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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

    지역경상남도 하동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

    • 프롤로그
    • 1.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의 마을
    • 2.내가 만든 왕의 녹차
    • 3.우러나오는 느림의 미학
    • 4.‘행다’를 통해 배려를 배우다
    • 5.왕의 녹차! 천년의 향을 품다
    • 6.천년 고목에 숨은 비밀
    • 7.녹차의 ‘소울키친’
    • 8.차 시배지 하동, 천년을 넘다!
    • 에필로그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

    - 경상남도 하동군 -

    찻잔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차명상입니다. 5~10분이면 가능한 차명상은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더없이 좋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차를 접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휴식이 있어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를 거닐면 녹차 향이 더 은은하게 피어나는 경남 하동에서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키운 순수자연 야생차가 화개면 야산에 가득합니다. <트래블아이>오늘 미션은 바로 ‘나에게 비움을 선물하라!’입니다.

    ‘신선이 사는 항아리 속 별천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화개면은 많은 명사들의 시속에서도 애칭으로 많이 회자됐다. 가장 처음 등장하게 된 시초는 언제였을까?

    “아닌 게 아니라 ‘꽃 피는 곳’ 화개동천은 계절마다 꽃의 향연이로세. 이른 봄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녹차 꽃이 광활한 야생차밭을 수놓아 일 년 내내 꽃이 질 날이 없으니까.”

    “맞아. 하동의 화개면은 최치원 선생의 ‘화개동천(花開洞天)’에서 처음일까?” “혹시 이곳의 차와 인연이 깊은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에 대해 알고 있니?”

    본격적인 녹차시즌이 되면 화개면에서는 다도교육과 함께 지역의 오랜 전통인 ‘덖음’ 기술을 여행객들에게 전수해주고 있어 호응도가 높다. 어떤 기술일까?

    “야생 차밭에서 수확한 찻잎을 300℃ 무쇠 솥에서 직접 덖고 비벼 수제 녹차를 만드는 과정, 이렇게 전통수제다법으로 덖음차를 만들고 은은한 차향도 즐기니 정말 특별한데?”

    “정말 그래! 녹차를 직접 만들고 다례를 직접 체험하면서 왠지 몸이 정갈해지는 것 같아. 숨 막히는 도시의 일상을 떠나 녹차 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차를 따르고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 방울. 내 몸의 신호에 관심을 갖는 데 차만 한 것이 없다. 다도체험을 통해 심신을 휴식하고 느림의 미학을 느껴 보는 건 어떨까?

    “느릿느릿 우러나는 다채로운 색과 향내를 만끽하면서 하루의 쉼표를 찍는 습관의 중요성을 느끼게 돼. 내 몸의 신호에 관심을 갖는 데 차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정말 그래. 차를 따르고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 방울, 내 몸에 맞는 차 한 잔을 통해 마음은 쉬어 갈 수 있고, 몸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화개마을에 오면 ‘행다(行茶)법’을 배울 수 있다. 차 끓이는 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꼭 엽차만을 끓여 내는 것이 아닌 차를 내는 행위인데, 어떤 예절일까?

    “전통적인 방법은 다관을 비롯해서 물 식힘 사발, 개수 그릇 등은 오른쪽에, 찻잔과 잔 받침, 차통, 차숟갈 등은 왼쪽에 배열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다구를 놓는 자리는 팽주가 움직이기에 편리하고 동선이 짧으니 보기에 좋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배치하는 거로군요! 그러면 다반은 본상 왼쪽에 두나요?”

    천년이 넘게 자란 녹차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녹차를 시음해보고 싶다면 내가 만든 찻사발에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진교면 백련리 백련리도요지로 가보자.

    “도요지로 유명한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은 우수한 흙이 생산돼 가야시대 토기문화를 꽃피웠고 조선 중엽부터 남부 최대 서민 도자기 촌으로 명성을 간직하고 있지.”

    “와~ 이곳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井互茶碗)발원지로 알려진 곳이구나! 매암차박물관에서 시대별 다구와 제다법을 미리 배우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어!”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씨앗을 들여와 처음 재배를 시작한 하동에는 수령이 천년 이상 된 차나무에 하동녹차의 역사가 숨어 있다는데,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화개장터 입구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의 산야에 야생차밭이 조성돼 그 자체로 비경을 이루는구나! 가만, 이 고목이 바로 천년도 더 됐다는 차나무인가? 크기가 4m는 훨씬 넘겠어!”

    “맞아. 현재 이 차나무에서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여전히 찻잎을 수확하고 있다지?”

    찻잎을 우려 만든 각종 다식과 음식도 맛볼 수 있어 더 없이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화개면이다. 어떤 음식들이 우리의 식감을 자극할까?

    “차잎은 약간의 물을 가해 불리고, 물기를 꼭 짜서 소금과 참기름으로 삼삼하게 간해 무치는 차감자전부터 차구절판, 차인절미말이, 차버무리떡까지 난생 처음 보는 다식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니! 임금님 수라가 부럽지 않아!”

    “어디 그뿐일까! 차죽과 차두부는 정말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임금님께 진상돼 ‘왕의 녹차’ 하동녹차가 보성 설록차와 또 다른 최고의 명차로 우뚝 서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 향기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니? 야생차문화축제, 녹차연구소, 차문화센터 등 우리나라 차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다도인들은 무엇보다 하동녹차를 귀히 여기고 있어.”

    “맞아. 지리산이 품고 섬진강과 바다가 감싸 안아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고 안개가 풍부 해 녹차가 자라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지리산 자락의 신선한 햇볕과 이슬을 머금고 자란 하동의 야생찻잎은 맛과 품질 면에서 뛰어납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덖음’ 기술로 최고의 명품 차를 탄생시켜 ‘왕의 녹차’라는 별칭에 걸맞게 야생차의 진수를 맛보게 해줍니다. 차가 가지고 있는 정적인 이미지와 하동이 갖는 여유와 휴식의 이미지는 이 다도의 ‘비움’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동이 가장 빛을 발하는 봄, 녹색 차밭의 비경과 십리 벚꽃길,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함께하는 화개면에서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차와 자연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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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가지 이야기가 있는 한려해상 백리길

    여섯 가지 이야기가 있는 한려해상 백리길

    지역경상남도 통영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여섯 가지 이야기가 있는 한려해상 백리길

    • 프롤로그
    • 1.미륵도 미래사
    • 2.미륵도 달아길
    • 3.비진도 산호길
    • 4.소매물도 등대길
    • 5.연대도 지겟길
    • 6.한산도 역사길
    • 7.대매물도 해품길
    • 8.백리길 위에 꽃이 피다
    • 에필로그

    여섯 가지 이야기가 있는 한려해상 백리길

    - 경상남도 통영시 -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6개의 섬들을 잇는 호젓한 등산로가 생겨나면서 푸른 바다를 끼고 섬을 따라가는 탐방로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이 있습니다. 이제 통영의 명물로 자리한 이곳은 미륵도 달아길, 한산도 역사길, 연대모 지겟길, 그리고 매물도 해품길까지, 모두 42.1km에 달하는 산책로 길이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여기에 독특한 식생과 시원한 바가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이 기다리는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을 걸어라!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미륵산 정상으로 가는 트레킹에 앞서 미래사 주변의 편백나무 숲을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 이곳에는 사찰 외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고.

    “80년이 넘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수백 그루는 되겠어!” “안타깝게도 미래사가 들어서기 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숲이야.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빼어난 정취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

    “미래사로구나! 구상스님이 미륵산 중턱에 이런 암자를 세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미래사에서 미륵산 정상까지 거리는 약 1.2㎞. 등산로가 조성돼 있는데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지만 고지를 밟고 나면 피로도 눈녹듯 사라진다는데?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가 이토록 눈부시다니.” “전국 국립공원 100경 중 최우수 경관으로 선정됐을 정도라지. 쪽빛 물결 위에 흩뿌려진 사금파리처럼 섬들이 신록을 발하고 있어.”

    “‘향수’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이 1950년 이 경관 앞에서 탄복한 기록을 본 적 있니?”

    동그란 섬 두 개가 개미허리처럼 가는 모랫길로 연결된 경남 통영 비진도. 파란 바다로 이름난 이 섬의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가며 다 둘러보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숲길은 빽빽이 들어찬 동백나무로 한낮에도 저녁 어스름의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정말 파란 산홋빛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아.”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마침내 오른 정상, 역시 보람이 있어! 이 그림 같은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오잖아.”

    비진도에서 배를 타고 30분 만에 도착한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30분만 산을 오르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하얀 등대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망태봉 정상에 올라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이 트레킹 코스는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길이야. 발이 즐거운 산책길 정도랄까?”

    “망태봉 정상에 서니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져 정말 좋구나. 하지만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등대섬, 저 멀리 아득하고 생각보다 너무 조그맣게 보이는 걸?”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거나 밭으로 농사일을 나갈 때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다녔던 연대도 지겟길에는 또 어떤 비경이 숨어 있을까?

    “선착장에서 에코아일랜드 체험센터로 향하는 400m 구간은 풍성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어.” “정말 그렇구나. 어민들의 발자취가 생생히 느껴져.”

    “잠깐! 이 연대마을 집집마다 걸린 문패 말이야. 뭔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슨 내용일까?”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많은 한산도에는 역사길이 나있다. 망산으로 향하는 길은 곰솔 천국이다. 소나무과 상록교목으로 가지를 우산처럼 드리운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쪽을 봐봐. 한산대첩 기념비와 거북등대가 한눈에 들어오는구나!” “저 거북등대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격파한 바로 이곳 한산도해역에 건립되어 있어 더욱 의미를 더하고 있어.”

    “그런데, 저 등대가 세워진 모형거북선 용머리 말이야.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해돋이가 명품인 대매물도 해품길은 선착장을 출발해 섬을 한 바퀴 돈다. 이때 쓰시마섬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 가득 바다를 품으며 걸을 수 있어 해품길로 명명됐다는군. 바다를 벗 삼아 걷다 보면 수리바위 등 탄성을 자아내는 해안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기상이 좋으면 이 섬에서 쓰시마섬이 보인다더니 바로 저기 보이는 섬인가?” “너무 가까이 있잖아. 저건 소매물도라고. 쓰시마섬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따로 있어!”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따라 저마다 사연이 있는 6개 섬들을 모두 대면한 후, 통영이 낳은 서정시인 김춘수의 대표작 ‘꽃’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섬마다 특색과 사연을 담은 이 아기자기한 이름들은 누가 지은 걸까? 시인일까? 소설가?”

    “아니, 의외로 평범한 분이시지.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계장님이셔. 명사이든 일반인이든 누가 이름을 지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다만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이 섬들이 이제 어여쁜 꽃으로 피어났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총 100개 도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통영 앞바다 6개 섬을 잇는 바다백리길은 그야말로 한 줄에 꿰어 놓은 보석 같은 트레킹 코스입니다. 미륵도 달아길, 비진도 산호길, 연대도 지겟길, 한산도 역사길, 대매물도 해품길, 소매물도 등대길 등이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백리길 섬 하나하나를 걷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될까요? 지상 최고의 예술가는 자연이며, 세상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수려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 꽃으로 다시 태어난 이곳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나만의 섬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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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 동네의 달콤한 변신

    낡은 동네의 달콤한 변신

    지역경상남도 창원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낡은 동네의 달콤한 변신

    • 프롤로그
    • 1.골목길로 떠나는 시간여행
    • 2.나를 반기는 골목 모퉁이
    • 3.달달한 파파라치
    • 4.예술촌이 빚어내는 감성 리더십
    • 5.그때 그 시절 우리
    • 6.예술을 만드는 공간
    • 7. 예술 정신의 밥을 짓다
    • 8. 마산 르네상스
    • 에필로그

    낡은 동네의 달콤한 변신

    - 경상남도 창원시 -

    역사는 시간의 집적이고 기록의 유산입니다. 기록은 기억하는 자의 것. 기억하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도 기억도 결코 없습니다. 기억을 복원시켜 시간의 퇴적층에 쌓인 것들을 기록할 때 역사는 생명을 가진다. 통합창원시, 그중 골목과 건물마다 마산의 문화와 숨결이 새겨져 있는 마산의 창동거리는 곧 역사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그 기록에 피와 숨결을 불어넣는 자의 것임을 창동예술촌이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창동예술촌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어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골목 입구 곳곳에서 창동예술촌 문패가 방문객을 반긴다. 창동사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세월이 흘러 대부분 새롭게 단장하고 있지만 눈에 익은 건물도 많다.

    “고려당 빵집, 멀리 옛 시민극장 앞에 위치한 학문당 서점, 옛 경남은행 본점 쪽의 남성동 파출소…. 과거에 보고 자랐던 그대로의 모습들이 시간을 거슬러온 듯한 느낌을 주네요!”

    “저는 이 동네의 지나온 세월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추운 겨울 똑똑 노크를 하면 드르륵 쪽창을 열고 뜨거운 대포잔술을 주던 정종집이 새삼 그리워져요.”

    창동예술촌에는 예술인과 소통하고 추억을 곱씹어볼 수 있는 세 가지 테마 거리가 있다. 하지만 경계를 구분짓지는 않는다. 먼저 고려당 빵집 앞 골목으로 가보자.

    “저 3층 건물 벽면을 좀 보세요. 벽화로 다시 태어난 천상병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어요. 창동 골목의 한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곳이네요.

    “이곳 에꼴드 창동거리 유리아트공방, 도예공방, 서각공방, 화실, 전시실, 라이브카페, 조각실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하고 있군요.”

    에꼴드창동거리를 지나 다시 골목을 따라 쭉 올라가면 마산예술흔적 거리와 만난다. 이곳에는 과연 어떤 추억을 재연하고 있을까?

    “골목의 맨홀 뚜껑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져 있고, 간판들도 예쁘게 단장해 있네요. 이런 것들에도 이름을 붙인다면 도심밀착형예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겠죠.”

    “맞아요. 여기 이 골목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상가도 꽤 남아 있군요. 삼도집, 창동분식, 정근식당, 찻집 다전, 정겨운 이름들이 수십 년 세월에도 이 골목을 그대로 지키고 있네요!”

    마산예술흔적 거리에는 벽마다 다양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마산의 옛 모습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새로운 역사로 재탄생하고 있다.

    “액자에 걸린 시인 이선관의 ‘독수대’, 시인 천상병의 ‘귀천’ 등의 시와 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보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마산고 교사를 지낸 ‘꽃’의 시인 김춘수, 연극인이자 시인이었던 정진업, ‘게’를 즐겨 그렸던 최운 등 마산 대표 명사들의 사진도 전시돼 있군요.”

    마산의 옛 모습 사진과 함께 강남극장, 오동동 사거리, 1970년대 음악다방 등과 마주하면 마산예술흔적 거리에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골목길의 중국집에 두 아들과 살았던 ‘창동 허새비’ 이선관 시인. 어눌한 몸짓이었지만 호쾌하게 터트리던 그의 웃음소리가 문득 쟁쟁하네요.”

    “가포 풍경이며 강남극장, 그리고 옛 도시 모습이 한데 모여 우리를 데리고 추억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하죠?”

    마산예술흔적 거리를 빠져나와 옛 시민극장 옆길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문신예술 거리. 그곳에는 붉은 글씨에 ‘체험’이라 써진 노란 스티커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부림시장, 불종거리도 예술로 얽힌 다양한 추억과 역사가 가득하죠.”

    “하지만 이 거리 역시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어요. 화실과 소규모 갤러리가 여럿 있다는데, 몇몇 작업실에서는 다양한 작업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더군요.”

    불종거리를 지나쳐 조금 더 내려가면 바로 오동동 문화의 거리다. 이곳에서 바로 대중가요 ‘오동동타령’이 태어난 만큼 많은 통술집 골목을 볼 수 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겸손을 가르쳐주던 ‘황삿갓’ 황선하 시인이 새삼 그립네요. ‘초등달 연가’의 이영자 시인이 시를 썼다는 성광집으로 가볼까요?”

    “그것도 좋고. 이 오동동 문화의 거리가 마산 명물인 아구찜 거리와 연결돼 있다니 저녁메뉴를 아예 아구찜으로 정하는 건 어떨까요?”

    한때 전국 8대 도시로 손꼽혔던 시절을 지나 뼈아픈 시절도 있었던 마산. 비록 창원과 통합됐지만 창동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과거가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다.

    “경기 한파에 빈 점포가 줄을 잇는 등 마산 도심이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지금의 이 창동거리를 보세요. ‘마산 르네상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걸어두고 있잖아요.”

    “맞아요. 밤이면 이곳 창동과 오동동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렸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좀 아프지만, 문화와 예술, 사람이 가득한 창동거리로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어요.”

    옛 마산시의 구도심 핵심 상권인 부림시장과 창동상가, 오동동, 어시장 일대는 실핏줄과 같은 좁은 골목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사람 냄새와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골목길들을 통해 마산은 지금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과 기억의 뒤편으로 흩어져간 것들이 하나씩 둘씩 예술의 이름으로 재현해놓은 창동예술촌은 마산 주민들의 고단한 삶마저도 예술로 승화시켜내면서 급격하게 쇠퇴된 마신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창동거리 투어로 예술과 문화, 거기에 추까지 얹는 마산 여행, 상상만 하고 계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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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4천년 원시로의 초대

    1억4천년 원시로의 초대

    지역경상남도 창녕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1억4천년 원시로의 초대

    • 프롤로그
    • 1.저마다 개성도 제각각
    • 2.원시의 대자연이 가장 풍성해지는 시기
    • 3.아침의 우포늪이 전해주는 몽환적인 감동
    • 4.출발은 목포제방
    • 5.곳곳에 숨어든 비경
    • 6.우포늪의 색다른 명물
    • 7.자전거길은 적당한 거리만!
    • 8.별밤 아래 자연의 오케스트라
    • 에필로그

    1억4천년 원시로의 초대

    - 경상남도 창녕군 -

    경남 창녕을 가리켜 ‘생태투어의 보고’라 말할 수 있는 건 커다란 태고적 보물 우포늪이 이 지역을 짙푸르게 채색하기 때문입니다. 담수면적이 여의도(2.3㎢)에 버금가는 이 드넓은 천연 늪으로 들어서면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이 전해주는 감동에 가슴까지 먹먹해집니다. 우포늪은 위치에 따라 개성도 모습도 다르지만, 여름이 오면 가장 자기 색깔을 띠면서도 신비감을 더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초록이 가장 짙어지는 날 우포늪의 진정한 원시자연을 만나라!’

    국내 최대규모의 우포늪은 수천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천국이다. 그러면서도 이곳 4개 구역이 저마다 특성을 갖는다. 그 이름에서 각각의 특성도 유추해볼 수 있을까?

    “우포늪은 제방을 경계로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곳으로 구분해. 그 위치에 따라 개성도 모습도 다 다르다지?”

    “맞아. 우포는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예전부터 ‘소벌’로, 나무가 무성했던 목포늪은 ‘나무벌’로 불렸어. 친근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사지포의 또 다른 이름, 한번 맞혀볼래?”

    초록의 잎들이 무성하게 수면을 덮기 시작하는 6월을 지나 본격적인 여름을 맞은 우포늪은 1년 중에 가장 풍성해지는 시기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왕버들나무의 군락이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났구나.” “물풀의 왕인 가시연꽃도 큼지막한 잎을 뽐내고 있어.”

    “봐봐. 가시연 외에도 마름, 자라풀, 개구리밥 등이 녹색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늪을 뒤덮고 있는 게 이런 원시의 대자연이 또 있을까?”

    우포늪은 하루에도 시시각각 다른 풍경으로 다가선다. 늪이 전해주는 감동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는데, 어떤 이유일까?

    “늪 곳곳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수면을 가득 뒤덮고 있는 개구리밥과 물속에 뿌리를 내린 왕버들이 원시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어! ”

    “물안개를 뚫고 물닭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도 정말 장관이야. 바로 지금이야말로 이 늪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젖어있을 시간 아닐까?”

    우포늪을 탐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우포에 현명하게 다가서는 길은 목포제방, 주매제방을 넘어 목포, 우포, 사지포 일대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라고.

    “실제로 걷기 여행 열풍의 붐을 타고 이른 아침 우포늪을 걸어서 탐방하는 젊은 여행자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웬만한 걷기 여행 코스 못지않은 행복감을 바로 여기서 느끼게 될 줄이야!” “근데, 생각보다 여긴 너무 넓어.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는 시설이 이 근방에 있다지?”

    한낮에 우포늪을 탐방할 때도 인근 생태전시관만 휙 둘러보고 돌아서는 우를 범하지 말자. 실제로 우포늪은 곳곳에 숨은 비경을 담고 있으니까.

    “여기를 그냥 지나칠 뻔했구나. 이 왕버들 군락들이 우포늪의 원시적인 멋을 한껏 더해주는데 말이야.”

    “우포늪의 8경중 1경에 속하는 곳이 이 군락이라지? 이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군락이 고요함을 깊게 덧칠해줄 거야. 궁금하지 않니?”

    늪의 식생과 역사를 직접 몸으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포 북단의 소목마을도 들러봄직 하다. 이곳에는 우포늪을 사랑하고 지켜온 마을 사람들의 예스런 풍경이 있다는데?

    “저 장대거룻배가 아직도 남아 있었구나. 한가롭게 배가 오가는 정경은 왠지 서정적인 풍경을 담아내고 있어.”

    “몇 어부들에게는 고기잡이가 허용된다지? 장대거룻배야말로 자연과 사람, 원시와 문명이 하나 되는 연결고리가 아닐까?”

    소목마을부터 다시 숲길을 가다 보면 우포늪에서 가장 작은 쪽지벌이 나온다. 우포늪과 쪽지벌 사이의 탐방로, 이곳에 들어서려면 제약조건도 따른다고.

    “물이 빠질 때만 개방을 한 대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지금 출입이 가능한가 봐!” “하지만 이 자전거로는 더 나아갈 수 없겠어. 손잡이를 틀어 다시 돌아가자.”

    “아니, 저기 산악자전거 탄 사람은 거침없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왜?” “여기를 다 도는 데 그 길이가 8㎞ 정도래. 우리는 대여한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잖아.”

    한낮에 뜨거웠던 늪은 해가 지면 또 다른 별천지를 만난다. 별밤 아래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는데, 어떤 아름다운 풍경과 소리를 동시에 만나게 될까?

    “저 반짝이는 별들을 봐봐. 실제로 우포늪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풍광이 새벽과 함께 우포의 별밤이라지?”

    “온갖 수변생물이 내는 소리가 어떤 화음을 이루고 있어! 근데 저 별들이 유난히도 또렷하게 빛나는 건 왜일까? 우포늪 주변에는 다른 빛이 없기 때문일까?”

    시야를 흐릿하게 가리던 물안개가 느긋이 아침햇살에 자리를 내주면서 초록 천지의 늪이 생경한 1억4천만년 전의 원시자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멀리 어둠의 끝자락을 물리치며 올라오는 낡은 조각배 한 척이 비경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들며 늪의 아침을 깨우면 녹색의 융단은 더욱 짙푸른 색을 띱니다. 사시사철, 시시각각, 발길 닿는 곳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우포늪은 때 묻지 않은 원시자연을 온전히 내보이며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러분은 우포늪에서 어떤 원시비경을 담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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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의 심장을 더듬다

    진주의 심장을 더듬다

    지역경상남도 진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진주의 심장을 더듬다

    • 프롤로그
    • 1.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 2.성문을 지나면
    • 3.공을 새기다
    • 4.진주를 지키려
    • 5.애향심이 깃든 사당
    • 6.영남 최고의 누각
    • 7.지는 꽃을 지켜보다
    • 8.서각에서 만나는 논개
    • 에필로그

    진주의 심장을 더듬다

    - 경상남도 진주시 -

    작사가 반야월은 진주를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 내 고향”이라 노래했습니다. 이런 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단연 진주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진주 남강을 따라 낮은 성곽을 두르고 있는 진주성은 이끼 낀 성돌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입니다.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진주의 심장, 진주성을 느린 걸음으로 더듬어가다 보면 그 창대한 시간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까요? ‘진주성에서 천년의 세월을 바라보라!’, 오늘 <트래블아이>가 던지는 미션입니다.

    백제 때 토성으로 시작해 고려 말에 석성으로 축조했다는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홍산성, 고려시대에는 촉석성으로 불린 만큼 유서가 매우 깊다.

    “숭례문이나 수원의 팔달문이나 모두가 성루만 남아 있어 날개 잃은 학처럼 외로워 보이지만, 이 공북문은 긴 성벽이 둘러처져 안온해 보여.”

    “정말 진주성 성벽과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은 안정적이고 대담하지? 이 성벽 따라 나 있는 1.2km 둘레길에는 연인, 사색 등의 테마별 산책로가 진주성 여행의 묘미를 배가시킬 거야.”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다양한 문을 지난다. 성의 정문격인 공북문을 비롯해 촉석문 등 북쪽으로 난 여러 문을 지나면 보물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바로 영남포정사야. 1925년까지는 경남도청이 진주성 안에 있었으며 성내의 영남포정사는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문이다.

    “성 안팎은 물론 성 바깥에 진을 친 병사들까지 지휘했던 문, 그래서 많은 성의 축성 모델이 되었다는 북장대도 내성 북쪽 끝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니 좀 더 가보자.”

    1592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공을 새긴 김시민 장군 전공비도 이곳에 있다.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성민이 힘을 모아 왜군을 물리친 그의 공을 기리고 있어.”

    “이 비문에는 1천명이 되지 않는 병력으로 10만명의 대군을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왜군 2만을 3천800명 병사로 물리쳤다는 기록도 있지. 뭐, 사실이야 어찌됐든 그의 공은 인정받아 마땅해”

    남강의 서쪽 절벽 위에 장엄하게 서있는 서장대는 김시민 장군이 서쪽 병사들을 호령하며 지휘하던 곳이다.

    “진양호 쪽에서 성 쪽으로 들어오다가 이 장대를 바라보면 마치 당시 진주를 엄호하던 한 장수의 눈빛이 살아 전해지는 듯해.”

    “특히 가을이면 절벽 위 장대 지붕의 목조 기와가 단풍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지?”

    창렬사는 서기 1607년 경상도 순찰사 정사호가 창건한 사액사당으로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임진년과 계사년에 순국한 39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사당은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데, 그 시작이 선조 때였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아무도 돌보는 이들이 없어 퇴락했다지?” “맞아. 일제 당시 그것을 애석하게 여긴 진주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을 중건해냈어.”

    진주 8경 중 제1경을 자랑하는 촉석루는 벼랑 위에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듯이 남강과 진주성, 의암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천하의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우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지?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저 촉석루는 미국 CNN이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으로 꼽기도 했어.”

    “그래? 하긴, 이 누각은 전란 시에는 지휘본부로 사용됐지만,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활용됐어. 이곳에서 얼마나 멋진 시조가 탄생했을지 감히 상상이 안 가.”

    진주성 일대는 의기 논개가 분연히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그 한을 되갚은 충정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러한 논개의 낙화는 촉석루에서 가장 잘 관찰된다.

    “아깝게 쓰러져간 목숨들을 슬퍼하며 분루를 삼킨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이곳 의암에서 홀연히 몸을 던져 충정을 다했지. 이를 지켜본 촉석루는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크게 애통해했을 거야.”

    “그래서 논개는 진주의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걸 거야.”

    촉석루 뒤편으로 가면 진주를 지킨 인물들을 기리는 의기사가 있다. 의기사는 촉석루, 의암과 함께 논개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지?”

    “맞아. 비단 바탕에 천연채색으로 된 정면 전신입상의 저 논개 영정이 사실 표준 영정으로 봉안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야. 논개 영정은 과거 한 시민단체가 친일파가 그린 것이라며 뜯겨져 나갔던 거야.”

    10만 왜군과의 전투에서 무수히 많은 민관군이 목숨을 잃은 호국성지 진주성. 과거 왜군과의 치열했던 격전과 아픔을 뒤로 한 채 지금의 진주성은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단풍이 지고 눈이 쌓이는 그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진주성은 이제 찾는 이들에게 지친 마음을 풀어놓은 듯 역사와 문화적 향취를 즐기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3대 승첩지인 이곳을 느린 걸음으로 돌아보는 건 여전히 진주의 심장을 더듬는 것과도 같음을 느낍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진주의 맥박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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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병의 길을 걷다

    의병의 길을 걷다

    지역경상남도 의령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의병의 길을 걷다

    • 프롤로그
    • 1.의병탑을 마주하면
    • 2.호국의 영웅들이 나다
    • 3.의병의 길
    • 4.붉은 도포의 홍의장군
    • 5.마땅히 편안한 그곳
    • 6.곧은 성정을 닮은 듯
    • 7.500살 된 수호신
    • 8.의병의 본고장
    • 에필로그

    의병의 길을 걷다

    - 경상남도 의령군 -

    여느 지역이었다면 그저 옛 성곽을 닮았을 뿐인 관문이지만, 경남 의령군 입구는 조금 더 남다릅니다. 이 관문에서부터 임진왜란 때 이 땅을 짓밟던 왜군을 당당하게 몰아낸 고장으로서의 자부심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곳 백마에 올라탄 홍의장군 망우당 장군 동상만 보더라도 의령은 그가 나고 자란 곳, 나아가 여기가 진짜배기 의병의 고장이란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의령은 홍의장군, 독립운동가 안희제 등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만큼 둘러볼 곳도 정말 많지만 망우당의 흔적을 쫓는 여정이 바로 오늘 <트래블아이> 미션입니다.

    자굴산, 한우산, 미타산, 벽화산 등에 둘러싸여 잘 드러나지 않는 의령이지만, 이 지역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의병탑을 본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남산을 휘감아 흐르는 중동리 의령천 강변에 이렇게 의병탑이 있군요. 임진왜란 때 의령에서 의병이 전국 최초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죠.”

    “처음에는 자기 집 일꾼이나 동네사람들만 모였다가 점차 의령의 선비들까지 동원돼 상당한 규모로 몸집을 부풀린 이 의병들이 한 달 뒤 2,000여 왜적을 섬멸했다니, 정말 대단하죠.”

    경상남도 의령은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가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의 본고장’이다. 이 때문에 6월1일 ‘의병의날’은 의령 사람들에게 현충일이나 다름없다.

    “6개의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마을에서 호국 영웅들이 연이어 탄생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안고 살았겠어요?”

    “사실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너무도 익숙해서 그런지 역사문화유산이 이렇게 산재해 있다는 생각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씩 고향 내려와도 굳이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죠.”

    민족독립운동가의 60%가 모두 곽재우 장군 손에서 나왔다고 하는 의령. 17장수의 위패를 모셔놓은 충익사는 그 외관에서 제법 익숙함이 묻어나온다.

    “충익사기념관에서 마주하는 백마는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말머리가 움직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키네요. 가만, 충익사는 한눈에 봐도 서울 동작동에 있는 현충원을 꼭 빼닮았네요.”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해요. 하지만 이곳은 임금님 상여와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죠.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장인의 섬세함과 치밀함도 엿볼 수가 있어요.”

    충익사 바로 옆에는 의병박물관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붉은 도포를 입고 말을 탄 홍의장군 동상이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위엄을 뽐내고 있다.

    “보물 671호인 곽재우 장군의 장검, 말갖춤(마구) 및 평소 사용했던 포도연, 사자철인, 화초문백자팔각대접 등 곽재우 유물 일괄(郭再祐 遺物 一括)은 모두 진품이랍니다.”

    “흑요암으로 만들어진 이 벼루와 연적은 망우당이 아버지와 중국 명나라에 갔을 때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라는데, 이 역시 진품일까요?”

    ‘마땅히 편안한 곳’이라는 지명 뜻처럼 의령(宜寧)은 땅 자체부터 편안하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명당이라는 것이다.

    “귀한 들판 대부분이 남쪽으로 물을 두고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있군요. 그러니 땅 생김새 자랑은 자연스럽게 땅에 서린 기운과 의령이 낳은 명사들로 이어지지 않겠어요?”

    “이 땅을 짓밟던 왜군을 당당하게 몰아낸 고장으로서 자부심이 서려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봉우리 하나, 물줄기 하나를 꼬집어 자랑하지는 않는 편이더군요.”

    의령군은 공교롭게 의령읍~부림면을 잇는 국도 20호선을 따라 의령을 대표하는 인물이 많이 탄생했고 생가도 잘 보존돼 있다. 망우당 생가 역시 그러하다.

    “이곳에 들어서니 왠지 그의 순수한 의병정신이 온몸을 에워싸는 듯해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잘 정비된 마당, 반질반질한 대청마루가 의병장의 곧은 성정을 닮은 것 같아요.”

    “조선 초기 건축양식의 안채 등 건물 곳곳에 곽재우 장군과 관련한 역사체험 공간도 마련해두고 있다죠? 나중에 아이들과 다시 찾아야겠어요.”

    마을 입구에는 수령 52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현고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고목 역시 망우당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데?

    “가지가 동서남북으로 시원스레 뻗어 있는 이 느티나무가 바로 ‘북을 매는 나무’라는 뜻을 가진 현고수(懸敲樹)예요.”

    “저도 그 이야기는 알고 있어요.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유생이던 곽재우가 이 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의병을 모아냈다죠?”

    최대의 국난기, 조정 역시 민심을 잃어가던 시기 명망 사족들과 함께 의병들을 조직하여 저항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곽 장군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도 일컫는다.

    “망우당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의병 1000여 명을 모집했죠.” “적지 않은 나이에 전 재산을 털어 항전에 나섰다니, 위기의 시기에 사회 지도층이 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몸소 보여준 거로군요.”

    “하지만 그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거나 도적 노릇을 한다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동서남북으로 경남도의 중심지가 되는 고을 의령은 크지 않은 고장이지만 곽재우 장군은 늘 본인이 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했을 겁니다. 의령·창녕·진주 일대에서 왜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는 ‘애국심’이 있었을 것이고, 전쟁이 끝나고 선조가 수차례 벼슬을 내리나 그는 대부분 사양하거나 짧은 기간만 관직을 맡은 뒤 귀향한 것을 보면 ‘애향심’도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의 흔적을 쫓는 여정에서 망우당의 이러한 두 가지 의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면 미션 성공입니다. 어떠세요? 의령에서의 이번 미션, 당신은 성공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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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지역경상남도 양산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 프롤로그
    • 1.용을 타고 극락세계로
    • 2.‘9’를 찾아라!
    • 3.아홉 마리의 용
    • 4.금강계단의 진실
    • 5.단순한 연인설화를 넘어
    • 6.겨울에도 떠나지 않는 금개구리
    • 7.문수보살이 호랑이와 만난 불이문
    • 8.무풍한송
    • 에필로그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 경상남도 양산시 -

    똑같은 이야기라도 햇빛에 말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말리면 전설이 된다고 했습니다. 삼국사기가 전자에 가깝다면 삼국유사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우리나라 유명 사찰의 창건 설화가 가득합니다. 그런 삼국유사의 전통을 계승한 경남 양산 하북면의 통도사는 딱 부러진 설명은 없지만 금강계단이 있던 연못터에 얽힌 설화붙터 명부전의 토끼 설화 벽화까지, 불교신앙과 민속신앙, 풍수사상이 두루 펼쳐진 궁극에는 하늘, 자연, 인간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하야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를 찾아라!

    통도사는 오리, 닭, 봉황, 독수리 용, 개구리 등 동물에 얽힌 전설이 많다. 대웅전 앞의 용꼬리 조각물의 비밀을 파헤쳐라.

    “이 조각물은 통도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장식물이로구나. 사찰 곳곳에 걸려있는 용모양 장식을 보더라도 알 수 있겠어.”

    “사찰의 법당이 하나의 반야용선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반야용선은 해탈을 통해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타고 가는 용모양의 배를 의미한다지? 어떤 모양이기에 그럴까?”

    통도사는 아홉이란 숫자와의 인연도 깊다. 이중 일제강점기 통도사 부흥을 일으킨 스님이 아홉 개의 강을 건너왔다는 뜻을 지닌 구하(九河) 스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구하 스님의 제자인 경봉 선사가 가왕 조용필을 만나 “가수면 꾀꼬리로구나? 꾀꼬리를 잡아와라”라는 선문답을 남겼대.“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이 화두가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를 낳게 했다지?” “통도사의 아홉이란 숫자와의 인연을 더 찾을 수 있을까?”

    국내 주요 사찰은 연못이나 늪지대에 지어져 물을 다스리는 용과 밀접하게 연결되듯 이곳 금강계단 자리도 바로 그러하다. 이 연못터에는 어떤 설화가 있을까?

    “이곳에 원래 아홉 마리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는데 자장율사가 이를 쫓아내고 한 마리만 남겨 뒀다는 설화, 들어본 적 있니?”

    “그럼, 승려들이 이 금강계단 아래를 통해야 득도할 수 있다다는 뜻을 되새기게 하기 위해서 이 사찰을 통도사라 한 걸까?”

    금강계단의 ‘계단’은 사람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닌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을 행하는 단을, ‘금강’은 일체의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을 말한다. 어떤 깨달음일까?

    “불교에서는 금강과 같은 반야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물리칠 것을 강조하지. 통도사의 핵심인 금강계단 내 불사리탑도 그러한 자장율사의 뜻과 깊은 관령이 있어.”

    “통도사가 불보사찰이라는 칭호를 얻은 이유도 이 불사리탑이 생겨난 과정을 듣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데, 혹시 알고 있니?”

    ‘용화전’ 벽화 7점은 막연히 불교 인연설화 정도로 해석됐으나 최근 그 의미를 두고 새로이 해석되면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음… 이 벽화들을 봐 조선시대 사찰 벽화에는 고사 인물이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류에 등장하는 소재처럼 연인들을 다루고 있는 듯해. 일단 가장 흔하니까.”

    “처음에는 그랬지. 글씨가 희미해 과거에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밀조사를 통해 보니 이는 정말 센세이션이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가 발견됐거든!”

    통도사는 거찰답게 산중에 19개의 암자를 품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암자인 자장암에는 ‘금와보살’ 설화가 전해진다. 아직도 암자 구멍 안에는 금개구리가 살고 있을까?

    “자장암은 차분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구나.” “‘금와보살’ 설화를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는 이도 있지 않을까?”

    “암자 주위를 떠나지 않는 금개구리 이야기 말이지?” “자장율사가 암벽에 뚫어놓은 구멍 안을 보면 아직도 금개구리가 있을까?”

    코끼리와 호랑이 조각상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불이문’을 찾아보자. 이 동물들에서 현실과 이상, 선과 악, 진리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중로전,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의 세 전각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렬로 배치돼 있구나. 보봐! 저게 바로 불이문이야!”

    “그런데 좀 이상하지? 코끼리는 보현보살을, 호랑이는 문수보살을 상징한다고 했어. 원래 문수보살은 사자와 짝인데, 호랑이로 조각이 된 이유는 뭘까?”

    통도사 입구에서 1km에 이르는 소나무숲 또한 이 절의 자랑거리. 둘레가 한 아름 되는 수백 년 된 적송이 그늘 터널을 이루고 있다. 천천히 명상하면서 걸어보는 건 어떨까?

    “울창한 소나무 숲을 보면 불교의 총림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 스님들이 수풀처럼 얽혀 정진하는 도량처럼 기개 넘치지만 단아하잖아!”

    “이 소나무들, 임진왜란 때 왜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숲 가운데 하나라지?”

    어떤 이들은 양산이 영축산 통도사 빼면 볼 것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통도사는 참으로 좋은 사찰이고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양산에서 통도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라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이야깁니다. 그럼에도 통도사에 들르면 얼마나 많은 볼거리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로 가득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한밤중 휘영청 빛나는 달을 바라보거나 새벽안개 속을 헤매면 어디에선가 문득 문수보살을 친견할 것만 같습니다. 이번 주말 천년설화가 가득한 통도사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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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지역경상남도 산청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 프롤로그
    • 1.두류산양단수(頭流山兩端水)
    • 2.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
    • 3.덕산복거(德山卜居)
    • 4.종죽산해정(種竹山海亭)
    • 5.원천부(原泉賦)
    • 6.산중즉사(山中卽事)
    • 7.청학동(靑鶴洞)
    • 8.민암부(民巖賦)
    • 에필로그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 경상남도 산청군 -

    지조를 지키고 일관된 삶을 지향하는 선비는 그릇됨과 교만함을 경계하고 늘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남 산청군 덕산기슭 산천재는 남명 조식선생의 기품과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수한 솟을대문과 현판에서도 찾을 수 있고, 낡은 서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록빛 자태를 뽐내고 남명매가 청량한 향기를 뿜어낼 때 그 고결한 품성은 고스란히 와 닿습니다. 이곳에서 선생의 시를 읊조리며 걷다 보면 ‘학자의 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산천재에서 남명의 시를 노래하라!’

    수십 차례를 오르내릴 정도로 지리산을 좋아했던 남명 선생은 천왕봉이 보이는 덕천강 옆에 산천재를 지었다. 담을 따라 흐르는 강가에서 ‘두류산양단수’를 읊어보자.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어느새 강과 산 사이에 고즈넉한 담벼락을 두르고 있는 작다란 산천재가 보인다. 이곳에서 선비로서 올곧은 길을 가고자 다짐을 ‘제덕산계정주’를 읊어보자.

    “천석의 무게를 가진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대문 위에 수수하게 펴 있는 배롱나무 아래를 지나 선생이 기거하던 산천재의 솟을대문과 현판이 소박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덕산복거’를 노래해보자.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산천재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남명매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그가 이 매화나무에 담아낸 심경, ‘종죽산해정’을 읊다 보면 알게 될까?

    “대나무가 외로운가 외롭지 않은가? 소나무와 이웃이 되었네

    풍상 치는 때 보려고 하지 말게나 살랑거리는 모습 속에 참된 뜻 보겠네“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이곳 산천재에서 한 평생 마음을 정진하고 후학양성에 몰두했던 선생. 학문의 맥과 깊이를 ‘원천부’ 구절에서 느낄 수 있을까?

    “진실로 신령한 뿌리가 마르지 않으면 천하를 적시고도 마르기 어려우리

    덮어 놓지 않은 샘의 차가운 물을 보라 아무리 퍼내어도 여전하지 않은가!“

    툇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세상을 관조하는 듯 소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의 벽화를 볼 수 있다. 허나 선생의 시에서 분명 선비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해지는데 산골의 아이 호미를 메고 서서 김맬 때도 묻지 않고 심은 때도 잊어버렸네

    오경의 학 울음소리에 새벽 꿈을 깨자 비로소 몸이 개미나라 왕을 겸했다는 걸 알았다“

    산천재 오른편의 작은 문집 책판서고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빛이 바랬다. 이 낡은 서가건물에서 단단한 남명선생의 정신이 이 명시를 통해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한 마리 학은 구름을 뚫고 하늘 나라로 올라갔고, 구슬이 흐르는 한 가닥 시내는 인간 세상으로 흐르네.

    누(累)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산하를 마음으로 느끼고서 보지 않았다고 말하네.“

    바른말하는 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는 난세의 병폐를 지적하는 그의 대쪽 같은 기품도 지리산 기상과 닮아 있다. ‘민암부’를 노래하다 보면 남명학의 기풍을 느낄 수 있을까?

    “볼 수 없는 건 마음인데 위험이 안에 있어 소홀히 대한다네

    걸어다니기에 평지보다 더 평탄한 곳이 없지만 맨발로 살피지 않고 다니다간 발을 상하지“

    덕천강이 보이는 평지에 자리한 산천재 툇마루에 앉아 강줄기를 보며 가벼운 졸음 오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다가도 이따금씩 고개 돌려 천왕봉 머리를 보고는 흐뭇해했을 조식 선생. 산천재 기둥의 주련에 쓰인 글귀는 분명 ‘봄’입니다. 그냥 봄이 아니라 안분지족(安分知足) 하는 선비의 봄입니다.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는 고결한 품성을 느낄 수 있는 ‘학자의 봄’이 그의 시를 통해 고스란히 와닿았나요? 남명 조식 선생이 가장 사랑했던 이곳 지리산자락 산천재와 덕천강에서 여러분은 선생의 진짜 ‘봄’을 발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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