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부터 풍겨오는 속초의 바다냄새는 다른 곳보다 진합니다. 파도가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바닷바람은 바다에서 세월을 보낸 어부들의 진한 세월의 냄새가 더해져서겠지요. 속초의 이곳저곳 소소하고 소담하게 피어나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실향민들이 눈물 젖은 지난날을 뒤로하고 새롭게 자신들의 가을동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바이마을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아바이마을에서 들려오는 가을동화의 뒷부분을 완성해보자!’
아바이마을은 속초시 청호동의 다른 이름이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바이마을로 알려져서 일까? 청호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어쩐지 낯설다.
“기사님, 아바이마을로 가주세요.”
“오늘은 청호동 가는 사람들이 많네. 역시 청호동이 인기가 많구만. 원래 거기가 사람이 살지 않던 백사장이었는데 수복 이후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만들어 진거에요. 아바이마을 이라는 이름도 함경도 사투리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고.”
처음 이곳에 정착한 거주민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속 시원히 울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라도 살아야겠기에 그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을 것이다.
“아바이 마을이 실향민들의 거주지였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그저 드라마 촬영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70년대 이전까지 이곳 사람들은 사람 허리 높이의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보이는 토굴 같은 집을 짓고 살았어. 해일에 밀려나가지 않기 위해서였지.”
단돈 200원이면 드라마에서 준서와 은서가 가슴 아프게 스쳐지나가던 갯배를 탈 수 있다. 이곳에서 저마다 동화 한편씩 만들고 간다.
“다 도착했네. 갯배는 꼭 타보고 가.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거기서 다들 드라마 한 편씩은 찍고 가더라고. 누가 알아? 거기서 비련의 여주인공이 신데렐라가 되어서 돌아올지."
"아참, 갯배 타고선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있지 말고 쇠줄을 잡아 당겨 배도 직접 한번 끌고 가봐. 멀지 않으니까.”
시골의 한 부둣가를 연상시키는 마을의 풍경에 조금은 낯선 언어가 들린다.
가을동화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고 하니 아바이마을이야 말로 한류동네로구나.
“이야. 갯배를 타러 온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네. 확실히 한류열풍이 맞긴 맞나보다. 갯배를 직접 끌기도 하고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니 아바이마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해.”
이곳에서 아바이순대 한 접시 안 먹고 돌아가면 섭섭하다. 실향민들의 텅 빈 마음을 순대 속으로 꼭꼭 채워넣듯 통통한 순대 한 접시로 빈속과 허전한 마음을 달래본다.
“여기 오징어순대는 서비스에요 서비스. 혼자 온 것 같아 먹어보라고. 통통하니 맛있다고. 돼지 대창 속에 선지, 찹쌀, 우거지, 숙주를 넣고 버무려 속을 채워 만든 거라 아주 통통하고 맛나지. 오징어순대는 말 그대로 오징어가 대창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아바이순대, 아바이순대하던데 역시나 정말 맛있어요.”
통일 하나만을 바라보고 애절한 삶을 악착같이 버텨온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을. 이곳에 왔다면 울부짖으며 버텨온 그들의 삶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본다.
“전쟁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왜 고향땅에 돌아갈 수 없는지 왜 부모를 잃고 무너져야하는지 그들도 그들의 상황을 따져 물을 곳이 없었을 것이다."
‘내일이면 돌아가겠지. 모레면 돌아가겠지’하고 머문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상처가 아물고 나면 흉터나 남겠지만 새살이 돋는다. 흉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월에 묻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을 엿볼 차례다.
“여기 팔작 기와로 만들어진 것이 평양집. 저기 초가지붕 보이지? 저것이 황해도 집이야."
“그럼 저기 똬리집이라고 쓰여 있는 저 집은 무슨 집이에요?”
“저게 바로 개성집이야. 집집마다 구조며 생활공간들이 다 다르게 만들어져 있으니 천천히 둘러봐.”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는 법.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기 전까지 이야기의 끝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향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가을동화 그 이야기의 끝은?
“어! 기사님. 또 이렇게 뵙네요.”
“다 둘러보고 가는가? 다시 보니 반갑네. 많은 것들 담아갔으면 좋겠어. 좋은 추억으로 말이야.”
“충분히 그럴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행복한 기억으로요.”
누군가 청호동 마을에 가 본적이 있냐고 물으면 그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고 작은 갯배를 타고 들어간 마을에서 따뜻한 아바이 순대를 먹고 왔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누군가 아바이마을에 가 본적이 있냐고 물으면 슬픔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희미하게 번지는 웃음으로 퍼져 언제나 언제나 행복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실향민들의 가을동화에서 이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 속초.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오고 싶은가요?
사람들이 가을 참게에 열광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려니와 향수의 어종이기 때문일 겁니다. 늦가을 참게들은 산란을 위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유역으로 지류를 따라가면 지금도 하천 지류에 옛 선인의 방식 그대로 게살과 게막을 치고 참게 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추억의 풍광은 바로 칠갑산 맑은 물이 갈 지(之)자로 흐르는 충남 청양의 지천구곡에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미션은 바로 ‘옛 전통방식 그대로 참게 본연의 맛을 찾아라!’입니다.
칠갑산 맑은 물이 갈 지(之)자로 흐르는 충남 청양의 지천구곡은 참게의 고향으로 불렸다. 지금 이곳에 가면 청정자연 속 향수를 자극하는 옛시절이 떠오를까?
“참게는 지난 시절 가재와 더불어 개울에서 흔히 잡던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어. 지금도 금강 유역 청양에서는 전통 참게 잡이가 한창이라지?”
“맞아. 지천참게를 찾는 건 맛 이상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 또 칠갑산 청정수가 흐르는 지천은 워낙 맑아 예로부터 참게의 명산지이기도 했고.”
참게는 10월~11월이 제철이다.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금강지류 지천의 야행성 참게를 잡는 시기는 따로 있다고.
“횃불 잘 들고 따라와유. 오늘은 좀 더 상류로 올라가볼 테니께.”
“어르신. 지금 참게 잡기는 좀 이르지 않을까요?
“어떻게? 물장구를 쳐볼까? 이렇게!”
“허~ 이 사람들! 이 컴컴한 데서 그렇게 물장구를 친다고 참게가 보이기나 하겠어?!”
느긋하게 기다려 게막에 걸려드는 게를 주워 담지만 자칫 억세게 운 좋은 놈들이 게막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이때 우리 선인들은 어떤 기지가 발휘됐을까?
“밤새 게막에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참게를 열심히 주워 바구니에 담으면 내일 아침은 공짜로 줌세! … 아니, 이 친구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이 참게 다 빠져나갔네! 어이쿠~”
“아! 이거 어쩌죠?!”
“괜찮여. 빠져나가는 웬만한 참게는 싸리나무로 만든 원추형의 통발이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참게장이 귀했던 것처럼 마을마다 참게잡이 게살과 게막을 갖고 있는 것도 부의 상징이었다는데?
“참게는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명품 행세를 했고, 20년 전에도 참게 한 마리에 5000∼6000원을 호가했다고 하니, 웬만한 부잣집 아니면 참게장 맛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겠어. 안 그래?”
“그러고 보니 ‘게막 하나와 논 다섯 마지기는 안 바꾼다’는 청양 옛말도 정말 있었을 법해.”
음식 맛보기에 앞서 일단 추억의 밥그릇을 살펴야 한다. ‘전통식품은 전통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주인의 소신으로 옛날 고향집 밥상에 차려졌다. 어떤 밥상이기에?
“福자가 선명한 사기그릇에 밥과 찬이 담겨 나오는 거며, 밥도 고봉으로 담아 주시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정감 넘치는 밥그릇에 추억을 밥상에 마주한 느낌이에요.”
“그뿐일까. 무쇠솥에 갓 지은 기름진 쌀밥을 참게장이나 참게탕과 곁들여 먹어야 밥도둑이란 말도 가능하지!”
살과 장이 꽉 찬 참게를 숙성시켜 만든 참게장은 깊은 향과 맛이 일품. 윤기 흐르는 더운밥에 게장을 비벼먹으면 게 눈 감추듯 밥이 사라지고 공기 몇 그릇이 쌓인다.
“본래 참게는 겉껍질이 딱딱한데, 이 집의 참게장은 오돌오돌 씹힐 만큼 야들야들하네요?”
“그만큼 숙성이 잘돼 있으니께. 간장게장 맛은 3개월 동안 조선간장을 6~7회 반복해서 끓여 부으며 깊은 장맛을 냈고. 누룽지랑 조합도 괜찮으니까 함 잡숴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참게는 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을 이제 알겠네요!”
마른 김에 밥을 한 숟가락 얹고, 간장게장을 반 숟갈 떠 얹은 뒤 참게탕의 배추시래기를 건져 올려 먹는 조합도 꿀맛이다.
“우리 마을은 웬만한 식재료는 친환경적으로 직접 생산한 것을 쓰니깐. 참게탕에 넣는 배추시래기도 그늘에 4개월 이상을 말린 거여. 그래서 여느 무청 시래기보다는 더 깊은 맛이 있지.”
“정말,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어요!”
칠갑산 풍경에 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던 참게가 늦가을 나를 유혹한다면, 거울 같은 수면에서 청둥오리가 날아오르는 지천구곡의 절경이 자꾸만 발길을 잡아끈다면 더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습니다. 낮에는 산천을 유람한 뒤 암청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찾아드는 지천 까치내마을에서는 게막과 조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횃불을 밝힌 마을주민을 만나면 짭조름한 참게장으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번 여행은 청양군 장평면 지천구곡으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체험 붐이 일며 전국 방방곳곳에 체험마을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경기 용인에 위치한 호박등불마을. 이름만 들어도 달콤한 환상이 일렁일 것 같은 이곳에는 떡케잌과 양갱, 초콜릿, 찰경단, 단호박죽 등의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에버랜드와 민속촌도 이 마을의 근교에 위치해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호박등불마을에서 달콤한 체험을 하고 오라!’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인 은하초코기사단, 그리고 전 세계에서 유일한 등잔 박물관, 오늘의 주인공 호박등불 마을은 고작 차로 3분 거리?
“지난 번, 은하초코기사단에서 만든 초콜릿도 정말 맛있었어요. 호박등불마을도 이 근처에 있다고요? 어라? 벌써 호박등불마을이 보여요!”
“은하초코기사단과 호박등불마을은 정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지. 호박등불마을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등잔 박물관이 보이니, 체험이 끝난 뒤에는 등잔 박물관을 둘러보자.”
체험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호박등불마을에는 볼거리가 가득하기 때문! 여유 있게 도착하여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볼까?
“호박등불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박이 정말 많아요! 난생 처음 보는 모양의 호박도 있는데요? 할머니 댁에서나 볼 수 있는 원두막도 여러 채 세워져 있어요!”
“저쪽 동물농장에는 닭이랑 토끼도 있는데? 저리로 한 번 가 볼까?”
“우와, 토끼! 정말 귀여워요! 한 번만 만져보고 가면 안 돼요? 제발요!”
호박등불마을에는 연중체험 뿐만 아니라 계절별 체험 메뉴도 마련되어 있다. 봄에는 화전놀이와 된장 담그기, 딸기 따기, 여름에는 감자 캐기, 매실 따기, 바비큐 체험…
“그리고 가을에는 고추장 담그기와 청국장 만들기, 고구마 캐기와 사과 따기, 겨울에는 김치 만들기와 무 뽑기, 배추 뽑기 등의 체험이 마련되어 있지.”
“우리가 오늘 할 체험은 떡케잌 만들기와 양갱 만들기죠? 계절별 체험도 하나 신청할 걸 그랬어요. 지금은 봄이니 맛있는 딸기를 딸 수 있었을 텐데…”
떡케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케이크 부분들 만들어야 한다. 떡케잌에는 빵 대신 백설기를 쓰는 것이 일반적. 그런데 호박등불마을의 백설기는 조금 더 달다?
“어, 이상한데요? 백설기인데 가루가 왜 노란 색이예요?”
“호박등불마을에 왔으니, 쌀가루에 호박가루를 섞은 거야. 이렇게 하면 호박의 단맛이 백설기를 더 달게 해 주기도 하지. 이 가루들을 섞어 으깬 다음에 설탕을 넣어 쪄내야 하는데, 백설기가 익을 동안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있지!”
호박등불마을에서 만드는 떡케잌은 모양이 아주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는 백년초 가루?
“떡 반죽에 백년초 가루를 넣으니 붉은 색이 됐어요. 이쪽에 있는 것은 쑥 가루를 넣은 것이네요? 왜 알록달록 예쁘기는 한데,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거죠?”
“자, 잘 보렴. 이 떡 반죽을 밀대로 밀고, 돌돌 말아서 가운데를 꾹 눌러 주면…”
“어라, 이렇게 간단하게 꽃 모양이 완성되는 건가요? 저도 한 번 해 볼래요!”
장미 모양 떡 데코레이션을 한 호박등불마을의 떡케잌은 입으로 먹는 것만큼이나 눈으로 먹는 것도 즐겁다. 어디, 대화를 통해 그 모습을 상상해 볼까?
“우와, 노란 호박 들판 위에 빨간 장미꽃이 피었어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걸요? 잠깐만, 사진 한 장만 더 찍고 먹을래요.”
“하하, 주위를 보렴. 모두 너처럼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가 났구나.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이 케잌은 정말 예쁜 걸? 양갱까지 만들어 보려면 서둘러야지.”
호박등불마을에서는 직접 재배한 단호박인 ‘아지지망’을 양갱과 떡케잌 재료로 제공한다. 이 달달한 단호박은 한 시간이면 양갱으로 뚝딱 변신한다는데?
“한천가루에 찐 호박의 껍질을 벗겨 넣고 함께 끓인다고요? 정말 이게 끝인가요?”
“20분 정도 끓인 뒤에 설탕을 넣고 다시 30분 정도 졸여주면 돼. 눌어붙지 않게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저어주는 걸 잊으면 안 돼.”
“알겠어요.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생각보다 어려운데요?”
양갱이 만들어지는 동안 말린 호박씨를 예쁘게 까 두어야 한다. 양갱 위에 이 호박씨를 올리면 모양이 훨씬 예뻐진다고 하는데, 그 모양은 어떨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네요! 호박씨를 올리니 양갱 위에 꽃이 핀 것 같은데요? 양갱 모양도 꽃 모양이라 예쁜 쿠키 같아요.”
“나 원. 떡은 아까 만든 게 떡이잖니. 게다가, 이렇게 멋진 양갱을 두고 쿠키가 생각 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도 사 먹는 쿠키보다 제가 직접 만든 양갱이 훨씬 더 좋아요!”
할로윈이 있는 가을에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호박 등이 밝혀지는 곳, 호박등불마을. 한 가지 체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매 주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이곳을 찾는 분들도 많다고 하며, 260개 가족이 주말 농장을 가꾸고 있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방문객이 함께 만들어 가기에 더 아름다운 곳, 호박등불마을. 이야깃거리와 간식거리가 동시에 생겨나니 일석이조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호박등불마을에 가서 쉽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오는 것은 어떠세요?
봄이면 노란 꽃망울이 온 동네를 수놓는 산수유 꽃은 가을 문턱을 넘어서면 붉게 물든 열매가 알알이 맺힙니다. 이천 산수유마을도 붉게 물든 산수유를 보니 시인 김종길의 시 <성탄제>가 생각납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성탄제>에 등장하는 붉은 산수유 열매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이천 산수유 마을에서 산수유를 닮은 붉은 사랑을 느끼고 돌아오라’입니다.
시인 김종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도착한 이천 도립리 산수유마을. 한적하고 조용한 농가의 모습이 한 없이 정겹기만 한데.
“아침부터 시 한 장 뽑아주더니 이천은 왜? 여기는 또 어디야?”
“아까 뽑아 준 시는 읽어 봤지? 오늘은 이천 산수유마을을 둘러볼거야.”
“산수유마을? 산수유마을을 둘러보려면 봄에 왔어야지!”
“물론 봄을 알리는 산수유도 아름답지만 붉게 열매가 무르익을 때 찾는 것도 나쁘지 않아!”
마을은 온통 산수유 열매로 붉은 빛이다. 쌀쌀한 늦가을의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산수유 열매로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산수유나무가 정말 군락을 이뤘네. 이렇게 누가 심어놓은 걸까? 온 동네를 산수유나무가 빙 두르고 있는 것 같아.”
“휑하게 아무것도 맺히지 않은 나무보다는 이렇게 붉은 산수유나무가 알알이 맺혀있어 더 따뜻한 것 같지 않아?”
시의 제목이 왜 성탄제일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것은 산수유 열매의 붉은 빛 때문이 아닐까? 성탄절이 오면 온 거리가 붉은 빛으로 물드는 것처럼.
“그런데 이 시 말이야. 제목이 왜 성탄제일까? 내가 시인이라면 산수유라고 지었을 텐데.”
“시는 말이야 원래 그런 거야. 그렇게 너처럼 노골적이지가 않다고. 아마 산수유열매의 따뜻함 혹은 성탄절 전야의 분위기가 산수유열매를 닮아서가 아닐까? 매해마다 성탄절이면 거리들도 붉게 물들곤 하잖아.”
전국 최고의 산수유 군락지인 이천의 백사 산수유나무의 유래는 <육괴정>이라는 정자와도 얽혀 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까 검색해보니까 백사 산수유나무에 유래가 있다던데?”
“맞아, 조금 더 걸어가면 육괴정이라는 정자가 나오는데, 육괴정이라는 이름은 당대 선비 여섯 사람이 연못 주변에 각자 한 그루씩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해. 이때부터 심기 시작한 산수유나무가 마을을 점차 감싸고 군락을 이룬 거지.”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오신 아버지의 사랑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산수유마을을 둘러보다보니 산수유 열매의 효능 또한 궁금하다.
“그런데 보니까 산수유 열매를 먹기도 하던데. 산수유 열매의 효능은 뭐지?”
“산수유는 콜레스테롤감소와 피부미용에 좋고 특히 신장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성장기 어린이에게도 집중력을 향상시켜주고. 먹는 방법은 차로 끓여먹거나 술로 담가 먹기도 한다고 하는데?”
산수유마을에는 연인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다. 연인들을 위한 곳이라 하여 특별히 아기자기한 공간이 펼쳐진 곳은 아니지만 꽤 운치가 있고 조용하여 연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아, 여긴가 보다. 연인들을 위한 산책로!”
“연인들을 위한 산책로? 그냥 일반 시골길 같은데?”
“낭만도 없다. 물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길은 아닐 테지만 꽤 낭만적이고 운치 있다고. 산수유열매를 배경으로 하여 걷는 이들의 불타는 사랑, 어때?”
산수유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도립서당>과 <육괴정>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산수유열매에서 잠시 눈길을 돌려 이곳에 머물러 본다.
“너무 오래 걸었나? 조금 쉬고 싶은걸?”
“그럼, 조금 더 가면 나오는 육괴정에서 좀 쉬다가자.”
“어! 육괴정이라면 아까 산수유나무의 유래가 나왔던 곳 아니야?”
“맞아, 그곳에서 남아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붉은 산수유열매를 바라보니 문득 노랗게 핀 새봄이 기다려진다. 온 동네를 노랗게 물들일 봄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가을에도 이렇게 멋진데, 봄은 또 얼마나 예쁠까? 4월에 산수유 축제가 열리면 한 번 더 오자!”
“좋아, 그땐 더 다양한 체험도 즐기고 더 많은 산수유 꽃을 보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봄의 전령사로 알려진 산수유 꽃은 군락을 이루며 온 동네를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그래서 매년 4월 초순이면 산수유꽃축제가 열리는데요. 이천 백사면은 수령이 100년이 넘는 산수유가 군락지를 형성하여 많은 이들에게 새봄을 선물합니다. 경기도 이천은 백사면뿐만 아니라 경사리, 도립리 등의 기슭 농가에서도 산수유를 만날 수 있는 산수유 산지인데요.
봄이면 봄의 아름다움으로,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붉은 빛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천의 산수유마을에서 붉은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공사장(?) 같은 이곳에서 상상력의 마법이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영화들의 셋트장을 지었다 부쉈다 하는 이곳은 남양주 종합 촬영소입니다. <공동 경비 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의 쟁쟁한 영화들에 시설과 장비, 기술을 제공한 이 곳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은 물론, 영화학도를 꿈꾸는 사람과 영화를 즐기는 사람까지 다양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할 이곳에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보라!’
남양주 종합 촬영소는 약 40만 평의 부지에 다양한 시설을 갖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 제작 시설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이곳에 판문점 세트까지 있다는 게 사실이야?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 촬영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던데?”
“시나리오 한 권만 있으면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해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야. 카메라, 조명, 의상, 소품까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판문점 세트에는 판문각, 팔각정, 회담장 등이 판문점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다. 세밀한 고증작업을 거쳐 실제의 80% 규모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이병헌과 송강호가 되어보라!
“저 사람 모양 입간판, 어디서 많이 본 것인데? 아, 영화 <공동 경비 구역 JSA> 속의 바로 그 장면이잖아! 바람에 날린 관광객의 모자를 주워주고 웃는 송강호와 사진사를 제지하는 이병헌의 모습이야.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포토 존이 바로 여기라고 들었어. 우리도 어서 가 보자!”
민속마을 세트장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을 촬영한 곳으로 19세기 말의 거리가 재현되어 있다. 걷기만 하면 재미없으니, 신나게 달리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볼까?
“드라마 <추노>, <다모>, <황진이> 등을 촬영한 곳도 바로 이 민속마을 세트장이지? 초가 담장 사이로 금방이라도 추격전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가게에는 버섯이랑 오이까지 있어!”
“에헴, 양반의 돈주머니에 손을 댄 것이 바로 네놈이렷다? 게 섰거라, 이놈!”
“아이구, 나으리! 한 번만 봐 주십쇼! 집에 어린애와 노모가 있습니다요.”
운당은 한 내관이 순조로부터 목재를 하사받아 지은 건물을 이전하여 복원한 것으로, 본채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문간채, 사주문, 일각문 등 전형적 양반집의 모습이다.
“저기 붙어 있는 포스터들을 좀 봐! <왕의 남자>, <스캔들>에 <미인도>까지! 모두 알고 있는 영화들인데? 본채 앞에는 죄인을 문초하기 위한 의자와 화로까지 있어!”
“아까 하던 놀이를 계속해 볼까? 이 도둑놈, 당장 주머니를 내 놓아라!”
“하하, 영화 따라 하기에 아주 푹 빠져버렸구나?”
영상 지원관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마치 벽화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어, 저기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쪽은 뉴욕의 거리 같고, 저쪽은 동화 속 세상 같네? 음, 난 뉴요커 포즈를 한 번 취해봐야겠어. 외교관 같은 느낌이 나게 찍어 줘.”
“나도, 나도! 난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 저기,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 말이야! 각도를 잘 맞춰서 찍어야 해. 진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영상 지원관 1층에서는 시대상이 엿보이는 의상과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래된 장롱과 가로등, 책, 소파, 전화기까지 옛날 물건들이 가득한 이곳은 마치 보물창고 같다.
“우와, 어렸을 때 보았던 물건들이 가득해.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물건들도 있는 걸? 옛날 교복들을 좀 봐! 지금이랑은 많이 다른 모습인데?”
“난 저게 마음에 들어. 영화인들의 얼굴로 만든 태극기 말이야. 우리 영화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 같지 않니?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아는 배우들도 많아.”
2층에서는 영화인 명예의 전당과 법정 세트, 미니어처 체험 전시관, 영상 체험관 등이 제공된다. 그 중에서도 영상 체험관에서는 크로마키 기법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데?
“저 파란 배경, 익숙한데? 이전에 영화에 대한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아마 저 파란 부분에 영화의 배경이 합성되는 원리였는데, 진짜일까? 네가 한 번 올라가 봐.”
“어? 진짜야! 이것 좀 봐! 내가 계곡을 건너고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그대로 합성되고 있어! 내 모습이 바로 영상으로 출력되니 정말 실감나는데?”
국산 3D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의 미니어처 체험 전시관에는 비행기 격납고와 오토바이 공작소 등이 만들어져 있으니 애니메이션을 미리 보고 가는 것이 포인트.
“영화 속에 나오는 미래형 오토바이야!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인데?”
“세트장이 아니라 미래 도시를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저 멀리서 내 모습을 한 번 찍어 봐.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나올 것 같은데?”
“정말이야! 우리 오늘 대체 몇 개의 영화에 출연 해 본 거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이곳, 남양주 종합 촬영소의 모습도 정말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와 만화 속의 바로 그곳을 거닐며 사진을 찍어보고, 전설적인 영화인들의 활약상을 되짚어보고, 칸 영화제 수상작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는 과정들을 통해 영화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만큼, 영화 감상도 보다 능동적으로 심도 있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풍이 얼마나 진하게 물들면 계곡물까지 물든다 하여 ‘홍류동’ 계곡길이라 불릴까요? 해인사로 통하는 이 자연이 만든 천연 터널에서 사방을 둘러싼 숲과 계곡물 소리, 새소리를 벗 삼아 걷다 보면 심신이 편안해져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오케스트라 협연하듯 어우러지며 귀를 간지럽힙니다. 그렇게 청아한 소리들을 따라 ‘가야산 소리길’을 밟아가다 보면 어느덧 속세에 찌든 마음은 씻어지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해인사로 통하는 풍경소리를 밟아가라!’ 이것이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소리길의 들머리는 대장경축전장 주차장이나 해인사 주차장 아래에 있는 영산교로 삼는다. 대장경축전장에서 영산교로 가는 길은 어떻게 가야 수월할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이 생각보다 가파르구나. 나중에 해인사를 둘러보고 홍류동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걷기 수월하겠어.”
“잠깐! 우리가 해인사의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성보박물관을 잊고 지나칠 뻔했네. 의상의 맥을 이은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흔적을 알고 가지 않으면 안 되지!”
소리길 시작을 알리는 기둥이 보인다. 기둥을 통과하여 아치형의 영산교를 지나면 어떤 풍취가 우리를 기다릴까?
“영산교를 건너면서부터 소리길의 백미인 홍류동계곡이 모습을 드러냈어. 이 계곡은 가을단풍이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지?”
“드디어 생각났어! 계곡을 마주보고 서니 오래전에 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가던 중에 홍류동계곡의 풍광에 반해 차창에 코를 박고 바라봤던 일이 떠올랐지 뭐야!”
해인사로 가는 길을 나설 때마다 어느 길을 이용할지 행복한 고민에 잠시 빠진다. 그럴 땐 천년간 이 길을 오간 이들이 남긴 풍류의 흔적들을 잠시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이 해인사를 찾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 나! 홍류동 계곡 가운데 해인사로 통하는 가야산 소리길의 풍치가 가장 빼어난 농산정 풍광이 바로 최치원 선생이 빠져 신선이 됐다고 전해지는 곳이라지?”
이러한 소리길은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잘 닦여진 가야산 소리길을 걷기 시작했다면 가장 먼저 청아한 계곡물 소리를 따라 나서보자.
“계곡은 지척에서 걷고 있는 저 옆사람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변했다가 이내 천년 노송과 어울려 솔바람처럼 잦아들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어.”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세월 가는 소리까지 다 아우르는 소리이고, 결국 소통의 길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완성된 세계를 향해 가는 깨달음의 길 아닐까?”
소리길이 조성되기 전까지 이곳은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제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적당한 폭의 숲길이 나있어 다양한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이 긴 계곡에 목재데크로 언제 이렇게 멋지게 새 단장을 한 걸까?”
“영산교 아래로는 집채만 한 바위에서부터 조약돌까지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계곡을 감싸고 있어."
"소리를 한번 들어봐. 계곡물은 “돌돌돌” 소리를 내는 것 같지?
“바위를 타고 넘는 바람 소리는 세이~ 세이~ 하고 숨소리를 내는 것 같아.”
가야산 소리길의 또 다른 특징은 계곡에 여러 다리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총 몇 개의 다리가 놓여 있을까?
“물굽이가 장관인 곳들 위쪽에는 전망대를 설치해놓아 편하게 홍류동계곡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으니 정말 좋아.”
“어디 그뿐일까? 각기 모양이 다른 다리들이 광폭의 계곡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널을 뛰는 듯해. 가만, 우리가 여태 총 몇 개의 다리를 건너온 거지?”
수백 년 된 송림 숲이 뿜어내는 더없이 청량한 공기에 취해 이곳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풍류를 즐기던 농산정에 남긴 글귀를 찾아보자.
“단풍이 매우 붉어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일 정도로 풍광이 정말 뛰어나. 어, 여기 바위와 절벽 곳곳에 새겨진 글자들, 천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녹아 있음이 느껴지지 않니?”
“해인사 초입까지 왔다는 증거로구나. 홍류동 계곡은 최치원 선생이 노년을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 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
소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가 우거져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고, 길바닥도 순하여 숨이 차지도 않는다. 이 길 끝자락에 서서 ‘풍경소리’만으로 마음을 씻어낼 수 있을까?
“나무들이 빼곡하게 우거져 있고, 발아래는 흙길과 깨끗한 물이 흐르고,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 따뜻하게 비춰주고… 이 길을 걸어오니 이로운 것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 마음의 힐링을 얻을 수 있었어.”
“소리길은 눈에 보이는 공간이 모두 이로운 것을 깨닫는 소리야. 즉 그것은 자연이라고!”
홍류동 계곡은 천년 세월의 무게가 녹아 있는 합천 8경 중 3경인 동시에 가야산 19경 가운데 16경까지를 모두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밤에는 해인사에서 작은 음악회와 시낭송 이벤트도 펼쳐져 가을의 운치를 더합니다. 그렇게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합니다. 몸과 마음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가야산 소리길은, 수백 년 된 송림 숲에서 뿜어져나오는 신선한 공기, 산새소리와 해인사의 풍경소리로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해인사 소리길로 힐링여행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진도는 보배로운 섬입니다. 사람, 땅, 문화 모두 그렇습니다. 땅은 한 해 농사로 삼 년 먹고살 만큼 기름지며 사람은 넉넉하고 따뜻합니다. 아무리 슬프고 화나더라도 그런 것들을 곰삭여 가락으로 풀어냅니다.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진도아리랑 후렴구는 만사형통의 마술주문입니다. 이때 진도홍주를 만나면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뻥~ 뚫리듯 그 가락은 더없이 기쁨의 소리를 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 별거 있나요? 진도홍주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덩실 얼쑤절쑤 추어대며 아리랑고개를 넘어보자고요!
진도읍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동네 임회면 삼막리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그곳에 보석 같은 미술관 장전미술관이 있다. 그곳에서 과연 어떤 작품들과 만나게 될까?
“이게 다가 아니지. 율곡 이이 간찰을 비롯해 한석봉, 송시열, 김정희 등 명필 글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 어디 그뿐인가. 미술관이 너무 작아 상당수가 수장고에 묵고 있어.”
진도의 미술관은 규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작품의 질이나 다양성으로 본다면 어디 비할 바가 못 된다. 직접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데?
“소치 허련 가문과 그 화맥을 이어온 작가들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치미술관과 남도전통미술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과 소장품이 전시돼 있는 소전미술관까지…. 이야~”
“진도에선 애당초 ‘글씨, 그림, 소리’ 자랑은 하지 않는 게 예의야. 시골마을 화장실에도 번듯한 글씨나 그림이 떡하고 붙어 있으니 잘해 봐야 본전이라니까!”
해질 무렵엔 무조건 세방마을로 달려가자. 셋방 해안은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경계선에서 붉은 노을이 황홀경에 다다른다.
“바다로 지는 해야 서쪽에 바다를 두고 있는 곳이라면 대한민국 어디든 볼 수 있지만 ‘세방 낙조’는 진도 홍주처럼 붉어 장관 중의 장관이로세!”
“저 해가 구름 뒤로 숨어버려 수평선에 잠기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 해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서쪽하늘과 구름을 갖가지 색으로 물들일 테니까!”
쌀이 ‘신비의 영약’으로 불리는 한약재 지초와 만나 맛과 향, 색감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고품격 명주로 꼽히는 진도 홍주. 그 천년 전통의 맛은 과연 어떨까?
“보리가 들어가서인지 뒷맛이 구수하고 진하군 그래. 옛날에 옹기로 만든 고소리로 소주를 내렸다는데, 이 홍주의 빛깔과 특유의 향기는 지초라는 약재에서 우러나온 성분이라지.”
“아~ 마지막에 소주를 지초에 통과시켜서 선홍빛 홍주가 되면서 독한 알코올의 향을 가려주고 있어. 약초의 맛도 아주 도도하게 느껴지는데?”
붉은 햇덩이가 올망졸망 점점이 섬 사이로 미끄덩 사라지면 홍주의 맛과 향도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내 눈도, 숲도, 온통 붉은 홍주빛일까?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사는 인생.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벗님네들, 늦여름 진도 운림산방. 서로 모여 앉아 하면서 거드렁거리며 놀아 보세. 어화 어화 여루 상사뒤여, 얼루루 상사뒤여.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구나. 어화 가는 세월 어쩔거나.”
한번 입으로 부르기만 하면 모든 걱정과 시름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진도아리랑. 이는 불같은 진도홍주와 만나 배 속에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흘러갈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리리가 났네… 잠깐! 여기서 홍주 또 한잔~ 들이켜고~.”
“뭘 좀 아는구만! ‘응∼응∼응∼’은 꽃 중의 꽃이지. 턱을 주억거리며 토해 내는 ‘응∼’은 곧 ‘찬란한 슬픔’이니깐!”
“그렇지.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꽃자리’가 바로 ‘응∼’인 거지!”
노래나 춤은 말할 것도 없다. 길 가는 사람 누구라도 육자배기 한 자락씩은 구성지게 뽑아낸다. 굽이굽이 아리랑고개를 넘어들 가는데, 나도 어디 한번 넘어가볼까?
“들판에도 소리꾼이요, 고깃배에도 소리꾼, 시장바닥 주막집도 온통 소리꾼 천지로구나!”
“진도 코앞 울돌목도 쿠르르! 쿠르르! 임방울의 쑥대머리소리를 토해내보자고! 죽은 사람의 한까지도 씻김굿으로 말갛게 씻겨나간다는데~”
“자네 진도 무형문화재 ‘다시래기’를 말하는 건가?”
아쉽다. 취기가 가시면서 연못 앞 무성한 동백나무와 늙은 소나무도 초록이 지쳤다. 하지만 춤과 노래로 서로의 마음을 토닥토닥 달래고 꽁꽁 맺힌 것들을 스르르 풀어버리자.
“그제야 술이 묻는다./너는 술만큼 투명하냐/너는 술만큼 진하냐/너는 술만큼 정직하냐/이때 물음에 답하는 것은 내 얼굴빛/내 얼굴빛이 홍주빛일 때/비로소 내게 홍주 마실 자격을 준다~.”
“허허~ 이생진 ‘허여사’를 그렇게 자진모리로 악을 쓰며 뽑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대한민국 최서남단 전라남도 진도에서 알게 됩니다. 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왜 소리꾼이 창을 하고, 왜 시인이 시를 쓰는지. 그리고 왜 불같은 홍주를 마시며 진도아리랑을 읊조리는지 말입니다. 씹어도 삼켜도 불러도 내려가지 않는 지역민들의 응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들은 ‘예술’이라 부릅니다. 진도의 소리에 묻어나는 지역 특유의 전통과 삶의 애환이 빚어낸 오랜 맛과 멋이 홍주에 담겨 있기에 그 맛만 보러 가도 마냥 좋은 여행지가 바로 진도입니다. 이번 기회에 진도 한 가락 만끽하러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거문고, 향비파와 더불어 3현(絃)으로 일컬어지는 단아하고 해맑은 가야금 소리가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악성 우륵(于勒)의 넋이 가야금 열두 줄에 서려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선인들이 창조하여 가꾸어온 우리의 소리는 현(絃)마다에서 신묘한 소리로 당대 사람들을 감동시켰을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선인들의 애환을 가락에 얹은 전통적 운율 위에 또 하나의 구슬픈 소리는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명암이 교차하는 농익은 가야금 선율을 가슴으로 느껴라!
우륵이 가야금을 타서 얻은 이름 탄금대는 충주에서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에 선 우륵이 되어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느껴보자.
“무심히 흐르는 달천(達川)이 남한강과 조우(遭遇)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이곳 탄금대는 보게나. 빼어난 주변 풍광이 수려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나직하여 편안한 숲에서는 가득 생기 머금고 달려오는 계절이 신록을 준비하는 듯 햇살을 회유하고 있어요.”
숲 향기에 이끌려 오솔길을 돌아나가자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펼쳐지고 강을 조망하기 좋은 벼랑 끝 한 지점에 오랜 역사의 갈피를 접고 선 비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탄금대비로구먼. 비문에는 삶의 애환을 올올이 가락으로 승화시킨 우륵에 대한 예찬을 적었구나.”
“이밖에도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임경업 장군 등을 칭송하고 있지만, 같은 반열에서 패장 신립(申砬:1546~1592) 장군에 대한 음각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주네요.”
우리 고유의 악기 가야금은 오동나무 긴 널에다 명주실을 곱게 꼬아 열두 줄을 매고, 줄마다에는 기러기발을 세워 만든다. 그 소리를 들어보자.
“가야금은 오른손으로 줄을 퉁기면서 왼손으로는 기러기발의 바깥쪽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연주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고풍스럽고 우아하지. 우리 선인들은 가야금을 벗하여 때로는 연군지정(戀君之情)의 충의를, 때로는 임과의 애달픈 이별을 담아내기도 한단다.”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탄을 소박하고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져요.”
우륵은 원래 가야국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한 후 왕의 배려로 충주에 머물며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살았다. 이맘때 우륵이 만든 가야금의 12줄에 담긴 의미는 뭘까?
“우륵은 우리나라 12월의 율(律)을 상징하여 12줄 현악기 가야금을 만들었고, 상하 가야(伽倻) 등 12곡의 노래를 지어 ‘가얏고’라 했다지.”
“가히 탄금대는 우리 가락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진정한 풍류의 진원지라 하겠군요.”
“그래서 탄금대를 알면 우리 가락에 충분히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게야.”
이곳에 풍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벼랑 끝 바위에 내려서면 임진왜란 당시 최후의 격전 끝에 전멸한 신립 장군이 장렬하게 투신한 열두대에 닿는다. 어떤 느낌이 전해질까?
“애간장을 도려내는 선율을 환청이 들리는 듯하구나. 유장하게 흐르는 탄천의 물줄기가 산기슭을 떠받치며 굽이도는 낭떠러지에서 열두 대가 얼룩진 역사의 한 자락이 바위 끝에 매달린 듯 애처롭기까지 하구나.”
“비극적인 한을 아직까지 아우르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물색이 짙푸른 듯해요.”
열두 대 낭떠러지 아래 충주호 물길을 따라 계속 산길을 걷다 보니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신립 장군의 순절비가 앞길을 막아선다. 그의 죽음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비문에는 임진왜란 때 장군의 행적이 비교적 객관적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어. 이중 ‘중과부적(衆寡不敵)’과 ‘고군분투(孤軍奮鬪)’라는 성어가 공감이 가는구나.”
“다행히 신립 장군은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나라에서 충장공(充壯公)이라는 시호까지 내려 그의 장렬한 죽음을 애도했군요.”
물길 따라 가까이 다가온 용섬에는 한적한 오후의 평화가 드넓게 자리를 펼치고, 단청으로 채색된 탄금정(彈琴亭) 처마로 미풍이 스치며 풋풋한 풀냄새가 기분 좋다.
“탄금정에 오르니 솔가지 사이로 살며시 내비치는 물색이 솔잎과 초록색으로 한데 어우러져 싱그럽기 그지없네요.”
“달천의 도도한 물줄기가 저 아래 남한강의 또 다른 물줄기를 만나 하나가 되면서 더욱 당당해지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가야금 소리의 멋을 대변해주는 듯하구나.”
미세한 진동음의 환청이 있어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오동나무 고목의 천년 숨결을 머금은 가야금 곡조가 잔물결처럼 파랑으로 번진다. 잠시 그 소리를 따라가 보자.
“실개울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환청과 같은 진동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가야국을 그리워하는 우륵의 탄식일까요?”
“바로 계고가 엮어내는 가야금의 고뇌어린 회한이 되고, 법지가 부르는 애조 어린 그리움의 노래가 되고, 만덕이 추는 번뇌어린 소망의 춤사위가 내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겠지.”
탄금대에 가면 계절이 아무리 앞으로 내달아도 결국 춘하추동의 예정된 사계절을 되새김질하는 일에 불과하듯 역사도 같은 여정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지 바른 길목에 선 장군의 순절비는 더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한은 이쯤에서 걷어내고 청명한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춤을 추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결의 끝자락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아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풍류에 찬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