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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지역서울특별시 송파구 편집국        사진송파구청 2017-02-16 호감도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프롤로그
    • 1.무덤 속이 궁금해
    • 2.문화강국 백제
    • 3.경당지구, 왕궁이 있던 자리일까?
    • 4.송파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백제
    • 5.풍납토성 축조에 숨은 비밀
    • 6.1500년 찬란한 고도, 축제로 다시 태어나
    • 7.교육과 재미를 한번에!
    • 8.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
    • 에필로그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서울특별시 송파구 -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지는 잘 알아도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 수천 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이곳이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물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아름다운 몽촌호수를 만나면 그 역사는 무려 1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송파구의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모두 한성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네 소중한 보물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한국의 폼페이 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입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풍납동 땅 아래에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한성백제 유적지가 표시된 지도만으로 보물찾기가 가능할까?

    “유물을 발굴 할 때는 조심조심 파야 해요. 유물을 찾으면 꼭 모눈종이에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보자!”

    “앗! 여기요, 여기! 지금 막 토기가 나왔어요.” “음, 글쎄. 그건 그냥 도자기그릇 조각 같구나. 봐봐. 공정과정에서 새긴 글씨가 선명하지?"

    한성백제박물관에는 풍납토성 일부를 그대로 잘라 옮겨놓은 토성 절개면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당대 백제인의 축조기술은 어떠했을까?

    “백제의 첫 왕성이에요. 현재는 2k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평지에 쌓은 토성 가운데가히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죠. 당시 백제의 국력의 위대함이 느껴지니?”

    “네! 시루떡처럼 층층이 다져 쌓은 판축법, 나뭇잎 등을 깐 부엽법 등 백제사람들 손재주도 참 뛰어났던 것 같아요!”

    경당연립이 있던 자리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터임을 입증하는 중요 유물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말 머리뼈, 우물, 창고, 대부(大夫)라는 한자가 새겨진 목 짧은 항아리까지… 이게 다 어디에 쓰였을까요?”

    “제사 지낼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지. 왕들의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이곳을 사당 역할을 겸하는 왕궁터로 보는 거야.”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는 여전히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근데, ‘한성백제’라 일컫는 기준은 뭘까?

    “어쩔 때는 ‘고대백제’, 어쩔 땐 ‘한성백제’라고 하는데, 왜 그렇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 아들 온조와 비류는 큰 꿈을 안고 남하해 지금의 서울 북부지역에 이르렀을 때가 약 2000년 전. 기원전 5년 온조가 송파 지역으로 천도해서부터 문주왕 원년까지 송파가 백제 수도로 문명을 꽃피운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지.”

    그러나 많은 천도 기록과 여러 가지 지명은 한성백제 수도 실체를 놓고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한성이라는 명칭도 아직은 논란거리. 왕궁성이라는 풍납토성은 어떨까?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가 평지성인 풍납토성은 폐기하는 대신 산성인 몽촌토성을 군사용으로 재활용하면서 한산성, 즉 한성은 점차 백제 고도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부상했다는 기록에서 ‘한성’의 기원은 사실 아직 뚜렷한 정답은 알 수가 없지.”

    “풍납토성은요? 축조에 연인원 100만명이 넘었다는 점에서 왕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관광축제의 영예를 안고 있는 축제가 바로 송파에서 열린다고 한다. 어떤 축제일까?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답게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적잖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송파는 독특한 위상을 점하지. 바로 1,500여 년 전까지 존속한 백제 한성시대의 도읍지였다는 점이야.”

    “그래서 송파가 그 못지않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도라고 말들을 하는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이와 연관된 축제도 유명한데, 뭔지 알 수 있겠니?”

    500년 한성백제시대의 찬연했던 역사문화의 발자취를 재현한 전통문화축제 현장, 그 속에는 어떤 참신한 내용들로 꾸며져 있을까?

    “근초고왕 열병식, 근초고왕 개선행렬 등 역사문화행사도 너무나 흥미로워요!”

    “전통과 미래를 잇는 축제이니만큼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지. 그렇게 역사성을 강조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즐거움이 가미된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들도 많단다.” “백제마을 체험이나 혼불채화, 단심줄 대동놀이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풍납리 일대, 특히 경당 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유물 발굴체험은 흔치 않은 기회라 더 특별하다. 한성백제 왕궁터의 진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포기! 하지만, 책에서만 봤던 유물 발굴을 직접 해보니 꽤 인상적이에요. 500년간 지속된 한성백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돌아갈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사실 백제 왕궁이 있었던 풍납토성은 세계적인 규모의 토성이야. 세계적인 관광지 폼페이처럼 풍납토성 일대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들지 않니?”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구에는 여전히 백제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그 당시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특히 백제 초기 왕도를 구성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핵심 성터로 남아 있습니다. 고대백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송파구를 둘러보는 시간도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역사의 향기에 정서적, 지적 욕구를 함께 충족시켜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송파구로 나가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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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를 따라서, 다산오솔길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를 따라서, 다산오솔길

    지역전라남도 강진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를 따라서, 다산오솔길

    • 프롤로그
    • 1.과거의 사람의 흔적을 찾아
    • 2.다산초당에서 보일까?
    • 3.하늘 끝 한 모퉁이
    • 4.마르지 않는 샘물, 약천
    • 5.그리움이 묻은 정석바위
    • 6.다산의 손때가 많이 묻은 다조
    • 7.숲길의 작은 쉼터 연지석가산
    • 8.다산의 향기가 난다
    • 에필로그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를 따라서, 다산오솔길

    - 전라남도 강진군 -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8년간의 당진에 유배되었던 다산은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의 저서를 집필하며 거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차가 많고 차를 마시기 좋은 길이 많아서 다산(茶山)인지 모르겠지만 강진은 언제나 조용하고 다정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오늘 <트래블아이>와 떠날 곳은 전남 강진의 다산오솔길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오늘의 미션도 공개해야겠지요? 오늘의 미션은 바로 ‘다산오솔길에서 다산을 만나고 오라’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웰빙과 힐링이다. 그래서 걷기를 좋아하며 숲에서 힐링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조금 더 특별한 힐링을 할 수 있다고?

    “요즘은 둘레길이나 다양한 숲길들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언뜻 다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렇다면 오늘 여행이 더 특별하겠다. 200년 전의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곳이거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자들과 숱하게 오가던 길이야. 선생의 발자국이 남아있나 볼까?”

    숲의 따뜻함을 느끼자마자 다산초당과 마주한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약 500여 권의 책을 지필한 곳이다. 아직도 그곳에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선생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다산선생이 11년간 머물면서 실학체계를 구상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셨던 곳이야. <목민심서>나 <흠흠신서>,<경세유표>등의 저서도 다산초당에서 집필하셨다고 해.”

    “지금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책을 쓰시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실 것만 같아.”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 천일각이 있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일각은 유배 당시에는 없었다는데, 그곳에서 만난 다산은 누구를 그리워했을까?

    “와, 강진만이 다 내려다보이네? 여기가 천일각이라고?” “응, 유배 당시에는 없었는데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약전’을 그리워하며 눈물지었을 것이라 하여 만들어졌다고 해.”

    “유배 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선생의 마음이 느껴져.”

    초당 주변에는 다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산4경이 놓여있다. 약천은 다산이 직접 판 샘물로 왜 약천(藥泉)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

    “여기가 바로 약천이구나! 여기 보이는 이 샘물로 차를 우려마시기도 하고 이 샘물로 담을 삭이거나 묵은 병을 치료하였다고 해서 약천이라고 불린다고 해.”

    “지금도 물이 이렇게 나오네! 선생이 마셨던 물을 나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 시공간을 초월한 기분이랄까?”

    다산이 해배될 때 초당 뒤편에 있는 바위에 정석이라 새겼다 한다.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만 같은데?

    “정석이라고 쓰여 있는 이 바위는 무슨 의미지?” “그건 선생이 해배되었을 때 남긴 썼다고 전해지는 바위야. 그 벅찬 기쁨과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

    “응, 기쁨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나는 것 같은데?”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이 커다란 바윗돌은 무엇일까? 다조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다산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곳으로 찻물을 끓여 마시곤 하였다 한다.

    “커다란 바윗돌은 무슨 용도였을까? 앉아서 쉬시던 곳인가?”

    “잘 봐. 약간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지? 여긴 선생께서 차를 끓여 마시던 부뚜막과 같던 곳이라고 해.” “선생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곳이구나!”

    초당 오른편에 있는 작은 연못은 다산이 직접 못을 파고 축대를 쌓아 만들어 물고기도 기르고 작은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이 있다. 꽃나무와 동백 그늘이 꽤 낭만 있다.

    “다산4경 중 마지막으로 보는 곳이 연지석가산이구나. 여긴 작은 정원 같은 곳이야. 선생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직접 못을 파고 물고기를 기르던 곳이야.”

    “숲속의 정원이라. 꽤 낭만적인데?”

    오솔길 곳곳 다산의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난 다산의 향기는 오래 즐기던 찻잎의 고유한 향처럼 그윽하다.

    “천천히 걸으며 숲을 만끽하고 그곳에서 다산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

    “짧은 오솔길에서 선생의 흔적도 느끼고 대나무숲, 편백나무숲을 지나니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

    <트래블아이>와 함께 떠난 강진 다산오솔길 여행 어떠셨나요? 그곳에서 만난 다산과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배생활에서도 백성들을 생각하시던 선생의 마음과 손때가 고스란히 남은 다산4경을 통해 20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길. 맑은 공기와 맑은 소리에서 다산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음미하는 오솔길.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오솔길을 만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다산오솔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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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 책에 취하다

    종이 책에 취하다

    지역부산광역시 중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종이 책에 취하다

    • 프롤로그
    • 1.텁텁한 책 냄새
    • 2.헌 것과 새 것의 조화
    • 3.찬 바닥에 박스 한 장, 그리고…
    • 4.비밀스러운 변신
    • 5.동화 속으로
    • 6.글자예술
    • 7.책의 소리를 듣자
    • 8.오래된 추억의 향수
    • 에필로그

    종이 책에 취하다

    - 부산광역시 중구 -

    ‘책을 읽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들릴 것입니다. 두 손에 들어오는 종이묶음은 반으로 접혀있는 형태를 하고, 한 장 한 장이 넘어가면,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점차 선명해져 갑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언젠가부터 작은 화면 속에 담긴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형태의 E-BOOK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교과서 이외에는 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고들 말합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사라져 가는 책을 마음속에서부터 되살려라!’입니다.

    종이가 사각거리는 소리, 조금은 날리는 먼지와 오래된 종이의 텁텁한 냄새가 향수를 자극한다. 이래저래 쌓인 책들이 정겹다.

    “종이에 쓰여 진 분류표는 처음인 것 같아. 대형서점의 체계화 된 분류만 보다가, 손글씨로 철학, 자기개발, 종교서적 하고 쓰인 것을 보니 정말 옛 골목에 온 것 같은 기분이야.”

    “조금은 현대적으로 개선을 한다면,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을텐데도 이런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놀라워.”

    그저 헌 책방의 고리타분함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현대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이 새로움을 더해주고 있을까?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골목 여기저기에 들어서 있는 모습이, 꼭 책 한 권을 사서 저 곳에 들려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책과 커피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 현대적인 해석이기도 하지만, 이런 헌책 골목의 헌책들과도 찰 어울리는 건 사실이야.”

    책을 사고, 팔고. 공부가 하고 싶었던 지식인들이 모여 이루어낸 책방골목. 그들의 지식이 돌고 돌아 이곳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본래 이 책방 골목은 노점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알고 있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헌책을 팔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해.”

    “그래서인지 책방 안에 들어가기보다도, 이렇게 좁은 골목을 지나면서 밖에 내어져있는 책들이 더 구경하기 좋은 것일까?”

    날이 저물자 책방이 하나 둘 씩 문을 닫는다. 뽀얀 빛을 내뿜던 전구가 꺼지고 우당탕하는 정겨운 소리와 함께 가게 셔터가 닫힌다. 비밀스러운 변신을 시작하는 것이다.

    “닫힌 책방들에서도 볼 것이 있다니 놀라워. 하나하나 놓칠 것이 없는 책방 골목이라는 말이 헛소문은 아니었나봐.”

    “맞아. 뿐만 아니라 그저 좁은 길바닥에도 향수를 자극하는 비밀스러운 공간들이 있으니 그것을 따라 걷는 것도 재미있어.”

    책방 골목을 반쯤 지났을까, 옆으로 난 높은 계단길이 보인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어떤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동화 속 세상을 그림으로 그려 벽화마을을 만들어 두었구나!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

    “아이들은 동화 속으로 직접 들어온 듯한 기분에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있어. 하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

    글자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캘리그라퍼들은 디자인적인 글자를 써내기 위해, 그 속에 많은 감정들을 담아 두었나 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왜 캘리그라피 갤러리가 있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글로 이루어진 예술이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는 해. 게다가 글자를 지루하게 배치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줄에 걸려 빛을 받고 있는 캘리그라피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화려한 것 같아.

    이곳의 책들은 어느새 문화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매년 열린다는 책방골목문화행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책은 읽는 것이지, 소리가 어디에서 난다고 소리를 듣자 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일까?”

    “에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책의 소리는 책장을 넘길 때부터 시작해서 책을 덮을 때 까지 모든 것이 소리가 되어있어. 게다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려보면, 책에서 소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걸?”

    켜켜이 쌓인 책들을 둘러보다, 어릴 적 보았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책이 맞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주인공이 생각난다.

    “이곳에 오면 오래된 추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같아. 책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사진기, 삐걱이는 나무의자까지.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책을 무작정 쌓아놓고 파는 노점상도 아니고, 이제는 조금은 체계화 되어서 볼 것도, 배워갈 것도 많은 부산의 명물인 것은 분명해.”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상인들이 모여 만들 ‘번영회’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헌책방 기증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그들은, 책에 대한 사랑과 헌 책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들임이 분명하지요. 여러분은 이곳에 오면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E-BOOK 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넘치는 책을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예견되는 종이책. 그 종이책에 대한 가치를 마음 속에서부터 살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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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지역서울특별시 도봉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 프롤로그
    • 1.영험한 기운의 은행나무 고목
    • 2.“비나이다~ 비나이다~”
    • 3.때로는 혹한의 시련도
    • 4.800년 고령 나무의 비밀 뒤에는
    • 5.원당샘을 국내 최고라 말하는 이유
    • 6.미네랄 샘물로 자생하는 공원
    • 7.도봉동문으로 가면!
    • 8.우러러 사모하다
    • 에필로그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엔

    - 서울특별시 도봉구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 도봉을 두고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각별한 저항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건, 현대문학의 거장 故 김수영 시인의 발자취가 방학동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관에서 시작해 원당공원에 이르는 ‘김수영 거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에는 오랜 명맥을 이어온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뭘까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김수영 시인이 풀처럼 누운 그곳에서 바로 그 특별함을 만나라!‘입니다.

    연산군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한 아파트단지 안에는 주민들이 영물로 떠받든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뭔가 범상찮은 기운의 이 나무, 찬찬히 살펴보자.

    “키가 10m는 더 돼 보이지? 이 자리를 얼마나 지키고 서 있었던 걸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오랜 기간 이곳을 지나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햇살을 통해 그대로 비추어주는 듯해. 이 고풍스러운 자태, 정말 멋져.”

    “한때 아파트와 오른편 빌라에 막혀 뿌리, 가지가 뻗지 못해 나무색깔이 변하기도 했다지.”

    이 고목은 예부터 나무에 빌면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령수로 통하는 신통방통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일까?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가지에 불이 붙었다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에도 갑자기 불이 났대. 믿겨지니?”

    “믿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아래로 처지는 저 가지가 바로 아들을 점지해주는 기운이 있다는데. 어쨌든 이 지역 명물인 건 분명해.”

    이 영험한 나무에도 시련은 닥친다. 1990년대 주변에 아파트 대단지와 빌라촌이 들어서면서 생육에 지장을 받게 된 것인데? 당시를 회상해보자.

    “처진 나뭇가지에 지지대를 세우고 병충해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도 4차례나 받았어. 도봉구는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나뭇가지를 가로막던 빌라 2동의 12가구를 매입해 철거도 마쳤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지역이 모두 하나로 똘똘 뭉친 거구나! 정말 대단해.”

    사실 이 고목은 가뭄 때 마르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아 수맥을 이룰 수 있었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재 이곳의 두 번째 특별함이 정체를 드러낼 순간이 온 것 같은데?

    “여기가 바로 연산군묘야. 여기서 왼편에 보면 600년 전부터 식수로 사용한 우물이 있어.” “와! 이번에는 600년이야?”

    “그래. ‘원당샘’이라는 우물인데, 8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은행나무가 건강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 우물의 수맥이 이어진 덕분이라는 거야.”

    수백 년간 방학동 사람들의 생활용수로 사용됐던 원당샘물은 건강에 좋기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시중 생수와 비교해 어떤 면에서 뛰어난 걸까?

    “일단 맛만 봐서는 여느 생수 맛이랑 다른 점은 못 느끼겠는데?”

    “미네랄 함유량이 훨씬 높다는데, 맛으로 그 차이가 느껴지겠어? 미네랄 함량은 칼슘과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등 성분으로 측정하는데, 마그네슘은 물에 녹아 있는 경우 특히 인체에 쉽게 흡수되지. 충분한 양의 미네랄을 섭취하면 어디에 좋은지 알고 있니?”

    원당샘 주변은 역사문화 탐방에도 제격이라는 자연친화적인 원당샘공원이 자리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공원에 들어서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파평 윤씨 일가가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이 샘도 ‘원당샘’으로 명명했다지. 근데 2009년에는 샘물도 말라서 흐르지 않다가 이를 복원했어. 지금 이곳에는 원당샘공원도 생겨났지.”

    “와~ 이런 곳에 전통연못부터 꽃담, 사모정까지 다 있네.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식물들이 모두 원당샘물로 자생하고 있구나!”

    도봉산은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명산의 자태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이라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많다느데?

    “도봉산이 북한산이라 불리게 된 건 조선조 중종 때라고 해요.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죠.”

    “이야~ 그런 사실은 처음 알았는걸. 2천 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이 이곳에 있겠구나!” “옛 풍습을 되살리려는 도봉사람들이 이곳은 어떻게 가꿔놓고 있는지 궁금해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다 보면 수려한 경치에 둘러싸인 계곡과 그 인근에 의미심장한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띤다. 그곳으로 가보자.

    “이건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귀로구나!” “정말! 가만, 여기는 또 곡운 김수증 선생 글씨가 있어요!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 누구를 사모하기에 이렇게 새긴 걸까요?”

    “조광조의 학덕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새긴 거지. 또 어떤 글귀들이 남아 있나 살펴볼까?”

    김수영 시인의 ‘풀’은 과연 어떤 이름의 풀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무명초라고 하지만 사실 이름 없는 풀은 별로 없습니다. 단지 그 이름을 모를 뿐입니다. 김수영 시인 역시도 무슨 풀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의 ‘풀’은 바람에 눕고 바람 때문에 일어나고 바람 때문에 울고 바람 때문에 웃었습니다. 옛날부터 도봉구 방학동 사람들은 고목 하나에 울고 웃고 샘물 하나에 일어서는 민초 그 자체였습니다. 방학동 ‘김수영 거리’에서 찾은 여러분만의 ‘특별함’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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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방아소리에 깃든 황금전어의 맛

    갈방아소리에 깃든 황금전어의 맛

    지역경상남도 사천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갈방아소리에 깃든 황금전어의 맛

    • 프롤로그
    • 1.전어의 주산지 사천만
    • 2.전어떼 사천만에 논다~
    • 3.갈방아소리는 요맘때 제맛!
    • 4.가자! 3대 어항으로
    • 5.마도갈방아공연 제대로 보려면!
    • 6.가을 전어가 유독 고소한 이유
    • 7.전어구이 맛있게 먹으려면
    • 8.내년을 기약하는 삼천포대교
    • 에필로그

    갈방아소리에 깃든 황금전어의 맛

    - 경상남도 사천시 -

    전어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지방을 축적하는데, 이때 지방량이 많아지면 꼬리가 황금색으로 변해 ‘황금전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방이 많아질수록 전어의 맛은 더욱 고소해집니다. 이 황금전어 떼가 남해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이 무르익으면 사천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섬 마도의 어부들은 ‘갈방아소리’를 불러 재낍니다. ‘갈’을 갈아 그물에 먹이는 전통어업방식을 이어오며 이곳 주민들은 만선을 염원하는 노래를 합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갈방아소리 정겨운 마도에서 황금전어를 맛보라!’

    가을전어를 놓고 고소함과 풍미를 표현하는 재미진 말들도 참 많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어의 주산지로 알려진 곳이 사천만이라는데, 그 유래를 알 수 있을까?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한 며느리가 가을 전어의 맛 때문에 돌아왔을까마는 그래도 돌아오는 핑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가을 전어가 고소하다는 이야기니까.”

    “전어 하면 섬 마도를 빼놓으면 섭하다 안했능교. 혹시 여기 섬 주민들 노동요 갈방아소리 압니꺼? 그거 알모 전어 맛도 더 맛나다카이!”

    선장은 비슷한 또래의 선원과 함께 자망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천바다에서 그물을 내리는 지점은 어떻게 정해질까?

    “한 수십 군데 될라나. 물때를 봐서 그때그때 (그물) 던지는 데는 따로 안 정한다 안허나! ‘학섬 학떼가 학춤을 추면 전어떼 멸치떼 독안(사천만)에 논다~ 배마다 다 실어도 아직도 전어는 수백통이다~’란 갈방아소리 가사도 니는 몬들어본기가?”

    “정말이지 사천바다가 다 전어의 주 어장이라고 봐야 할까요?”

    면사어망은 풋감을 찧어 그 즙으로 갈칠을 했으나 전어잡이 그물은 대형이어서 마도에서는 장날 소나무껍질을 사 갈을 만들었다. 이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 번 갈을 멕이는 데 필요한 3~4가마니를 요 가루로 맹글어야제. 여염집 아낙들이 찧어내기 참 너무 쌔가 만발이 빠진다카이. 힘센 장정들이 메방아로 작업을 안했나. 큰 절구통 하나에 메를 든 4~6명이 몇 시간을 찧어쌌는디 엄청 대지.”

    “참 그 고단함이란… 얼마나 잊고 싶었겠어요.”

    전어를 만나러 사천시 삼천포항으로 가면 전어잡이가 한창이다. 이곳 삼천포수산시장은 먹는 재미만큼이나 보는 즐거움도 크다는데?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활어전문 상설전통시장어서 그런가, 항구를 중심으로 활어와 회를 판매하고, 농산물, 건어물, 조개류 등을 판매하는 상점과 노점이 정말 즐비하구나!”

    “여긴 40년 전만 해도 인근 어촌과 도서지방에서 밤새 잡은 생선을 사고팔던 포구 물양장이었지. 진주, 남해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된 거라고.”

    전어가 제철을 맞으면 경남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전어축제도 삼천포항 일대로

    “‘학섬 학떼가 학춤을 추면 전어떼·멸치떼 독안에 논다~ 배마다 배마다 다 실어도 아직도 전어는 수백통이다~’ 이 노래 구절에서 뭘 알 수 있니?”

    “독안이 사천만을 가리킨다고 보면 이 일대가 전어의 주 어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맞아 삼천포항수산물축제에 가면 마도갈방아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있다지?”

    밤새 조업해 오전 9시30분에 맞춰 위판장에 내놓는 전어. 갓 손질한 전어를 얼음물에 잠시 담근 후 먹으면 살이 단단해져 더욱 맛이 좋다는데.

    “이놈은 뼈째로 자르고 큰 놈은 반을 갈라 뼈를 제거한 거라요. 도마 위에 가지런히 썰어놓고 된장에 찍어 먹어보이소.”

    “갓 잡아선지 살이 참 탱탱하지? 거기다 고소하기까지 해.” “맞아. 야들야들하니 고놈 참 맛이 제대로 올랐네!”

    전어요리의 최고는 단연 구이다. 서서히 익어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십리 밖까지 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구이를 맛보기 위한 조리 법은 따로 있다는데?

    “전어를 오데 꾸워? 뭐라캐쌌노! 요래요래 칼집 쪼매 내고 굵은 소금 뿌려서 바로 여기 놓고 꾸워야 제 맛 나제!”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더니, 진짜 전어 머리부터 먹어야 한다는 말이 맞네요! 이 머리에 고소한 맛이 아주 몰려 있어요. 굽는 과정에서 어떤 노하우가 있었던 건가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에 빛나는 한려수도의 중심 삼천포대교에서는 매년 ‘삼천포대교 해맞이 축제’를 연다.

    “해맞이는 대부분이 동해안으로 몰려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곳 사천의 경우는 차별화된 장소와 내실 있는 행사들로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는다지.”

    “맞아. 이렇게 아름다운 대교 위에서 다양한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방파제에서는 신년 축포로 새해 새롭게 마음을 다질 수 있으니. 연말에 다시 들르지 않으면 안 되겠어!”

    배를 돌려 돌아오는 길, 사천바다 지척에 보이는 마도를 지날 때 어디선가 흥겨우면서도 애절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마도 갈방아소리는 이 섬사람들의 주된 생계수단인 전어잡이와 함께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온 특색 있는 노동요입니다. 그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소리의 가락이나 노랫말에 자신들의 삶의 애환이 잘 깃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배 위에서 먹는 전어회부터 전어구이는 물론 꾸득꾸득 말려 쪄먹던 전어찜까지 섬사람들의 삶이 담긴 음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갈방아소리 애잔한 이곳에서 황금전어를 두루 맛보는 여행,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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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사이군의 정절을 만나다

    불사이군의 정절을 만나다

    지역경상남도 함안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불사이군의 정절을 만나다

    • 프롤로그
    • 1.신비의 왕국을 찾아서!
    • 2.안라국의 찬란한 위용을 훔쳐보다
    • 3.선비들의 놀이터
    • 4.비밀의 정원 고려동 유적지
    • 5.“조상이 생육신이니 오죽 힘들었을까”
    • 6.금은유풍(琴隱遺風)을 기억하라
    • 7.남강에 지는 노을을 담다
    • 8.떠나는 발길 붙드는 풍경
    • 에필로그

    불사이군의 정절을 만나다

    - 경상남도 함안군 -

    번잡한 일상을 비켜서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가는 세월이 무정하고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럴 땐 아스라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나홀로 여행’이 제격입니다. 경남 함안은 아스라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섯 가야 중 하나인 아라가야의 고도를 기억하며 오랜 기간 숨죽여 왔던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비록 초라한 행색일지언정 조선 선비들의 수고로움이 깊이 배어 있기에 더욱 함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번잡한 마음 밀려올 땐 함안으로 선비들의 족적을 따라가라!’, 이것이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찬란했던 아라가야(阿羅加耶) 1500년 고도(古都) 함안군의 유수한 문화·관광이 빛을 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말이산 고분군. 분명 신비의 왕국이 이곳에 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한 고대 가야사의 신비가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구나. 아라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말갑옷, 미늘쇠 등 우수한 유물들까지 인근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지?

    이곳만 보더라도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아라가야 왕조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가야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1500년 아라가야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해!”

    넓은 공원마냥 펼쳐진 잔디밭이 시원하고 고분 사이로 바람춤을 추는 억새가 장관인 이곳은, 경주가 퍼뜩 떠오르지만 함안도 만만치 않은데 과연 여기는 어디일까?

    “함안박물관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역사적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야. "

    "조촐하면서도 풍요로운 느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 갑옷을 비롯해 안라국의 찬란한 위용이 숨쉬는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어! 나중에 가족과 함께 찾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

    함안 낙화놀이 무진정은 조삼 선생이 후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서 괴산리에 직접 지은 정자이다. 이곳이 선비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이유는 뭘까?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이 정자는 조선 초기의 건축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

    "특히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은 것도 참 재밌지.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이 정자나 이 일대 운치만 보더라도 조선 전기 선비들이 자주 들렀을 법해.”

    입곡군립공원 옆 철길을 지나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세월의 문을 뛰어 넘은 듯 촘촘하게 둘러싼 담장은 마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다고.

    “아직은 아는 이가 많지 않아 언제 와도 조용하군. 유적지를 알리는 게시판도 제대로 없어 몇 번을 물어가며 찾아야 하는 첩첩산중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야."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정을 지키기로 한 학자들이 담장을 친 채 외부와 단절하며 살았던 곳이라 하지? 그의 후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역사책보다도 생생한 울림으로 다가와.”

    철길 옆 도로를 따라 서산서원으로 향하다 보면 서원 옆 길가에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와 반질반질한 배롱나무 아래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전각이 큰 뜻을 품고 서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불사이군의 정절을 지킨 전서공 금은 조열 선생의 신도비가 모셔져 있구나."

    "그 옆에 있는 게 바로 쌍절각이야. 어계 선생의 오세손인 조종도가 정유재란 당시 함양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자 부인 전의 이씨가 자결하여 이를 기리고자 세운 것이라지. 강직한 집안 내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인근에는 어계고택이 있었다. 수령 250년을 훌쩍 넘긴 커다란 은행나무가 솟아 있고 원북재 뒤의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조묘전은 터도 널찍하고 화려하다.

    "어계 선생의 부친이 조안이고, 조부가 전서공 조열이라고 했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금은 조열 선생을 불러서 거문고를 타도록 청했다고해."

    "하지만 수대로 왕씨의 녹을 먹은 신하로서 어찌 이씨 왕과 함께 즐기겠냐며 완강히 사양했다고. 당시 황희와 권근이 그의 절개를 꺾을 수 없으니 공경하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지 아마.“

    채미정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인 어계 조려 선생이 낙향하여 낚시와 소요로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직접 마주한 이 정자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조선시대 세웠다는 이 채미정, 저 살찐 꿩도 구경을 하러 온 모양이군. 왠지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방 하나 정도의 크기도 약간은 실망스럽지만 막상 이 정자 앞에 다다르니 생각이 완전 달라지는걸! "

    "손에 닿을 듯 흐르는 저 남강과 그 앞으로 넓은 들판, 법수면의 뚝방까지 한눈에 들어와! 이곳에서 보는 노을은 그야말로 장관이라지!”

    마산으로 가는 국도변, 단풍옷으로 서서히 갈아입는 나무들은 깊어가는 가을의 상징과도 같다. 붉고 샛노란 이파리들로 흔들릴 때 이수정이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함안은 알고 보면 정자의 도시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정자들이 많구나. 악양루, 무진정, 이수정, 와룡정, 채미정, 합강정까지…. 그 중 무진정과 이수정, 무기연당은 정말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이야. "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차의 모습과 다르게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과 평화로움만이 존재하는 구나. 들어서는 순간 여기서 하루를 접고 싶을 정도야.”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을 죽이고 있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이야기가 함안에 있습니다. 안라국의 찬란한 위용과, 넓은 공원마냥 펼쳐진 고분 사이로 바람춤을 추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사이로 고즈넉한 연못과 아담한 돌섬이 어우러집니다. 그러면서도 길가에는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와 반질반질한 배롱나무 아래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전각과 정자, 누각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번잡한 마음 벗어던지고 싶다면, 지역유림의 이야기가 있는 함안으로 나홀로 여행을 나서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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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지역경상남도 거창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프롤로그
    • 1.지혜의 담장
    • 2.담백한 멋
    • 3.너와 나의 어울림
    • 4.쉬이 가기 힘든 마음
    • 5.집안의 숨은 내력
    • 6.암반에 서린 기운
    • 7.시 한수를 새기다
    • 8.시 한수를 새기다
    • 에필로그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경상남도 거창군 -

    경남 거창의 거창신씨 집성촌 황산마을은 경사가 조금 있는 위천면 평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수백 년 전 지어진 한옥들이 들어차 고풍이 넘치고, 운치 있는 옛 돌담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입니다. 게다가, 누각 처마 밑으로 펼쳐진 수승대를 보면 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풍류시인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담벼락을 따라가며 듣는 이야기에 하루가 부족할 판이라 이곳은 한옥 민박체험 시설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황산마을에 머물며 예스러움을 엿들어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방문객을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담장이다. 흙과 돌 만든 토석담인데, 이때 담장 아랫부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기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여기를 봐! 흙 메우기 없이 돌만 얹어놓았어. 태풍이라도 오면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 비가 많은 거창의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아~ 한번씩 마당을 물바다로 바꾸는 비가 빠져나갈 일종의 배수구인 셈이로구나.” “맞아. 이걸 메쌓기라고 부르지.”

    담장은 대체로 무늬 없이 담백하다. 하지만 택호가 대과댁인 고가의 담장을 보면 유독 장식이 가미되어 눈길이 간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단언컨대 실망스러워. 1㎞가 넘는 이 길이에서 토석담 또한 등록문화재라지만 꽤 단조롭고 말이지.”

    “수키와와 암키와로 꽃잎을 표현한 이곳 꽃무늬 담장을 봐봐. 문화해설사 말로는, 과거 전 문화재청장이 이 마을을 돌다 꽃무늬를 발견하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지.”

    황산마을은 담장 높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 담벼락 대신 ‘너와 나의 어울림’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 담벼락만 봐도, 공간을 구획하고 최소한의 사생활만 보호할 뿐 단절을 철저히 피한 구조야. 단순히 고택들이 모인 마을이 아니라 친족 공동체로 엮여 있기에 가능하겠지?”

    “옆집에 아재가 살고, 그 뒷집에 조카가 있어 애써 차단용 울타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겠지. 손 시린 바람에도 이 길목에서만큼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니?”

    지금은 민박촌으로 바뀌어 언제든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황산마을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터를 잡은 거창 신(愼)씨의 집성촌이다.

    “어림잡아 한옥 수가 60~70채쯤 되겠어.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당시 건립된 집들이 많아.”

    “하지만 여기가 18세기 중엽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해온 집성촌이라는 사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그래서 그런가, 이 마을의 역사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

    특히 가장 잘 보존된 집 역시도 신씨 고가가 꼽힌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고택은 500여 년 역사 외에도 눈이 휘둥글해질 만한 자랑거리가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 이곳 목조건축물을 들여다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위, 경제력을 이해하게 되지.”

    “맞아. 하지만 이 집의 숨은 내력은 따로 알아봐야 해. 여기서 13대 요수 신권의 손자 신당이 6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 가운데 절반이 거물급 인사라는 거야. 정말 대단하지?”

    거북바위를 닮은 수승대로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시간이 멈춘다. 저 멀리 요수정도 시야를 막는 자태가 드러날 것이다.

    “노송 가지는 묵묵히 겨울과 싸우고, 얼음 낀 계곡도 지지 않고 물소리로 호응하고…. 거북바위 사면엔 암반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구나.”

    “거북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쪽을 봐봐. 뻥 뚫린 굴이 보이니? 스승이 햇빛을 피해 여기에 앉아 후학의 글을 심사했다고 전해지지.”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경삼남도 거창 위천면의 황산마을에 부쩍 관심을 보이거나 찾아드는 발길들이 요즘 더욱 잦아진 듯합니다. 이는 아마도 남사예담촌에 이어 경남에서 두 번째로,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돼 그 소문이 십리 밖까지 퍼져나간 게 분명합니다. 화려한 한옥촌을 기대하면서 달려간 황산마을의 고가(古家)는 되레 소박하고 심심한 쪽에 가까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을 역사를 품은 수승대의 비경이 더해지면 황산마을의 백미를 알게 됩니다. 마음 비우고 찾아들기 더없이 좋은 황산마을로 떠날 준비가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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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출과 일몰의 순간

    일출과 일몰의 순간

    지역경기도 안양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4-09-26 호감도

    일출과 일몰의 순간

    • 프롤로그
    • 1.가는 해가 아쉬워
    • 2.안양8경 중 제1경
    • 3.전망대로 오르자
    • 4.시내가 발아래 놓이다
    • 5.해가 지고 난 뒤의 풍경
    • 6.유서 깊은 사찰
    • 7.천 개의 불상과 미륵존불
    • 8.특별한 찰나
    • 에필로그

    일출과 일몰의 순간

    - 경기도 안양시 -

    매해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새해 첫 일출을 어디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곤 합니다. 일출을 보거나 일몰을 보며 다짐하는 새로운 각오는 어쩐지 새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름답기로 이름난 일출 명소를 찾아간다 한들 막상 사진에 남은 일출 풍경은 특별하다 할 만한 것이 없어서 아쉬웠던 기억도 많을 것입니다. 특별한 일출, 일몰 그리고 야경의 모든 순간들을 담고 싶다면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이번 제안에 주목해 보십시오. 오늘의 미션, ‘망해암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다’입니다.

    연말이면 새해 소망과 다짐을 하기 위해 일출과 일몰 명소를 찾는다. 좀 더 조용히 그 순간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망해암으로 가자.

    “벌써 한 해가 다 지났네. 시간 정말 빠르다. 돌아보면 크게 이룬것도, 세운것도 없는데 말이야. 안 그래?”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한 곳에서 가는 해의 아쉬움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보려 해.”

    망해암은 안양8경 중 제1경으로 망해암 일몰을 꼽고 있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암자라는 뜻을 품고 있다는데, 그 비경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망해암? 암자에서 일몰과 일출을 본다고? 바닷가나 산 정상이 아니고?” “응, 모르나 본데 망해암은 안양8경 중 제1경으로 망해암 일몰을 담기 위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이름에서부터 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니?”

    “망해암이라면, 바다를 그리워하는 암자라는 뜻인가?”

    망해암은 일몰과 야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낙조의 장관에 그만 다짐을 말하는 순간도 잊고 말아버린다.

    “망해암 일몰을 보려면 망해암 전망대로 올라야 해. 높지는 않으니까 힘들지는 않을 거야. 다만 조금 서둘러야겠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같이 가.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면 기대 해봐도 좋겠는 걸? 그런데 암자를 먼저 둘러보기 전에 일몰부터 보는 거야?”

    전망대로 오르면 발아래 안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맑은 날은 서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는데, 해가 지고 난 뒤라고 서둘러 내려갈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아무렴 어때. 이야. 듣던 대로 경치 한 번 끝내준다. 안양 시내가 한 눈에 다 보이잖아. 저기 우리 동네도 보인다!”

    “쉿, 해가 저물고 있어. 안양 시내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어. 이때를 담아야 해.” “그런데 해가 저물고 나면 다시 내려가는 거야?”

    어둠이 내려앉은 망해암 전망대는 더욱 더 고요하다. 하지만 시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 찰나의 순간은 낙조만큼이나 장관을 이룬다.

    “그렇지 않아. 망해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낙조만큼 아름답거든. 그러니 오늘은 일몰과 야경을 한 번에 담을 수 있지.”

    “멋지다. 시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어. 분주히 움직이는 불빛이 춤을 추며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망해암은 용화전, 천불전, 삼성각, 대방 등의 주요 건물이 현존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절벽 끝에 위치하여 운치가 더한다.

    “야경까지 담았으니 망해암을 제대로 둘러볼까? 망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처음으로 미륵불을 봉안하고 '망해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여기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아름답지.”

    천불전에는 천불이 부처가 모셔져있다. 그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높이 3m의 미륵존불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천불전에는 세 개의 불상을 중심으로 천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어. 그런데 망해암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용화전의 석조미륵불로, 높이 3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불상이야."

    "조선시대 조세를 운반하던 배가 풍랑으로 인해 위험해 처했을 때 한 승려가 길을 인도하여 은혜를 갚기 위해 찾았다는 절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대.”

    찰나의 순간을 담는 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마음이라면 보다 쉽지 않을까? 어디 한 번 도전해 볼까?

    “매번 일출과 일몰을 찾아다니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곳도 없었던 것 같아. 조용한 사찰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라니. 어쩐지 소망이나 다짐도 더 잘 이루어질 것 같아.”

    “맞아, 유명한 일출 명소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조용하고 특별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을 담는 것도 하나의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 될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처럼.”

    찰나의 순간은 짧은 순간에 강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닷가나 산 정상 등 국내 손꼽히는 유명한 일출, 일몰 명소가 있지만 망해암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맞는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일출, 일몰 그리고 발아래 놓인 시내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화려하게 도심을 비추는 야경까지 담을 수 있는 망해암에서 새로운 다짐과 특별한 소망을 이야기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공유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야기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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