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유치원에서 신선이라는 단어를 듣고 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선이 뭐냐고 묻는다. 분명 유치원선생님에게도 똑 같이 신선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테고 선생님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을 텐데 이 녀석은 내게 꼭 되묻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는 마치 처음 듣는 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에 최대한 친절히 대답해주려고 한다.
“신선은 말이야. 산신령알지? 그런 것처럼 상상 속 인물이야. 도를 닦으면서 인간 세계에서 유유자적하며….”
아이에게 말을 해주면서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유유자적이 뭐야? 도를 닦는 게 뭐야? 하며 이맘때 쯤 아이들이 그렇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퍼부어 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어쩐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빈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음, 신선은 왠지 좋은 것 같아서.”
역시 어린아이라도 감은 있는 듯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하는 삶만큼 매력적인 삶이 없다는 것을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캐치해 낸 듯했다.
“응, 빈이 말이 맞아. 신선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그래서 아주 경치가 멋진 곳에는 신선이 노닐다 간 곳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아이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신선이니 유유자적 하는 삶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니 퇴근 후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앉아있는 신세가 어쩐지 처량해졌다.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크게 동경하며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쉬는 것을 마다할 사람 없고 노는 것을 싫어할 사람도 없었다. 때마침 아내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아이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에게도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나와 똑같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라며 넥타이를 푸는데 아내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빈이 저번에 아빠 엄마랑 무진정 갔다 온 거 기억나? 거기가 신선이 놀던 곳처럼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아! 맞아. 엄마랑 아빠랑 거기에서 사진 많이 찍었지!”
역시 엄마는 위대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는 고려하지 않은 백과사전같은 말만 늘어놓았는데 아내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이해를 도왔다.
“응, 그러고 보니 지금쯤 무진정에 꽃도 피고 녹음이 푸르러 더없이 예쁘겠다. 봄은 이래서 좋아.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예쁘고 멋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여보, 이번주 주말에 무진정 다녀올까? 저번에 갔을 때는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것 같아.”
이번주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단에서 중요한 야구시합이 있는 날인데 차마 아내와 아이의 눈빛을 똑바로 보고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내 대답도 마저 듣지 않은 채 벌써 룰루랄라였다.
어쩔 수 없이 야구단의 중요 경기에 참석 할 수 없다는 비보를 알린 채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무진정으로 달렸다.
와아. 아내와 아이의 입에서는 동시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연못에 소박하게 자리한 정자가 기품 있게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야.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네.”
아내는 어쩐지 썰렁한 농담까지 곁들였다. 사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 야구 시합을 제쳐두고 온 것이라 입이 삐죽 나와 있던 차인데 무진정의 멋들어진 경치와 아내와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정말로 신선이 풍류를 즐기다 간 것처럼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무진정 앞에 서니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 문신 정도는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아빠가 신선 같아.”
빈이는 저 멀리서 달려오며 나보고 신선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그렇게 늙어보이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이의 함박웃음에 나도 따라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다 정말.”
아내와 나는 오랜 시간동안 한 곳을 바라보았다.
때는 백제시대. 어둠이 얕게 깔리고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커지던 그 순간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드리운다. 휘리릭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여인이 서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왕실의 사람은 아닌듯하다.
드넓게 펼쳐진 연꽃 사이에 청초하게 서있는 여인은 왕실의 여인이 아닌가. 고운 비단 옷에 단정하게 빗어 내린 검은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더욱 고운 얼굴빛은 희고 여리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가운데 놓인 정자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빛을 받아 아름답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잎은 맑은 이슬을 머금고 있다. 그 가운데에 왕실의 여인이 서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 때 검은 그림자가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여인이 기다리던 사람인 듯했다.
궁남지는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고향을 그리워하여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만든 인공정원으로 천한 신분의 사람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항상 어둠이 짙게 깔리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온 것이다. 사실 이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이 궁남지이다. 그래서 무왕과 선화공주만큼이나 이 둘에게도 이곳 궁남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선화공주는 왕가의 무왕과 함께 이곳에서 달을 보는 것을 즐겨하였으나 왕실의 여인들과 산책하는 것도 즐겼다. 그래서 이 여인도 궁남지를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그러다 선화공주는 궁남지 연못 한가운데에 핀 연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연못 한가운데에 핀 꽃을 꺾으려면 연못으로 들어가야 했고 신하들도 무르고 나온 터라 꺾어다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마마, 이 연못 근처 마를 팔던 남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꽃을 꺾어달라는 청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자 왕실의 다른 여인이 반기를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저렇게 마를 파는 신분의 천한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그냥 돌아가는 것이 맞는 듯 하옵니다.”
그러자 선화공주가 단호하게 말했지요.
“그런 말 마십시오. 마를 파는 사람이라고 어찌 다 천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지 궁금하니 이곳에 올 수 있으면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를 팔던 남자는 궁남지에 들어와 선화공주에게 꽃을 꺾어다 주고 왕실의 여인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이 여인과 남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만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이루어지기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이곳에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진흙과 닮은 남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닮은 여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과 닮은 이 둘의 사랑도 둘처럼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커플들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멋있고 더 로맨틱한 장소를 찾곤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가을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쾌청했으나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가을여행지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가을하면 낭만, 낭만하면 갈대 아니야? 갈대를 보러가자.”
낭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는 이번에도 또 낭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또 낭만이냐고 했겠지만 이번에 제안한 가을갈대를 보러 가는 것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이 순천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노을이 짙게 내릴 때면 더 죽여줄 텐데. 안 그래?”“그럼 멋있긴 하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곧 5시 반이야.”
가을이라곤 했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일까 둘은 약간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 낭만을 떠올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자는 순천만 갈대밭의 이곳저곳을 담기에 바빴다. 바람에 스러지는 갈대의 모습이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까지. 남자친구는 주로 풍경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여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여자도 남자의 취미를 존중하고자 남자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찰칵’
“어!”
남자의 외마디 감탄에 여자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굉장히 잘 나온 사진을 건진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발의 두 노인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신경을 할머니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져 손에 힘줄이 솟아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 손을 놓칠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셨다. 할머니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는데 표정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볼에 분칠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발그레 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먼 거리에 계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가 저무는 노을빛을 받은 갈대밭 사이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으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어떤 말씀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응. 그렇다. 아마 두 분의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왜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고 계실 테니까.”
어쩐지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너의 늙음이 나의 늙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찾아 손을 뻗었다. 맞잡은 두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다. 나는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젊은 이 삼십대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로맨틱하다.”
바람이 살짝 귓가를 스치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감성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로맨틱하게. 그럼 지금 이 노부부 사진에 제목을 한번 지어볼까?”
“음. 생각났어. 더 로맨틱!”
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초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옆 동네에서 건너 온 소식으로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어린이대공원 안의 동물원에 있던 어린 여우 두 마리를 소백산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옆 동네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허이구, 그게 삼십 년 전인가에 멸종했다던 그 여우 아니여?”
“맞아요, 맞아.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던데 정말 아깝게 됐어요.”
“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여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가. 구미호가 와서 죽었단다.”
그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불여우나 불여시로 불려왔으며, 구미호 전설의 주인이기도 한 토종 붉은여우였다. 온몸이 황적색의 털로 덮여 있는 이 붉은여우는 원래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뒷산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호랑이만큼이나 여우가 많았던지 여우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 얘기였다.
이렇게 많았던 붉은여우는 안타깝게도 밀렵되거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 야생에서는 멸종되었었다. 옆 동네 아궁이에서 그 새끼 여우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번식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야생에 여우 한 쌍을 방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아궁이에서 죽었고, 수컷은 이로부터 며칠 뒤에 덫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붉은여우는 백 년, 혹은 천 년을 살기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을 유혹해 생간을 빼 먹기도 하는 요물이었다. 여우가 와서 죽은 뒤로,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렸던 내게 불여우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여우는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나그네를 유혹했다가, 나그네가 잠들면 쇠고랑 같은 손톱으로 생간을 빼 내 먹는다고 했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사람의 간이 백 개나 필요해서, 나그네만 보면 해치려 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지친 할머니가 먼저 잠이 드셔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럼 서울동물원에서는 구미호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여우를 상상했다. 여우는 아마 몸집은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색 털로 뒤덮여 있으며, 날카롭고 긴 발톱을 가졌을 것이다. 입가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고, 어쩌면 그 입에 갓 빼낸 싱싱한 생간이 물려 있을지도 몰랐다. 밤이면 늑대처럼 주둥이를 길게 빼며 울거나 처녀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해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을 것이었다. 밤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하고, 문을 꼭꼭 잠근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 여우가 나왔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붉은여우가 소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너머에 붉은여우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붉은여우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화면 속 여우의 모습이었다. 붉은여우는 작은 몸집에 날씬한 다리,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도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있는 붉은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대공원에서 아기 붉은여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마 산 속에서는 붉은여우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어색한 사이를 메우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었을까?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확인하고 취향이 우회적인지 노골적인지를 확인한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문화를 나누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티켓 단 두장만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공간이다.
“효진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 저녁이요? 야근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다른 건 아니고, 저한테 뮤지컬표 두 장이 생겼거든요. 혹시 안보셨으면 같이 보실래요?”
“우와, 그거 엄청 빨리 매진 된 거라 구하기 힘든 건데. 갈래요!”
민수는 효진이 일하는 곳 상사이다. 효진이 이곳에 입사한 후로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민수의 컴퓨터 모니터로 효진이 보낸 매신저가 날아왔다.
‘대리님! 이따 퇴근하고 정문 앞에서 봬요. 저녁은 제가 쏠게요^^’
민수는 그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했다. 어렵사리 친구놈에게 구걸하다시피 표를 산 것이, 거의 표 두 배 가격을 주고 산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모처럼 칼퇴를 하고 나서니 멀리서 효진이 보였다. 하늘높이 손을 들어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효진은 정말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다며 재차 기쁨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근처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화려했고 잠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공연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했고 그중에 효진과 민수도 속해있었다.
효진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더니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말했다.
“가만 보면 서울은 참 희한한 동네인 것 같아요. 동네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
“음,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잖아요. 이렇게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는것도 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일 테고. 그런데 그 속에서 이렇게 숨 좀 돌려보겠다고 공연도 보고 미술도 관람하고 하는 걸 보면 참 딱해요. 서울사람들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네. 서울이라는 동네가.”
“그렇죠? 서울에 야경이 멋있다는데 보면 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효진은 자기감정에 취해있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효진과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음으로 효진의 생각과 가치관을 들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냥 어린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속으로 살짝 당황스러웠다.
효진은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감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효진의 두 볼이 약간 발그레 했다.
“전 예술의 전당이 참 좋아요. 여기에선 숨통이 좀 트인 달까? 친구와도 좋고 연인도 좋고 가족도 좋고. 누구와 와도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직장 상사와도 좋고!”
효진은 빙그레 웃었다. 효진의 말대로 서울의 문화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랬다. 누구와 와도 즐거운 곳이었다.
민수는 겉옷을 벗어 효진의 어깨에 슬며시 걸쳐주었다. 효진도 나쁘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저녁 오페라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희미한 노랫소리에 맞춰 예술의 전당 앞 분수가 춤을 추었다. 분수에 오색빛이 비춰지자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효진이 자그마한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반짝이는 서울의 밤은 그렇게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당신 힘들었던 거 알아. 누구보다도.”
이제는 원망이나 설득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원망이나 설득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은 있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해주길.
“연락 자주 할게. 아이들 데리고 자주 내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를 내고 시부모님께 일러보기도 하고 협박까지 했던 아내였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최고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아내였다. 생활비 한 번 허투루 쓴 적 없는 모범답안과 같던 남편이 돌연 귀농 생활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권유였으나 나중에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묵묵히 함께 살아온 30년. 아이들을 다 키워놨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주일간 아내는 잠도 제대로 못 들고 남편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에 변함없음을 알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젠 이런 실랑이도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남편은 홀로 횡성으로 떠났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싫다고 할 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고집불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작정 우겨 내려온 것이지만 단출한 살림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귀농 생활이었다. 일단 무작정 장에 가보기로 한 남자는 우연히 소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바라보니 어릴 적 남편과 닮았다. 남편은 큰 눈에 겁이 많아 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와 남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논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밭을 갈 일도 없는 남자였지만 남편은 소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내가 바라보았다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아내가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이젠 소까지 키우느냐며 농사꾼이 다 됐다고 웃는다. 아내가 오랜만에 웃는다.
아내도 자신이 빙긋 웃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쩍 말을 돌린다.
“혼자 피죽도 못 얻어먹고 사나 했더니 제법 살림꾼 다되었나 보네. 딸린 식구도 있고. 하긴, 횡성 하면 한우지. 이 소는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아내는 겁이 많고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향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여물을 다듬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소를 끔찍이 생각하던 횡성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로 접어들자 횡성사람들은 소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가 돌아갔다. 아내는 은밀히 여기 내려와서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유리씨, 괜찮겠어? 오를 수 있겠냐고.”
걱정인지 귀찮음인지 모호한 어조로 말하는 팀장의 목소리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요. 피해 안 가도록 천천히 뒤따라갈게요.”
팀장은 대답을 다 듣긴 한 것인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바람을 남기고 다른 팀원에게로 가버렸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 눈물에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져 남은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삶처럼 짐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유리는 선천적으로 하반신 근육과 뼈가 약해 약한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곤 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언제나 괜찮겠어?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 한 번씩은 다 타본 자전거도 타본 기억이 없고 그 나이 때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다 해본 고무줄놀이 한번 못해봤다. 사실 해볼 생각도 못 해봤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인 운동회 날의 기억을 묻는다면 사실 나는 즐거웠지만 엄마는 오히려 엄마가 학교에 말해 줄 테니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뒤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그녀다. 어릴 적부터 늘 고민이면서 꿈이었던 문제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갖는 첫 워크숍을 치악산으로 온 것이다. ‘악’이 들어가는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하여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다고 한 것쯤은 유리도 안다. 그래서 엄마는 물론 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우기고 우겨 따라가겠다고 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어 왔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오면서 그녀가 생각한 것이 있고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워크숍을 따라 오기로 작정한 후 줄곧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코끼리와 말뚝 이야기이다.
서커스에서는 작은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메어둔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기 코끼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자란 코끼리는 나뭇가지만 한 말뚝을 충분히 뽑아내고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불가능 할 것이라고 되뇌어왔기 때문이다.
다시금 팀장이 내게로 왔다.
“유리씨. 유리씨가 간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않을게. 근데 유리씨도 참 유별나다. 남들은 오르기도 전부터 힘들다고 저렇게 울상인데 굳이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말뚝에서 좀 벗어나 보려고요.”
유리는 발가락을 잠시 꼼지락거려본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어쩌면 자전거도 타고 고무줄놀이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어 놓은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한 걸음 발을 떼어본다. 어쩐지 발이 가볍다.
“아빠, 이번 연말에는 어디 갈 거예요?”
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보고 싶은 곳이 가득한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산통을 좀 깨야겠다. 나도 내년에는 꼭 내 시집을 내리라 결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멀리 가지 말자. 연말 되면 카운트다운 하는 곳 있잖아. 거기 가서 타종식 한 번 보고 오는 건 어때? 아빠가 옛날에 가 봤는데, 가수들도 많이 오고 불꽃놀이도 해.”
싫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나 하고 있었는데, 자기도 그런 의미 있는 곳에 가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을 보니, 딸도 이제 어린애는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도 꼭 한 번 직접 타종식을 보고 싶었다며 한 수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의 연말 맞이 여행, 아니 연말 맞이 나들이 장소가 결정되었다.
서울 시내 어디가 북적거리지 않겠냐마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북적임이 있다. 바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일대. 시간이 비는 오후면 교보문고에 들러 소설책을 한 권 읽고 가기도 하고, 아직 초등학생인 조카들을 데리고 세종대왕 동상과 그 아래 숨겨진 박물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던 촛불집회가 열렸던 곳도 바로 이 세종대왕 동상 앞이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사회 운동을 하러 나왔을 때, 회사원들이 건물 창밖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며 무언의 응원을 보내던 장관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거닐었던 경복궁이 동상 너머에 있었었으며, 청계천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에도 이곳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보러 왔었다.
그렇다. 내게 있어 광화문은, 내가 아는 수십 년의 서울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세 시간 쯤 여유를 두고 광화문에 도착했다. 몰려드는 인파를 한 번에 감당할 수 없어 타종식이 있기 얼마 전에는 교통을 통제하기 때문에 종각에 미리 가 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 광화문 일대의 문화를 느껴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은 또 크리스마스였기에, 거리는 아직 오색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가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행사를 한 번에 챙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였다.
나는 아내에게 근래에 크게 유행했던 로맨스 영화의 원작 소설 한 권을, 아내는 딸이 요새 푹 빠져 있는 외국 밴드의 앨범 한 장을, 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건실한 문화 향유층이야. 문화 시민이 달리 뭐 있겠어?”
딸이 건넨 말에 한바탕 웃으며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청계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러 왔는데, 청계천에도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조명들이 밝혀져 있었다.
“여기서 예전에 등 축제 정말 예뻤는데. 아빠가 매일 그렇게 광화문 노래를 불러도 안 와 닿더니, 그 때는 정말 세상에서 여기가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았다니까요.”
그래, 문화라는 것이 말로 백 번 들어 무엇 하겠는가. 한 번 눈으로 보면 단숨에 반해버릴 것을. 내 철학을 늘어놓았다가는 면박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마음속으로 할 말을 삼키며 웃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 ‘새해 복 많이 받아!’하는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오죽하면 이 일대에서만 휴대전화가 반쯤 불통이 되었겠는가. 사람들의 입가에는 하나같이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신나게 소리를 지르다 보니 행사는 모두 끝났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삼천 원짜리 싸구려 불꽃이 팡팡 터진다. 화약재가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데, 아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옷을 털어내지 않았다. 우리 가족도 노점상에서 파는 핫도그 하나씩을 들고, 축제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광화문을 걸었다. 평소에는 길거리 음식이라면 학을 떼는 아내도 오늘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지금 이곳이 바로 살아 숨 쉬는 서울 문화의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