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와 신명나게 놀아보세!
- 경기도 안성시 -
주문한 사람의 마음에 꼭 맞는다 하여 탄생한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바로 안성유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말이 시작된 곳도 단연 경기도 안성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대표 놀이 문화인 남사당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안성의 특색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너리굴마을과 미술관, 입사박물관, 아트숍, 조각공원 등 온갖 전통공예 체험전시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문화와 예술`을 고스란히 감동으로 만들어줍니다. 오늘의 미션입니다, ‘안성의 전통과 어우러져 신명나게 놀고 오라!’
남사당은 조선 후기에 장터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곡예와 춤, 노래 등의 다양한 공연을 펼쳤던 집단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
“남사당은 40명이 넘는 집단이었다고 해. 남사당패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바우덕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다양한 연령층이 포함되어 있었을지 짐작이 가니?”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광대패들이 바로 남사당인가요? 외줄을 타는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는데, 그걸 여자가 해냈다니 조선의 시대상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말 대단하다.”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덕으로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었다. 집안 형편 문제로 불당골 남사당패에 맡겨진 바우덕이가 열다섯 살에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바우덕이는 이른바 천재였다고 해. 풍물놀이뿐만 아니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단다. "
"성격도 호탕하였던 바우덕이는 남자들과 어울리며 리더십을 키웠는데, 불당골 남사당패보다 큰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전국적인 유명 인사였다고 해. 그래서 만장일치로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된 거지.”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된 청룡암. 이곳이 남사당패와도 연관이 있다는데?
“이곳은 1900년대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지?” “맞아. 청룡사에서 겨울을 난 후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고 알려지고 있지.”
“절 건너편에 있는 남사당마을이 그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듯해.”
바우덕이는 오랜 유랑 생활 탓에 스물셋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폐병을 얻어 죽게 된다.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쓸쓸한 바우덕이의 죽음에서 남사당패를 엿볼 수 있다.
“안성 남사당패는 훗날에 이르러서는 아예 ‘바우덕이’라고 불렸다고 한단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은 바우덕이인 셈이야. 바우덕이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고도 해."
"바우덕이가 병에 걸리자, 남사당 단원들이 모두 바우덕이를 간호했다고 하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할 때였을 텐데, 모두들 그만큼 바우덕이를 사랑했대.”
바우덕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안성유기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추억 속의 전통 문화유산이 된 안성유기의 거쳐온 세월을 더듬어보자.
“안성유기는 점차 생활양식이 유기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하게 되면서 자취를 감춘 것 아닐까?”
“진짜 계기는 따로 있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국의 유기를 전략물자로 거둬들이면서 수난을 겪어야 했어. 그러나 뜻있는 유기공들이 이곳 안산에서 유기를 만든 거야.”
해방과 더불어 안성시내 곳곳에서 유기업이 번성하게 된다. 안성맞춤박물관에 가면 그 진가를 톡톡히 만나볼 수 있다.
“봉남동 유기공방 뒤뜰에 이렇게 생각지 못한 유기박물관이 있었구나. 안성유기의 제작방법과 여러 명사들의 유기작품, 다양한 수집 청동기, 생활용품, 도자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안성유기에 방자 제작법이 도입된 시기 등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어. 이때가 안성유기의 절정을 이루게 된 때 아닐까 해.”
인근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 건축물들의 자태가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돌, 수풀들이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마을 하나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예 체험이 가능하다는데.
“금, 은, 동 등 바탕 재료에 다양한 색상의 유약을 올리고 고온의 가마에 구워내 이처럼 다양한 디자인에 필요한 색상을 연출할 수 있다니!”
“요새 이 너리굴문화마을 전통공예기법 강좌가 참 인기라지? 여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나무, 흙과 함께 사는 꿈을 키워온 임계두 원장의 꿈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야.”
식당이나 카페, 숙소, 문화시설 등이 모두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을. 숙소 건물 뒤편에는 작은 동산이 있고, 여기에는 각종 예술작품들이 즐비하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예술작품들은 `조화`와 `균형`이 흘러 넘치는 듯해. 문화마을 안에는 너리굴 미술관과 입사박물관, 너리굴아트숍, 조각공원 등 갖가지 문화시설이 있다지?”
“맞아.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안성의 특색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이곳 미술관에는 신진 중견작가들의 작품전시가 끊임없이 이어져왔으니까.”
안성에 가면 왠지 바우덕이의 화려하고도 슬픈 생을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사당바우덕이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토요일에 남사당전수관을 찾는다면 축제장에서 느꼈던 신명을 되뇌어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수려한 외양과 빛나는 광채로 명성을 얻고 있는 안성유기는 70여 년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곳 역시 이곳 안성입니다. 전통공예 체험과 바우덕이 유래를 짚어가다 보면 오랫동안 묵혀둔 자신의 꿈까지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포기한 꿈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떠세요?
여유로움을 오르내리다
- 대구광역시 남구 -
‘앞산’. 어쩐지 뒷산, 옆산도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이름입니다. 가벼운 이름만큼이나 대구의 가벼운 등산코스로 이름이 난 앞산은, 초록빛 가득한 산의 전경과 빼곡히 들어선 빌딩들의 경계선이 독특한 곳입니다. 오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 구경 할 거리도 여러 가지인 앞산은 인공시설물이 대부분 철거가 되어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도심에 맞닿아 있지만,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역사를 모두 이어오고 있는 앞산!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도심 속에서 아름다운 여유를 찾아라!’ 입니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달려가면, 어느새 산의 풀 냄새가 풍겨온다. 종점이라지만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앞산자락길’이 시작된다. 도시 옆 산길은 어떤 모습일까?
“버스를 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높은 건물이 없네요. 그래서 그런지 산이 더 높아 보이고 공기도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래, 항상 앞산공원 주차장으로 갔었는데, 이렇게 앞산 자락길로 가는 방법을 택하니, 자동차도 없이 편하게 산에 올 수 있구나. 이제 슬슬 올라가볼까?”
충혼탑을 지나 들어선 앞산 자락길. 가파르게 시작하지만 어느새 도보하기 좋은 길로 느껴진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는 여유를 느껴볼까?
“분명히 산을 걷고 있는데,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지가 않아요. 산이 높지 않을 걸까요?”
“아니란다. 앞산 자락길은 산 아래의 앞산순환도로와 일정높이의 이격겨리를 두고 산자락의 등고선을 따라서 조성되었어. 기존에 있던 산책로와 오솔길이 연결되어 조성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단다.”
앞산 자락길을 느긋하게 오르다보면, 어느새 꽤 낡은 건물이 나온다. 친구도 없이 혼자 서있는 케이블카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야. 많이 낡았지? 처음 지어진 이후로 유지, 보수만 이어오고 있는 케이블카는 이제 앞산의 명물이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 있으니,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구나.”
”예전에는 놀이공원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사람도 많았겠죠? 지금은 등산객들만 있는 고요한 기분이 꼭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케이블카가 서서히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산의 경계를 둘러싼 앞산순환도로와 대구의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시에 있는 것도, 자연에 있는 것도 아닌듯하다.
“와, 정말 전망이 좋아요! 이 경치 때문에 다들 앞산에 오르나봐요!”
“그래, 맑은 날은 대구의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단다. 바쁜 도심이지만 적막하게 보이는구나. 우리만 도심에서 떨어져 나온 기분이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니?”
전망대의 조형물까지 가는 길은 시원한 계곡 물줄기가 벗이 되어준다.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에 동화되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자.
“해가 지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정신없이 흘러가는 저기 저 여유 없는 도시도 아름답게 보일 정도예요!”
”유유히 흘러가는 이 계곡물을 봐. 자연은 이토록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내어주고 있잖니.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느끼기 위해 이 산에 오르는 것 아닐까?“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정상에서부터 걸어 내려가려는 길은 또 어떤 정취를 선사할까?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해가 진 뒤에도 위험하지 않게 내려갈 수 있단다. 해가 지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인데, 야경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앞산은 안전하게 조성되어 있지.”
산을 내려오니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바로 ‘안지랑 곱창골목’이다. 선선한 날씨 덕분인지, 야외에 테이블을 놓고 한껏 즐거운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산을 내려와서 곱창이라니, 참 독특한 조합이네요. 우리도 여기서 곱창 먹고 가요!”
“대구에서 워낙 유명한 곱창 골목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참 많구나. 등산을 한 사람들도 많이 찾지만, 그저 외식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단다.”
대구 남구에 위치한 앞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에 대한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대구의 명물은 이렇게 어울림의 의미를 담고 있을까?
“앞산이라고 해서 가벼운 언덕 정도로만 생각하고 왔는데, 정말 좋은 산인 것 같아요. 여기저기에 비와 탑 등이 세워져 있던데, 다음엔 역사 공부하러 와야겠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다음엔 앞산 자락길의 다른 방향을 따라 올라가 보자꾸나. 자연도 즐기고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단다. 볼 수 있는 것도, 배울 것도 더 많은 곳이 바로 이 곳 앞산이란다.”
등산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싹 날려주는 앞산. 산의 시원한 냄새를 맡고 천천히 걸어올라 가다 보면, 어느새 전망대에 다다라 우리의 삶을 내다볼 수 있게 해줍니다. 갑갑하기만 했던 도시가 넓게 펼쳐져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다가올 때,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과 여유가 늘 우리 곁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에 위치한 고즈넉한 산에서, 내 삶의 아름다움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앞산! 이번 주말 뒷산, 옆산 말고 앞산에 가서 가벼운 산책은 어떠세요?
다양한 자연이야기와 함께 만나는 속리산 에코투어
- 충청북도 보은군 -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에는 속리산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환경을 테마로 한 ‘에코투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문장대, 신선대, 비로봉 등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속리산에 가면 대자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속리산의 깃대종인 하늘다람쥐와 망개나무를 비롯해 비밀스런 숲속 이야기와 천년고찰 법주사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속리산국립공원의 대자연 속에 숨어든 이야기를 찾아라!
가옥에서의 전통음식 체험, 자연공예, 인형극까지 속리산의 에코가이드는 다정한 친구이자 숲길의 동반자요, 궁금증을 풀어주는 속리산 해결사다. 그를 따라가보자.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스로 자연을 관찰할 수도 있지만, 저희 에코가이드(Eco Guide, 자연환경안내원)가 소나무, 참나무 이야기와 법주사 등 다양한 속리산의 자연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 저탄소 녹색체험으로 속리산의 깃대종인 망개나무와 하늘다람쥐의생태 등 자연을 이해함으로써 자연 사랑을 키우게 될 수 있죠!”
야영장∼법주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오리(五里)숲을 걸으면 숲속 황톳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법주사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행로인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들었을까?
“와 황톳길이 나 있어 맨발로 걸어도 좋겠어요. 이 길을 걸어가니 나무들이 향기로 말하는 듯해요. 그런데 이곳이 오리가 많아 오리숲인가요?”
“이 오솔길의 길이가 5리(2㎞)라 오리숲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약 1.5km 남짓 된 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길게 늘어서서 끝없이 나 있을 것 같죠?”
가족과 함께하는 승마체험으로 속리산의 자랑인 기마 순찰대와 함께 오리숲을 거닐며 말에게 먹이를 주며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
“승마체험은 여타 국립공원에서는 할 수 없는 유일한 체험프로그램이에요. 별도의 원형마장과 마방을 갖추고 있죠.”
“선생님! 저 말 위에 아주 쉽게 올라탔어요! 어서 빨리 기념촬영 해주세요. 이렇게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진 탐방객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몇 가지 에티켓이 있다는데?
“생태관광지역을 갈 때는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정해진 탐방로를 벗어나서도 안 되고 산나물을 채취하는 등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 역시 금물이겠죠?"
“네, 저도 알아요! 이곳에 살면서 스트레스 받을 동물들을 위해 큰 소리로 떠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어요?”
팔상전, 쌍사자석등의 비밀, 수정교 돌탑의 전설, 법주사 가람 양식 등 우리 옛 문화와 관련한 해설을 듣는 건 에코여행에 즐거움을 더한다.
“법주사에는 어떤 역사적 의미가 담겼나요?” “법주사(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조사(義信祖師)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에요."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으로 경내에는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 등 국보 3점과 보물 10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답니다."
중요민속자료 제134호인 선병국 가옥에서는 김치, 된장, 장아찌 담그기, 한과 만들기 등 속리산 자연재료들로 전통음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99칸 가옥으로 더 알려진 선병국가옥은 화강석 기단과 둥근 기둥을 받친 팔각 주춧돌, 단아한 서까래와 기와 등 보통 사가에서는 볼 수 없는 기품이 서려있습니다.”
“수대째 내려오는 간장의 역사가 유명한 선병국 가옥에서 담근 김치라 특별해요. 집으로 가져가서 오랫동안 맛볼 거예요.”
생태관광을 마치고 다시 이어지는 속리산 등반은 자여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제2의 에코여행이다. 속리산 등반은 크게 4개 코스로 나뉘는데 어디로 향해볼까?
“법주사 지구 탐방지원센터부터는 어디로 이어지나요?” “문장대까지 산행을 할 수 있는 약 12km 코스로 향해볼까요? 등반코스 중 탐방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관인 문장대는 구름 속에 묻혀 있어 '운장대'라 불렸어요. 세조가 이곳에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해 문장대로 바꿔 부르게 됐죠.”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을 때 들렀던 속리산. 오리나무숲을 지나 맑고 차가운 계곡도 지나면 어느새 속세를 벗어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까?
“속리산국립공원에서 만끽한 자연과의 대화, 어땠나요? 세상 고민 잠시 잊고 깊은 숨 들이마시며 자연의 품에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이 됐나요?”
“네! 생태를 그대로 간직한 속리산국립공원에서 자연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자연과 인간의 상생, 자연과의 소통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와 자연,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속리산국립공원에 가면 우수한 자연, 문화, 역사자원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체험과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서 전문해설가의 동행으로 안심하고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에코여행이 또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겠죠? 다양한 체험이 가득한 속리산에서의 추억 그 자체만으로 미래에 소중한 에너지가 됩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돌아오실 건가요?
수탈의 기억마저 품어내다
- 경상북도 포항시 -
포항시 남구에 자리한 구룡포는 일제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누구나 이곳에 가면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을 점령한 침탈 현장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국권을 빼앗긴 암울한 기억 앞에서 이윽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수 있는 유능함으로 역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 동해 앞바다에 숨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은 ‘황금어장에서 행복과 슬픔을 느껴라!’
기묘한 현무암이 늘어선 구룡포해변은 동해바다를 향해 뻗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노력이 채 끝맺지 못해 바닷가에 머무른 모습이 애처롭다.
“구룡포의 이름은 아홉용이라는 뜻이야. 이곳에서 승천한 아홉용과 오르지 못한 한 마리 용의 이야기는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들이 용이라 말했던 그것은, 혹시 이곳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그들의 모습이 비친 바닷가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일본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인 냥, 구룡포의 한 골목에는 일본식가옥이 길게 늘어져있다. 조용한 우리나라의 어촌마을에 왜 이런 건물들이 세워졌을까?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는 이곳은 근대 문화 역사 거리라고 해.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어업을 하기 위해 방파제를 쌓아 만든 곳이래.”
“풍부한 어장 때문일까? 일본인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힘들었던 역사의 기록이 이렇게나 길고 긴 거리로 남아있다니, 조금 슬퍼.”
골목을 지나다 보면 옛날 여관으로 사용되었다는 건물 내부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오래된 이 건물에는 조금 콤콤한 냄새와 함께 또 한 번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일본식의 가옥을 일본인이 직접 지은 것이라 그런지, 한국적인 정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집 구조를 하고 있어.”
“맞아. 아무리 따라하려해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지. 우리에게 남은 침략의 역사와 아픔을 잊지 않도록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지?”
서민들이 살았을 법한 일본식 가옥들이 즐비해 있지만, 이곳은 무언가 남다르다. 2층으로 지어진 이 화려한 목조건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마네킹을 이용해 일본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 꼭 박물관처럼 꾸며놓았어. 실제로는 개인의 가옥이었다니 믿겨지지가 않아.”
“일본식 화장실의 모습이 정말 특이해.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화장실과는 전혀 다르게 나무로 만들어져있는 화장실이, 역사를 그대로 보존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일본인가옥 거리의 중심에는 구룡포공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에 서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에 한동안 매료되겠지만 얼마 못가 일제 침탈의 흔적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이곳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되고 마을 처녀들은 정신대 끌려가고…. 이 공원 둔치에서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울부짖었을 거야. 구 충혼탑 기단 신사터 초석이야.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가 있던 곳이 여기라지?”
“맞아. 일본사람들이 다 떠나간 그해 가을, ‘왜색일소’를 외치며 여기에 시멘트를 부었어.”
일제강점기의 기구한 역사는 사실 구룡포의 작은 단면일 뿐이라고 했던가. 구룡포를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구룡포를 조금 달리 바라볼 수도 있겠어.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 물길에 숨어 있으니까.”
“구룡포해수욕장과 그 인근의 주상절리, 대보면과 구룡포읍 경계에 위치한 고인돌, 등대박물관까지, 가만 생각해보니 이곳만 돌아보고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다 싶어!”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해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말봉재 정자에 올라서면 우리 땅 동쪽의 눈부신 어항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저기 저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와 머구리, 과거의 어두운 흔적은 금세 잊어버릴 법한 풍경이야.”
“하루 세 번 어판장이 열리는 구룡포항의 모습도 그래. 너울대는 동쪽 바다의 매력을 한없이 부풀리고 있지. 긍지의 항구, 긍지의 사람들, 시간이 지나도 잃지 않는 빛과 같아.”
화려한 구룡포항, 그러나 이 아름다운 항만 역시도 ‘축항’이라는 침탈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맞아. 1920년대 일제가 구룡포 앞바다에 축항을 한 거야. 일본인이 대량 어획을 하는 큰 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기 어업은 일본인이 다 장악했지. 참 씻어내기 아픈 역사야.”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자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긍지와 아픔을 그들은 알까?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침탈의 역사에 대한 뉘우침과 교훈’으로 남길 바랄 뿐이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구룡포. 지금도 대게, 고래, 과메기, 오징어 할 것 없이 어마어마한 어장을 품고 있는 이 포항의 대표 어항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구룡포를 조금만 더 가까이 서서 들여다보면 즐비한 일본식 가옥과 신사터 등을 만나 우리네 아픈 기억을 반추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비옥한 구룡포 앞바다의 물숨이 일제강점기 기구한 역사의 시작이라니. 믿기시나요? 우리 민족 역사의 아픔을 되짚어가는 조금 특별한 포항 여행, 여러분 가슴에는 어떻게 다가올까요?
전에 알던 그 맛이 아니다?
- 경기도 의정부시 -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욱 맛깔나게 느껴지는 음식, 부대찌개. 칼칼한 국물에 햄과 김치가 함께 있으니, 밥 한 공기가 비워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어느 지역의 골목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인데다가 집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메뉴입니다. 그런데, 이 부대찌개도 원조가 있다고 하니 그 발원지가 바로 의정부시입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미션, ‘의정부에서 원조 부대찌개를 맛보고 오라!’
의정부 경전철 중앙역 2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원조 부대찌개의 참맛을 볼 수 있다는데 정말일까?
“안 그래도 날씨가 추워져서 칼칼한 음식이 당기던 참이었어.” “추운 날엔 역시 부대찌개지. 어렸을 때에는 김치찌개에 햄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했는데, 크고 나서 보니 부대찌개에는 부대찌개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원조 부대찌개의 고장에 왔으니, 어떤 부대찌개를 먹을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데?”
이곳의 부대찌개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매년 부대찌개 축제를 열만큼 특색 있는 것이 바로 의정부의 부대찌개.
“작년에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대찌개 축제가 열릴 때 와서 참 재미있었어.” “부대찌개를 소재로 축제가 열렸다고? 재미있는 사실인데?”
“골목 가득 만국기가 걸리고, 각 매장 앞에 마련된 매대에서는 포장된 부대찌개를 팔았지. 각설이패 공연도 했었고 말이야. 볼거리가 많으니 먹을 맛도 더 나더라.”
이 골목에서 ‘어느 집이 가장 맛있는 집이냐’고 묻는 것은 실례다. 평균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곳의 주인장들은 제각기 특별 레시피를 개발했다는데?
“음, 여기 이쪽 집은 국수장국을 육수로 써. 저쪽 집은 야채 육수를 우려냈기 때문에 국물이 뽀얗고, 저 앞 골목에 있는 집은 육수에 카레가루를 넣어서 독특한 맛이 나지.”
“네가 한동안 의정부로 부대찌개를 먹으러 다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정말이었구나. 부대찌개를 처음으로 개발한 집도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야?”
의정부는 부대찌개가 처음으로 생겨난 곳. 소시지와 다진 쇠고기, 햄, 파, 당면, 두부를 넣고 끓인 육수는 다른 지역보다 국물이 많고 맑다고 한다.
“어느 날,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들고 나와서 ‘이걸로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달라’고 말했대. 그래서 처음 했던 음식은 부대 고기볶음이었는데, 나중에 부대 고기로 찌개를 했더니 그것이 더 좋았다고 해. 부대찌개가 탄생한 순간이지.”
“미군부대에서 나온 고기로 찌개를 끓였단 말은 들었는데, 구체적인 탄생비화가 있었네.”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에 들어서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부대찌개를 먹으러 이곳을 찾은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맛!
“이야, 이거 참 먹기 전부터 반성하게 되는데? 사실 그 흔한 부대찌개를 먹으러 의정부까지 오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거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원조의 맛을 알기 때문에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한 것이겠지? 한 술을 뜨기 전부터 맛에 대한 신뢰가 생겨.”
“속단은 금물이야. 물론 한 입 먹자마자 의정부 부대찌개에 반하게 될 테지만 말이야.”
재료가 든 냄비가 나오고, 이어 주인이 직접 육수를 부어 준다. 뚜껑을 덮고 끓이기만 하면 부대찌개 완성! 찌개를 주문하면 밥이 딸려 나오니 알아둘 것.
“양이 정말 푸짐해! 세 명이서 먹어도 충분할 것 같은 양인걸? 라면 사리뿐만 아니라 생우동면, 소고기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네!”
“이 낡은 냄비를 좀 봐. 아주 오랫동안 부대찌개만을 끓여온 냄비를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니? 아, 보글보글 부대찌개 끓는 소리에 벌써 침이 꼴깍 넘어가.”
원조 부대찌개로 유명한 곳인 만큼, 각 가게에서는 부대찌개 맛있게 먹는 법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가게마다 조금씩 차이점이 있으니 공통된 사항만 살펴볼까?
“먼저, 사리는 처음부터 함께 넣고 끓여야 맛있대. 뚜껑을 덮고 3분 정도 기다렸다가 한 번 저어주면 찌개가 맛있게 익는다고 하는데? 나는 뚜껑을 덮어 끓이는 부대찌개도 처음 봐.”
“면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데, 짠지를 국물과 함께 먹는다는 게 특이한 것 같아. 찌개를 거의 다 먹었을 때 즈음에 냄비에 밥을 넣고 볶아도 참 맛있다고 하더라.”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의 특색 있는 서비스들 중 하나는 바로 택배 서비스.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이제는 식당에서 집으로 배송을 해 준다고 하는데?
“뭐라고? 부대찌개를 배달시켜 먹은 적은 있어도 배송시켜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혹시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만의 비밀 육수도 함께 배송되는 거야?”
“당연하지! 그게 빠지면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었다고 할 수 있겠어? 육수는 물론, 라면사리까지 배송되니 냄비만 준비되어 있으면 집에서도 의정부 부대찌개를 맛볼 수 있어.”
의정부의 명물 부대찌개가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으로 재탄생했으니 먹거리도, 볼거리도 더 푸짐해진 것 같습니다. 이곳의 부대찌개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발걸음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의정부 부대찌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찾아오는 이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는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의 맛집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대찌개에 질리신 분, 하지만 부대찌개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부대찌개 원조의 맛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은 당장 의정부를 찾아가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월출산 정기를 품다
- 전라남도 영암군 -
전라남도 영암. 그곳에는 산세가 금강산과 비슷해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별명을 지닌 월출산이 있습니다.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암괴봉으로 이뤄진 자연 경관이 매우 뛰어납니다. 한국의 산들 중에 가장 잘생겼다는 월출산국립공원 전역에는 산의 맑은 기운과 맥반석과 산림에서 방사 하는 원적외선과 피톤치드를 쐴 수 있는 기체험 공간이 널려 있습니다. 출발 지점에 있는 월출산 기찬랜드에는 천연자연수 풀장, 기건강센터 등 볼거리와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은 ‘월출산의 정기를 품어라!’입니다.
여름을 즐기기 위해, 계곡과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늘 정비되지 않은 모습과 기대 이하의 맑음에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산 속에 수영장을 조성했다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이 있을까? 자연 풀장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그저 입장료를 받기 위한 곳이면 실망할 것 같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월출산의 기를 가득 담아 흐르는 물과, 단순한 계곡의 모습이 아닌 화려한 ‘기(氣)찬랜드’의 모습은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한 폭의 동양화에 담긴 듯, 아직 새벽안개가 채 거치지 않은 월출산의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그를 감싼 강인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월출산은 산 속에서 달이 떠오르는 듯한 신비로운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해. 그렇다면 월출산을 달을 품은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맞아, 그 속에 기운이 가득하다고 하니, 기찬랜드가 만들어놓은 이 자연풀장과 휴식처는 기 기운 속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일 거야.”
해발 500m를 넘어서면 산의 녹음이 더욱 짙어지고, 그만큼 마음속을 채우는 월출산의 기운도 실감이 난다. 이곳에서 뜻하지 못한 다리 하나를 만날 수 있다는데?
“이 구름다리를 좀 봐요. 너무 아찔해서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겠어요.”
“국내 최고 높이라니 겁먹을 수밖에. 하지만 불안해할 거 없어. 1978년에 만들어졌지만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새 구름다리를 설치했으니까.” “휴~, 그러면 한번 믿고 건너볼까요?”
월출산 천왕봉 자락의 기가 한 곳으로 모여 흐른다. 여느 워터파크처럼 화려하지 않은 자연은, 여름을 그대로 담은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수영장이 있어. 하지만 그보다도 야외에 흐르는 계곡형의 자연 풀장이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아.”
“야외라는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맑은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잖아. 월출산을 찾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청명함이, 이 자연풀장이 아닐까?”
고여 있는 수영장이 아니다. 정말 산에 흐르는 계곡마냥, 그렇게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망설임 없이 사람들이 뛰어든다. 이 물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수영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들은 모두 월출산 계곡을 흐르는 맥반석 자연수라고 해. 억지로 정화 해놓지 않은 자연의 깨끗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물도 좋고, 자연도 좋고.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많고, 친구들 끼리 오기도 한 사람들이 모두 이 맑은 물에서 하나같이 나쁜 기운을 씻어내고 있는 것 같아.”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지쳐오는 몸을 앉히고 싶어진다. 그러면 그저 시원한 나무 그늘 한 곳을 골라 자리를 깔고 앉는다. 이 자연이 모두 내 것 같을 것이다.
“수영장이 갇혀져 있는 것처럼 자연과가 구분되어있지 않아서 산에 온 것인지, 수영장에 온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야.”
“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평상이나 돗자리도 모두 대여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겠어!”
월출산 출발 지점에 있는 기(氣)찬랜드에는 천연자연수 풀장을 비롯해 가야금동산, 하춘화 노래비 등 볼거리가 가득하고 기(氣)건강센터와 같은 휴식공간도 갖춰져 있다.
“지상의 기를 모아 하늘로 솟구치는 형국의 월출산을 그저 험한 바위산으로만 생각했는데, 바위가 다 원적외선을 내뿜는 맥반석이라니, 맥반석의 기를 받으니 온몸에 활력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겠어요.”
“나는 아직 피로가 덜 가셨어. 기건강센터에서 전문 안마사의 안마시술을 한번 받아볼까?”
기찬랜드에는 월출산 맥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수를 이용한 5개의 자연형 풀장도 갖추고 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무더운 여름 뜻하지 못한 피서를 누려보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그만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정말 잘 되어있어. 게다가 아이들이 놀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던데?”
“안전요원들이 쉬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안전도 잘 보장되어 있는 것 같아. 우리는 저 깊은 수영장에 가서 조금 더 놀자!”
월출산의 기가 잘 스며있는, 전라남도 영암. 이곳에는 새로운 기의 흐름이 있습니다. 문화와 레저가 어우러진 휴양시설 ‘기찬랜드’에서는 자연수로 조성한 풀장을 비롯해 월출산 웰빙 '기찬묏길', 산림욕장, 기건강센터 등을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여름 내내 잃어버린 원기를 이곳에서 다시 회복해보는 건 어떨까요? 자연 속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휴식과 정기를 담은 월출산의 정기를 모두 받아 갈 수 있습니다. 풍부한 자연의 기운이 그득한 기찬랜드가 있는 월출산은 한 여름 보양식과 같은 기운을 내어줍니다.
함께라서 더 즐거운 문화예술마을 모기동
- 서울특별시 양천구 -
양천구에 살면서 ‘모기동’을 모른다면 일단 의아한 눈길을 아니보낼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기동 자체가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목2동 주소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한 것과 더불어 마을에 대한 애정을 담아 붙여진 주민들의 애칭입니다. 하나같이 돈 벌기도 바빴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뭔가 일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모기동 마을축제’까지 생겨났다는 그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서툴고 투박하지만 함께라서 즐거운 그들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라! 바로 이것이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모기동 마을축제의 중심에는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단체 ‘플러스마이너스 1℃’가 있다. 주로 어떤 일들을 하는 사람들일까?
“‘플러스 마이너스 1도씨’요? 지구의 온도는 1℃ 낮추고 사람의 온도는 1℃ 올리는 실천을, 예술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철학을 담았지요!” “‘예술’에 ‘철학’까지? 하하~ 살짝 어렵네요.”
“주부들과 함께 지역의 버려진 공간을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고민하는 모임이랄까.”
개인작업실에서 시작했다가 사람들이 점차 모이면서 공동작업실로, 그렇게 모기동으로까지 몸집을 불려나간 나무도예방. 서로 모여 어떤 이야기들이 이루어진 걸까?
“처음부터 거창한 일을 꾸미려고 모인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비슷한 생각과 뜻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제발 뭐라도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죠.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첫 마을축제 ‘모기동 궁여지책’이 그렇게 탄생했어요.”
“서로 꿈꾸는 건 결국 마을 디자인이었다 그건가요?”
나에겐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쓸 만해서 버리기 아까운 것들, 직접 만든 음식, 그리고 정성 담아 제작한 작품들이 축제 한쪽에 장식된다. 마치 벼룩시장을 연상케 하는데?
“모기동 벼룩놀이터가 바로 우리 마을 축제죠. 그래서 축제도 현수막부터, 놀이터 진열장이 될 알록달록 박스 등 재활용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요.”
“정말 여기 부스들이 모두 버려진 종이박스들과 하루의 쓰임을 달리한 우유곽들로 만들어졌네요!”
축제는 벼룩시장 외에도 공연과 마을상영회, 그림전시회, 거리놀이터 등 볼거리로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시끌벅적한 현장,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알음알음 마을돌이’ 친구들의 통기타, 어쿠스틱 연주부터 댄스까지, 축제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연습했는지 몰라요!”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이지만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이게 우연찮게 아이디어가 나와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거 아세요?”
후미진 골목 벽과 카페 근처 공간에는 따스한 느낌이 가득 배인 벽화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축제의 풍요로움이 더한다.
“우리동네 벽화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주민들이었죠. 목2동에서는 아이들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등학생들에게 담벼락에 직접 스케치하고 채색하기 등을 가르쳤죠.”
“이게 바로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의 경계가 없어지는 ‘삶은 아트’네요!”
벽화교육은 총 4개월의 긴긴 시간을 지나 전시회까지 가졌다. 시작은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결국 웃음과 행복으로 마무리된 과정이 목2동 협동조합 외관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담벼락이 정말 화사하게 바뀌었군요. 전시회에 참석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예요.”
“그렇죠? 아이들 작품 하나하나를 보고, 정리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이 결과물들, 저도 새삼 감회가 새롭네요. 그 긴 시간은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많이 자랐고, 선생님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최근 모기동에서 자주 이야기된 동네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숙영원의 공간 개방이다. 이제 지역 청소년을 위해 수도원의 일정 공간을 내어주기로 했다고.
“어른에게 배우고 어른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곳이 아닌, 지역의 다양한 청소년과 어른들이 ‘이해와 소통’으로 자연스럽게 만나고 어울리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삶의 터가 되길 희망하고 있어요.”
“이 역시도 모기동 탄생과 겹치고 있군요!”
주민들의 네트워크는 해가 갈수록 단단해진다. 직접 해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다음 축제를 기획하는 ‘나눔식탁’이 마련된 것. 여기 또 하나 기분 좋은 비밀도 숨어 있다는데?
“내년은 더 화려하게,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마을축제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모기동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우리는 단순히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의미를 넘어 모기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면 얼마든지 참여해 마을 만들기를 함께할 수 있어요.”
골목 사이사이까지 시끌벅적한 모기동 축제 현장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놀이공간입니다. 아이들은 이제 재활용 폐품들을 모아 간판이며 부스도 척척 만어내고, 고사리 손을 거친 벽화는 하나의 예술로 거듭납니다. 주민들 모두가 참여해 일궈낸 모기동 마을축제 과정, 그리고 목2동만의 문화마을을 형성해가기 위한 소중한 시간들, 이 속에서 주민들이 말하는 ‘함께’라는 의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벽화를 보러가도 좋고 축제를 보러가도 좋고 그냥 가도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다시 태어난 마을 모기동에 오늘 한번 들러보세요!
추억 한 그릇
- 인천광역시 동구 -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냉면.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으니, 집에서나 외식을 할 때나 많이들 찾는 음식입니다. 다양한 냉면의 종류 중에서도 유독 자주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바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일 것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배가 부른 것 같습니다. 인천의 화평동에는 이 세숫대야 냉면집들이 모여 있는 원조 거리,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가 있습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미션, ‘화평동 냉면거리를 마음으로 느끼고 오라!’입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리는 것보다는 도원역 2번 출구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헌책방 골목과 중앙 시장 한복 거리, 자유 시장 순대골목을 지나쳐 걷게 되니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이 길을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나같이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들이잖아. 그렇지 않니?”
“맞아. 나는 처음에 지나 온 헌책방 골목이 참 마음에 들어.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들러 책을 한 권 사야겠어. 빳빳한 새 책도 좋지만, 손때 묻은 헌책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
아직 시장기가 덜 느껴진다면 냉면거리로 들어서기 전에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다. 옛 모습 그대로인 주택가는 추억을 되살리기에 그만이다.
“화단에 정성스레 가꾼 꽃들도, 대문가에 묶어둔 누렁이도 모두 그리운 풍경들이야. 꾸밈없는 모습들에서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냉면거리의 주변 거리로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인 것 같아. 어쩌면 냉면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냉면이 아니라 추억을 사려고 오는 것일지도 모르지.”
40여 년 전, 인천 동구의 화평동은 공장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선술집으로 가득하던 골목에 한 그릇에 300원 하는 냉면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냉면거리의 시초라는데?
“종일 노동을 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값싸고 양 많은 냉면을 즐겨 찾기 시작했고, 냉면집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고 해.”
“세숫대야 냉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냉면을 내놓았던 것일까? 지금은 그냥 세숫대야 모양의 그릇에 냉면을 주고 세숫대야 냉면이라고 하는 곳이 많잖아.”
화평동 냉면거리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그 초라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 잘 정비된 신축 건물들로 들어 찬 다른 명물 거리와는 달리, 이곳은 40여 년 전 옛 모습 그대로다.
“낡은 간판에 일층 건물들뿐이야. 자동문을 설치한 가게도 없는 것 같고 말이야.”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는 말을 믿어 볼 때가 왔지. 굳이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것 아니겠어? 물론 이런 옛 모습들을 그리워해서 화평동 냉면거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말이야.”
어느 냉면집에 들어가든 이곳을 다녀간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이 즐비하다. 연예인들이 이 정도 다녀갔으니, 일반인들은 얼마나 많이 다녀갔다는 것일까?
“벽에 걸린 사진들이 모두 아는 얼굴들이야. 정말 신기한데? 허름한 겉모습과는 달리, 가게 안은 세련미가 넘치는걸? 게다가 식당 안에도 온통 정원처럼 꾸며져 있어!”
“마치 세월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생각해 봐. 몇 년 뒤 다시 이 거리를 찾았을 때 휘황찬란한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면 섭섭할 것 같지 않니?”
일단 화평동 냉면거리의 냉면집에 들어가게 되면 맛있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메뉴는 달랑 물냉면과 비빔냉면 뿐. 부식을 파는 가게도 흔치 않다.
“대표 메뉴로만 승부하는 곳이 진짜 맛집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제대로 찾아 온 모양이야. 메뉴가 단 두 가지뿐이라니, 이런 메뉴판은 처음 보는데?”
“빨리 고르는 게 좋을 거야. 메뉴가 적을수록 고르기도 어려운 법이지. 마치 짜장면과 짬뽕, 아빠와 엄마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고르는 것처럼 어려울 걸?”
일단 주문을 마치고 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냉면이 나온다. 시큼한 김치 한 접시와 냉면 한 그릇에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 볼까?
“이게 일인분이란 말이야? 세숫대야 냉면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상상 이상인데? 정말로 할머니 댁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양은 세숫대야에 냉면이 한 가득이잖아.”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원조를 맛보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지. 김치 한 접시 외에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넉넉한 양이니, 다음 끼니를 먹지 않아도 든든하겠는데?”
냉면 골목을 한 바퀴 둘러보다 보면 사층 건물 벽면 가득 고향의 모습이 그려진 곳이 있다. 마음까지 푸근해지니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분위기가 정말 아름다운 벽화야. 푸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골목길에서 부모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좀 봐.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동화책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의 나 같아. 우리가 그리는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지 않니?”
“난 아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마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고향에 온 것 같아.”
생각만 해도 배부른 냉면,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그릇만 커다란 모습을 상상하고 계시다면 큰 오산입니다. 처음에 나온 냉면의 양으로 배가 부르지 않다면, 선뜻 사리 한 그릇을 더 내어주는 곳도 많다고 하니 양이 차지 않을 걱정은 접어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더 큰 사랑을 받는 곳이니, 이곳에 들르신다면 그리움과 배고픔을 한 번에 해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여름, 세숫대야 냉면의 본고장에서 시원한 세숫대야 냉면 한 그릇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