기가 힘든데 엄마는 번쩍번쩍 잘도 든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이런데서 나오는가 싶다.
엄마가 내색은 안 해도 내가 수산시장에 가면 옆 상회 아주머니들께 장차 나랏일을 할 우리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따금씩 공부하는 것이 지겨워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과 더 치열하게 생선을 파는 사람들. 어쩐지 엄마와 준영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손난로를 건네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엄마는 그날 심한 열감기에 걸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일을 나가시겠다며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시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모시고 시장으로 나갔다.
“너는 이제 올라가봐. 들어오지 말고.”
“오늘은 제가 도울게요. 엄마는 병원 다녀오세요.”
“병원은 무슨, 감기 가지고. 여기만 오면 다 낫는다. 여기가 엄마한테는 병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는 내심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으셨다. 오늘 하루는 공부 말고 엄마를 돕기로 하고 방수 앞치마에 장화, 고무장갑까지 끼며 생선들을 정리했다. 생선 종류가 하도 많아 어떤 게 어떤 것인지 듣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 생선 정말 싱싱해요. 어찌나 싱싱한지 펄떡거리는 거 잡다가 손목 부러질 뻔 했다니까요!”
“허허, 젊은 청년이 말도 잘하네. 키로에 얼마라고?”
“헤헤, 3만원만 주세요. 큰놈으로 골라 드릴 테니까 어서요.”
준영이 손님을 끌어오면 엄마가 회를 떴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손님에게 장차 나랏일을 할 사람이 골라준 생선이라며 쓸데없는 생색을 내셨다. 엄마는 빨간 코끝에 하얀 콧물이 맺힌 줄도 모른 채 생선 내장을 발라냈다.
잠시 손님이 뜸했다.
“엄마는 여기 이 냄새 그리고 생선 지겹지도 않아?”
엄마는 잠시 손난로를 만지작거리시더니 아니 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이 노량진이 지긋지긋해서 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엄마는 없다고?”
“지긋지긋 하지. 나라고 왜 아니겠어. 그래도 여기만큼 활기 넘치고 싱싱한 곳이 없어. 제철이면 제철 맞은 생선들이 파닥이고, 엄마는 이 비린내 흉이라고 생각 안 해. 나한테 주는 훈장이지 훈장.”
“근데 왜 나는 옷에 비린내 나니까 못 오게 해?”
“그게 너랑 나랑 같은가. 엄마는 여기가 일터고 너는 일터가 따로 있지 있으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 엄마 땜에 공부 하나도 못해서 어쩌냐. 곧 시험이라며.”
“하루 안했다고 떨어지는 실력이면 시험 봐도 그만이야. 오늘 공부보다 더 값진 공부 했는데 뭐.”
엄마는 껄껄 웃으셨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편이 뭉클했다.
비린내 가득하지만 싱싱함과 마주한 이곳. 노량진. 우리 모자에게 노량진은 그런 곳이다.
오늘은 하늘이가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입니다. 달력에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도 그려놓았지요. 바로 하늘이의 외국 펜팔 친구 데이빗이 오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는 설레는 마음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친구가 도착하면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잠을 설친 것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난 하늘이는 분주하게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우리나라와 하늘이가 살고 있는 보성을 함께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하늘이는 좋은 방법이 생겼다며 싱글벙글 입니다. 드디어 만난 하늘이와 데이빗. 하늘이는 곧장 녹차 밭으로 데이빗을 데려갔습니다. 데이빗은 녹차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지요.
“데이빗! 녹차를 마셔본 적 있다고? 티백에 담겨져 있는 녹차를 말하는 거지? 오늘 우리가 마실 녹차는 좀 달라! 기대하라고~”
한껏 신이 난 하늘이는 데이빗을 데리고 녹차 밭을 구경한 뒤 조그마한 다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계셨고 사람들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늘이와 데이빗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지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녹차 밭에 오신 여러분과 차를 함께 나누어 마시게 되어 기쁘네요. 오늘은 다기를 이용하여 차를 우리는 법, 그리고 차를 마시는 예절 등 다례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하늘이가 외국인 친구 데이빗을 위해 준비한 것은 바로 다례체험이었습니다. 보성녹차의 진중하고 진한 맛을 좀 더 세심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다기의 이름과 함께 오늘 마실 차는 올해 수확한 햇차로 우전이라고 불리는 녹차를 이용하여 차를 마시는 예절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선 두 손으로 뜨거운 물을 사발에 붓고 다관 뚜껑을 열어 조금 식은 물을 다관에 따릅니다. 그리고 찻잔이 따뜻해 질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부어두고 차 우릴 물을 준비합니다. 한김 나간 따뜻한 물을 다관에 붓고 여린 녹차를 조금씩 덜어 넣습니다. 녹차가 우러나는 동안 찻잔을 데우던 물을 퇴수기에 따라버려주세요.”
다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정숙한 분위기로 차를 우리고 예를 지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늘이와 데이빗은 더욱 진지한 모습이었지요. 차를 우리는 방법은 계속 되었습니다.
“자! 앞에 손수건처럼 보이는 다건을 이용하여 다관을 받친 후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는 자신의 잔에 먼저 따라보고 색과 향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팽주는 각각의 잔에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세 번에 나누어 차를 따릅니다. 잔 받침이라 불리는 차탁에 잔을 올려 큰 손님부터 드린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세 번에 나누어 차를 입안에 굴리며 색과 향 그리고 맛을 차례로 음미합니다. 어때요? 어렵지 않죠?”
하늘이와 데이빗도 천천히 차를 음미해보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향과 맛을 느끼기 전에 꼴깍꼴깍 마셨던 것을 약간 후회하며 말이지요.
하늘이도 보성에 살면서 녹차를 수없이 마셔왔지만 녹차가 이렇게 진하고 무거운 맛을 내는지 몰랐습니다. 그동안에는 그저 텁텁하고 흔한 차라고만 여겼었지요. 무엇보다 외국에서 온 데이빗이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차를 우리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뿌듯하였습니다.
하늘이는 늘 즐겨 마시는 녹차이지만 늘 티백이나 가루로 물에 타 마시기만 하여 가볍게만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예를 갖추어 먹어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훨씬 고소하고 단 맛이 느껴지며 진한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맴돌았지요.
데이빗도 굉장히 즐겁고 색다른 추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여린 잎에서 이런 진한 향을 낼 수 있다면서 놀라워했지요.
오늘은 데이빗과 하늘이 둘에게 여린 잎이 남긴 진한 향은 더욱 진한 추억으로 한 잔의 녹차와 같은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또 신년이었다. 맥주 한 캔을 사 와서 안주 없이 마시며 텔레비전으로 제야의 종 치는 걸 구경했다. 혹시 핸드폰이 울리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 해 보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차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 혼잣말을 하며 이어지는 축하 무대를 본다. 벌써 삼 년 째 혼자 맞는 신년이었다.
“이런 호수 말고, 애들이 빨리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가 농담처럼 꺼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리 부부 모두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도 많았고, 서러운 경우도 많이 당했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준비한 듯, 일사천리로 서류 준비를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입버릇처럼 ‘우리 애 교육만은’하고 되뇌었었는데, 막상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에는 그 앞에서 펑펑 울지 않은 게 용하다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부럽지 않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로 신혼 때부터 약속해 온지라, 떠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나는 그렇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새해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호숫가로 나섰다. 날이 꽤 추워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옷깃을 손으로 꽉 여미고 나섰는데, 막상 나서보니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 째 내리던 눈도 이제는 모두 그친 모양이었다.
가족 단위로 호수를 보러 마실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호수의 얼음 위를 걸어보겠다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을 내 딛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에 매달려 웃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아려왔다. 우리 아이들도 딱 저만할 텐데. 아니, 못 본 지 삼 년이나 되었으니 아마 머리 하나는 더 자랐을 것이다.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외로움은 내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덮인 모습이 마치 저 멀리 남극 대륙에 온 것 같았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 애쓰는 남자도 보였다. 저 앵글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목을 움츠린 내 모습은 펭귄을 닮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가족으로서의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약이다. 하지만 수 년 간 쌓여 온 외로움이 사람을 점점 더 비관적이게 하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떡국을 끓여 먹어야 하나, 친구를 만나 볼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비닐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철새들이 먹을 모이를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저어, 저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선뜻 준비되어 있던 봉투들 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며 요령을 알려준 뒤, 제각기 몇 마디씩을 건넸다.
“겨울이니 청둥오리나 쇠오리, 쇠기러기 같은 녀석들이 찾아 올 거예요.”
“여기 사는 녀석들도 아니고, 한 철 잠시 다녀가는 녀석들이지만 반갑게 맞아 줘야지.”
나는 그들이 모두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들도 어딘가에 돌아올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들의 길목에 서서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언 땅에 모이를 흩뿌렸다.
벚나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머리 위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이른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벚나무 밑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흩날릴 것이다.
부스스 바람이 떨려옵니다. 바람이 떨리니 비자나무숲도 함께 떨립니다. 살림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마당에는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손님들을 먼저 맞이합니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고택에서 마른기침 한번 나더니 새하얀 버선을 신은 고산 윤선도선생이 걸어 나왔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몸종을 불러 앞 강가에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잔잔히 부는구나. 고기를 잡을까. 그냥 낚싯대만 드리울까.”
한손에는 부채를 들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숨 한번 쉬고 시조 한번 읊으며 한가로이 시상을 떠올리고 있었지요.
그 때 고산의 증손인 윤두서 선생이 멀찌감치 고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윤선도 선생께 가볍게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윤선도 선생이 시조를 읊는 것을 듣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렵게 말 한마디를 붙였습니다.
“한양의 소식은 이제 궁금하시지 않으신가봅니다.”
“그래. 이렇게 강과 바람과 흙과 함께하는 데 한양인들 벼슬인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좋겠느냐.”
“예. 저도 외조부를 따라 여기서 시를 짓고 자연과 벗 삼아 지내는 삶이 더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윤두서 선생은 자리에 앉아 오늘 강가에서 바라본 갈대와 물결 그리고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 짧게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즐겨 쓰던 붓이 닳아 새로운 붓을 사기위해 화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중국의 한 화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화책에 매료된 선생은 곧바로 화책을 사들고 집으로 왔지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을 보는 순간 시조를 읊고 시를 완성해나가는 것만큼의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본 강, 바람, 풍경들을 쉼 없이 그려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른 채 붓을 계속 휘둘렀지요.
날이 밝았으나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한 나머지 매일 문안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안 윤선도 선생이 윤두서 선생의 집에 찾아왔지요. 그런데 방안에는 수없이 그려놓은 그림들과 화선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조부인 윤선도 선생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두서야.. 그렇게도 그림이 좋으냐.”
“예. 그림은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좋습니다.”
“그래도 난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걸었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 윤선도의 만류에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윤두서 선생은 자연풍경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풍속화를 그리는 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비록 유배지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이로서 더욱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윤두서 선생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본 윤선도 선생도 끝내 그 고집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며칠 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예전의 그 강가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각자 먹 그리고 화선지를 앞에 두고 말없이 붓을 들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은 해남의 물과 달, 바위와 소나무, 대나무의 덕성을 종이 한 장에 담았고 윤두서 선생은 화선지 한 장에 얇은 붓이지만 정확한 필치로 강하고 힘 있게 해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의 한 장의 시조와 윤두서 선생의 한 장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록비가 내리는 해남에 하얀 불꽃을 만들어냈습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재작년에 시집을 간 여동생의 전화였다.
“언니, 주말에 뭐해? 우리 슬비 좀 하루만 봐주면 안 될까? 한번만 더, 응?”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고선 내가 대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이 전화를 건 본 목적을 뒤따라 이야기 하는 동생이었다. 귀여운 조카 봐주는 것에 인색한 이모는 아니었지만 몇 년째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어쩐지 조금 얄미운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하기에는 어쩐지 조금 치졸한 이모가 될 것 같아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슬비는 엄마인 내 동생보다 어쩌면 나를 더 많이 따랐다. 여동생이라고 왜 배 아파 난 자기 자식이 안 예쁠까, 그저 나는 슬비에게 조금 더 약간의 집착이 섞인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꼭 저 아이에게서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싶은 사람처럼.
약속된 주말이 왔고 귀엽게 양 갈래를 하고 공주가 그려진 예쁜 원피스를 입은 슬비가 왔다. 이맘때 다른 아이 같으면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쓸 텐데 슬비는 이모인 내 품에 쏙 하고 안겼다. 그리고는 쿨하게 엄마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여동생은 모처럼 남편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듯했다. 슬비를 내게 맡겨두고는 미안했는지 작은 봉투를 건넸다. 맨입으로 맡겨도 서운했을 텐데 막상 이렇게 돈 봉투를 보니 어쩐지 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슬비 점심부터 좀 먹여줘 라는 말과 함께 동생네 부부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우리 슬비 무슨 반찬 해줄까? 점심 먹고 이모랑 뭐하고 놀지 생각해봐.”
“음, 나 치즈계란말이 먹고 싶어.”
이젠 제법 똑 부러지게 자신의 입장 혹은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고 대견한 마음이 들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들었다. 조만간 이모네 집에 가기 싫다고 똑 부러지게 제 엄마에게 말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슬비는 가방에 싸온 몇 가지 장난감을 바닥에 늘어놓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조잘조잘 혼자 떠드나 싶더니 이내 조용해져 불안한 마음에 거실 쪽으로 얼른 머리를 쏘옥 내밀어보니 무엇을 보는지 꽤나 집중을 한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텔레비전에서는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얼룩소에게 먹이도 주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슬비야 점심 먹자. 맛있는 돌돌 치즈계란말이가 왔어요~”
슬비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몸도 찌뿌듯해서 집에서 놀다가 잠깐 놀이터나 나갔다올까 했는데 슬비는 저곳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점심을 먹이고 차키를 챙겨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을 네비에 찍고 시동을 걸었다. 이래서 요맘때 아이들이 뭐든 다 들어주는 이모를 엄마보다 더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 간판이 보였다. 슬비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카시트에서 몸을 들썩였다. 벌써부터 시골냄새가 진하게 풍겨왔고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저 멀리서 체험장 관리하는 선생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머니, 우선 아이 손부터 깨끗이 씻게 하시고 오늘 체험 등록한 아이들과 함께 젖소 젖짜는 체험부터 진행할게요.”
어머니? 물론 이 사람 입장에서는 엄마처럼 보였겠지만 누구의 어머니, 엄마라는 말이 생소한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졌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손을 씻기는 데 웬일인지 눈물이 고였다. 조카를 데리고 온 것도 좋지만 정말 내 아이와 함께 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즐거워보였다. 또래 친구들과 젖소 먹이도 주고 쓰다듬기도 하며 도심에서 쉽게 체험하기 힘든 체험들을 하며 정서발달과 신체발달을 고루 키워나갔다. 드디어 오늘 체험의 하이라이트, 직접 만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 여동생은 슬비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들은 먹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 그 흔한 자장면도 안 먹이고 직접 만들어 준다나. 그런데 오늘 이렇게 하이라이트 순간을 목전에 두고 물러설 슬비가 아니었다. 평소에 떼를 잘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꼭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떼를 쓰기에 오늘 하루는 그냥 피자를 먹이기로 하며 체험을 이어나갔다.
우선 앞에서 선생님이 치즈에 대한 성분과 치즈 만드는 법을 간단히 설명했고 뒤따라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치즈를 만들었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받아다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소한 포테이토 치즈 피자를 만들었고 오븐에 15분 동안 구워내면 완성이었다. 하나 둘씩 저마다 만든 피자를 오븐 앞으로 가져갔다. 고사리 손으로 피자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리고 피자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 난 이모가 정말 좋아.”
대뜸 고백을 해오는 슬비에 웃으며 이모도 그렇노라고 말해주었다.
“난 정말이야. 치즈가 좋은 것처럼 이모도 그만큼 좋아.”
슬비는 자신이 정말 좋을 때 치즈에 비유해서 그 양을 말하곤 했다. 그러니 나는 슬비에게 엄청나게 큰 점수를 딴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 이모도 슬비 엄청 많이 좋아해.”
“이모, 나한테 동생이 생기더라도 나 많이 좋아해줘야 해.”
여기서 동생은 내가 낳을 아이를 말하는 듯했다. 내가 미쳐 대답을 하기전에 오븐에서 땡 하는 소리가 울렸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피자가 완성됐다. 슬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자를 보고 흥분하여 방방 뛰었다. 직접 만든 피자를 입속에 넣는 순간 치즈가 사르르 녹았다. 어쩐지 마음에 맺혔던 무언가도 함께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슬비는 고단했는지 곯아떨어졌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니 뒤이어 여동생내 내외도 도착했다.
“언니, 오늘 슬비가 말썽 안 부렸어? 매번 고마워. 그리고 이거.”
동생의 손에는 인진쑥과 함께 산부인과 진료카드가 들려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기다리는 일은 항상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온다. 출근길의 버스나 고기가 낚시 바늘을 잡아 무는 순간, 아내의 귀가나 유채꽃이 피는 시기 같은 것들 말이다. 재희의 성화에 오늘도 호수공원에 나왔지만, 내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것은 유채꽃뿐이다.
“아빠! 나 저 쪽!”
아이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아내의 부재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최종 학력으로 가진 막노동꾼이었다. 그날, 아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빨간 가방을 멘 채 유채꽃밭에 서 있었고, 나는 공원을 재정비에 동원되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의 눈이 마주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썩어가던 더러운 하천이 말끔히 정비되어 아름다운 호수 공원으로 바뀐 그 해에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다. 나는 쓰러진 장모님 앞에서,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아내가 눈물을 흘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리라.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하얀 원피스를 선물하고,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의 오른손과 왼손을 잡고 유채꽃밭을 걸어야지. 아내는 장롱 안에서 빨간 가방을 꺼내 메고, 아이가 넘어지면 내게 주었던 노란 손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정성스레 닦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 나!”
재희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무심코 재희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고, 어린애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당황해 재희를 안아 일으키고 무릎이며 팔꿈치를 살펴보았다. 아이는 울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엄마 생각 해?”
나는 울고 싶어졌다.
아내는 재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돈이 없어 차일피일 병원 가는 것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늦어버리고 말았다.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이 아니라,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둔 단칸방에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다가 죽었다.
아마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타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나이였던 재희는 엄마가 끝내 놓치고 만 빈 젖병을 안고 잠들어 있었고, 내가 집에 들어오자 옹알이 소리로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때부터 나는 왠지 아이가 무서웠다.
“다친 데 없지? 아빠 왜 불렀어?”
재희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읽어 달라는 모양이었다. 안내문에는 장자못 설화가 적혀 있었다. 며느리는 장독대 뚜껑을 덮지 않은 것이 기억나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단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유채꽃이 피려면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장미정원에는 장미가 만개했다고 한다. 나는 재희를 안고 천천히 둘레길을 따라 장미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날 장자가 살던 자리에서 커다란 고기들이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고기가 숨 쉰 자리에서 동심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재희가 내 옷깃을 꼭 잡고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심원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