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서원~이상재 정려각~오산 궐리사', 유교 문화 따라 걷는 오산 여행,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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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서원~이상재 정려각~오산 궐리사', 유교 문화 따라 걷는 오산 여행


오산시는 전국 면적 대비 0.04퍼센트의 면적을 가진 작은 도시로,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다섯 번째로 작은 도시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오산시를 결코 작기만 한 도시라 말할 수 없을 것. 특히 유교 문화와 관련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문헌서원부터 이상재 정려각을 거쳐 오산 궐리사에 이르기까지, 유교 문화를 만나볼 수 있는 오산시의 문화유적들을 둘러보도록 하자. 

                    
                

최충의 교육열이 남아있는 오산 문헌 서원

내삼미동에 위치한 문헌서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사립 교육기관을 세웠던 고려 시대의 유학자 문헌공 최충과 그의 아들들인 문화공 최유선, 문장공 최유길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문헌서원에 봉안되어 있는 인물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뛰어난 관리인 동시에 훌륭한 교육자였던 최충은 ‘해동공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고 전해진다. <칠대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고려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도 최충의 공이 컸다. 안으로는 민생을 살피고, 밖으로는 외교에 힘썼으니, 단연 고려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재로 평가되고 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그는 구재학당을 설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구재학당을 모방한 사학들이 줄을 이었다고 할 정도이니 구재학당의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구재학당의 생도들은 ‘문헌공도’(문헌은 최충의 시호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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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서원은 문헌 최충과 그의 아들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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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서원 일대는 휴식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최충의 자손들이 구재학당의 명성을 이어갔으니, 이 학당에서 공부한 생도들이 고려 학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에 문헌서원에서는 고려의 유학자인 최충과 그의 아들들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영정각을 중심으로 하여 게이트볼 장, 운동시설 등을 겸비한 문헌공원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여 문헌서원을 찾아 휴식을 꾀할 수도 있겠다. 본래의 문헌 서원은 황해도 해주에 있으나, 분단 후 남한에 있는 수십 만 명의 해주 최 씨 대종회인들이 힘을 모아 오산에 문헌 서원을 재 건립하였다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지금도 오산시의 문헌 서원에서는 해주 최 씨 대종회의 영단제와 대제가 열린다. 

 

충신을 기리다, 이상재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상재는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던 인물로, 그를 만났던 중국 사신이 그의 솜씨에 크게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병과로 급제하여 금정 도찰방에 올랐던 그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몸을 피하고 있던 인조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현재의 용인에서 전사하였다. 왕실에서는 그의 충절을 쉬이 잊지 않았다. 그래서 숙종 때 정려가 내려졌으며, 영조 때에는 홍문관 부제학으로 증직되었다. 그래서 이상재 정려각의 현판에는 ‘충신 증 통정대부 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행통덕랑 금정찰방 겸 승문원저작 이상재지문’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한식의 골기와를 얹은 맞배지붕과 겹처마를 가진 정려각은 이상재가 살아생전 가지고 있었을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말끔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벽면에 그려진 백호과 청룡의 그림은 이상재의 충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정려각의 좌측에는 이상재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감실이 있는데, 이러한 양식을 가진 건물이 귀하여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파악하기 위한 귀한 향토 유적물이 되고 있다.

 

정조가 인정한 가치, 오산 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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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 궐리사 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풍경들이 아름답다. 

오산의 궐리사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은행나무에는 정조, 그리고 공서린 선생(공자의 64대손으로 이 공서린이 궐리사를 통해 후학을 가르쳤다 한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산 궐리사의 은행나무는 공서린 선생이 북을 걸어 놓았던 은행나무인데, 공서린 선생이 죽은 뒤 한동안 순이 돋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행차할 적에 이 은행나무에 새순이 돋으며 새가 지저귀었다는 것이다. 이에 정조는 사당에 ‘궐리사’라는 이름을 직접 짓고 어필로 현판을 적어 하사하였다. 

오산 궐리사는 서원철폐령과 함께 소실되었던 사당이기도 하다. 이를 1900년에 다시 세우고 공자의 상을 모셨으니, 지금도 지방 유림들이 이 궐리사에 모여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오산의 궐리사는 우리나라의 2대 궐리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다른 하나는 논산에 위치한 노성 궐리사다.) 안팎이 두루 가꾸어져 있어 유교문화와 함께 산책을 즐기기에도 적합한 곳이 바로 이 오산에 위치한 궐리사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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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인재들을 길러낸 최충의 교육열이 궁금하다면 오산시! 이상재 정려각과 궐리사도 빼 놓을 수 없는 문화유적지라구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0년 05월 2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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