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이야기 해주세요! 네?
손주 녀석이 주위를 맴맴 돌며 자꾸만 성가시게 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늙은이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했을 때 하도 심심해하기에 옛날이야기를 한 번 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화책보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는 게 훨씬 재미있단 말이야.”
“할머니 귀찮으시니까 책을 보든가 비디오 봐.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빌려왔어.”
“싫어. 싫어,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이야기 들을 거야. 메롱~”
손주 녀석이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눕더니 기어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기야 이제 좀 더 크면 이런 어리광도 못 보겠다 싶어 못이기는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옛날 옛날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사과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 우물 옆에 있었지.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면 우물물처럼 공동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 남는 것은 따다가 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큰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사람들의 탐욕이었단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자라났고 옆 동네 김씨가 자기네보다 더 많은 사과를 가져가는 것 같았고 옆 집 박씨가 더 탐스럽고 빛깔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가는 것 같이 느꼈던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자기네 소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막 싸우고 그랬어요?”
“원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 문제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씨가 사과나무 근처로 가서 마을사람들 몰래 탐스러운 사과를 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한 다섯 개만 몰래 가지고 왔지. 그런데 도둑질이라는 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법이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김씨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열 개, 스무 개씩 몰래 따오기 시작했단다. 원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 때 누군가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김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런 양심 없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걸리면 가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마을사람들은 김씨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과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김씨는 머리를 썼단다. 자신이 도둑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거지. 도둑은 아무래도 새벽녘에 나타날 테니 자신이 숨어 있다가 도둑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속셈이었단다.
날은 어두워졌고 김씨는 우물 옆에 숨어있었단다. 그리고는 잽싸게 사과를 땄지. 그런데 그 때였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김씨를 눈여겨 본 박씨였지. 박씨는 ‘도둑이다. 사과 도둑이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치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며 김씨에게로 달려왔단다. 놀란 김씨는 그만 휘청하여 옆에 있던 우물에 빠지고 말았어.”
“헉, 그래서 김씨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물에 빠져서 죽었어요?”
“뒷이야기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우물에 빠진 김씨는 박씨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박씨는 김씨를 용서하고 우물에서 꺼내어 주었지. 그런데 박씨가 우물에서 김씨를 구해주자 마자 김씨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졌단다. 목숨을 구해준 박씨에게 오늘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박씨를 협박했지. 박씨는 무서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단다. 그런데 마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새벽녘이 되면 우물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
자기가 사과도둑이었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마을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김씨가 우물에 빠졌을 때 말한 내용이었지.
우물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김씨의 잘못이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났고 김씨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쳤고 박씨에게도 사과를 했단다.”
“이야. 역시 할머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야 해요!”
이번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던 모양이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오늘도 행복한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볕이 좋은 주말 오후에도 체육관은 기합소리와 땀 냄새로 그득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씩 달고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나같이 종목들과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국가대표’라는 직분은 같기에 오늘도 기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고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웃음으로 넘긴다. 4년의 기다림을 알기에 그들은 참고 또 참는다. 누군가는 메달이라는 상징물 혹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세계적 이슈로 보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나라의 미래일수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쓰러지겠어. 메달 따고 싶어 하는 맘은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 메달 따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메달 따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몸을 힘들게 해. 좀 쉬었다 하자.”
한준은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복이 흠뻑 젖었다. 파트너 희진의 만류에 겨우 기구를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준에게 희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
“무슨 소리야 그게.”
“한준이 너, 어머니 찾겠다고 그러는 거잖아. 메달 따서 당당하게 찾아뵈려고. 아니야?”
한준의 부모님은 한준이 12살이 되던 해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고 한준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한준은 어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준은 메달을 따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을 때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오로지 운동만 했다.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하나만을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주말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외식하자 외식.”
생각 없다는 한준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체육관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바깥바람을 만끽하며 걷는 희진과 달리 바닥만 보고 걷던 한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바로 앞에는 낡은 구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눈물이 그렁한 채로 한준 앞에 서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한준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준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돌아가세요.”
“저기, 한준아. 밥.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점심만 같이 먹고 가면 안 될까?”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희진이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이 파트너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한준이 어머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헤. 아, 마침 저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제가 오늘 운동스케쥴이 있었던 걸 깜빡했지 뭐에요? 그래서 그런데 두 분 이서 식사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우리 한준이 파트너 분이세요? 반가워요. 같이 식사하면 좋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다음에요. 한준아, 밥 맛있게 먹고 와. 나 먼저 들어간다!”
몇 년 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잘 살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니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픈 한준이었다.
“한준아. 엄마가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운동하면 힘들 텐데. 뱃속 든든하게 채우고 운동해야지.”
“국수가 먹고 싶어요. 멸치국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곳에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가 8평 남짓한 공간이라 더욱 밀착해서 앉게 되었다. 멸치 국수 두 그릇에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좀 더 근사하고 든든한 거 먹지, 국수는 배 금방 꺼지는데.”
“김밥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한준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어머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국수가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서 가끔 혼자 와서 먹고 가고 그랬거든요.”
어머니의 눈물이 국수그릇으로 똑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이곳을 찾아왔을 한준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한준은 이제 경기 전까지 운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경기 끝나면 엄마가 직접 끓여주는 국수 맛보러 가겠다는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어머니를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한준의 귓가에는 후루룩 소리가 맴돌았다.
3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졸업반 시절 떠난 봉사활동에서였다. 나는 보육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꽃밭에서 아이들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는데 멀리서 날아온 공이 내 앞에 떨어졌다. “Sorry.” 라고 짧은 말을 남긴 채 공을 가지고 휙 달아났다. 벤치에 앉아 공을 들고 간 쪽을 바라보니 남자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보육원 아이들은 일제히 식판을 들고 배식을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아이들 낮잠시간이 되니 한숨 돌릴 시간이 났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치우고 빨랫줄에 빨래를 거는데 큰 이불 같은 건 영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웬 키 큰 남자가 불쑥 내 앞에 서서 빨래를 걸어주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축구공을 가지고 간 그 외국인이다.
“때, 땡큐.”
“뭘요.”
“어! 한국말 할 줄 알아요?”
“그럼요. 한국말 조금 할 줄 알아요. 나는 메브에요. 프랑스에서 왔어요. 당신은요?”
“아. 저는 은영이에요.”
빨래를 다 널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 봉사활동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한국은 관심 많아요.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에요. 그리고 여기는. 음. 봉사 좋으니까.”
“그렇군요.”
서툴게 한국말을 하는 메브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약간은 귀엽다고 할까.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우리 동네에 서울공원 있어요. 나는 가보았습니다. 서울에도 파리공원 있어요.”
“프랑스에 서울공원이요?”
강남역 사거리에 서울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길 이름을 붙인 것은 알았지만 프랑스와도 이렇게 공원을 지어 외교적인 문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서울공원 멋져요.”
메브는 휴대전화에서 서울공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한국적인 고전미가 넘치는 정자에 불로문까지. 사진 속 메브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멋지네요. 파리공원에도 가 보았나요?”
“아직 못 가봤어요. 내일 가볼거에요. 같이 갈래요?”
그렇게 갑작스런 인연은 하루 더 함께 하게 되었다.
검정색 모자에 빨간색 운동화를 신은 메브는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메브와 파리공원을 둘러보니 정말 파리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파리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모형의 에펠탑과 개선문 정도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나 에펠탑 정말 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파리에 가면 꼭 보고 말거야.”
“이거보다 조금, 조금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농담 아니야 메브. 난 파리에 꼭 가보고 싶어. 에펠탑도 보고 여기 있는 개선문도 보고.”
“언제 놀러와. 우리나라에 은영 초대할게.”
“그래, 고마워.”
“나는 말이야 메브. 꼭 프러포즈는 에펠탑 아래에서 받고 싶어. 그게 내 로망이랄까?”
웬일인지 메브 앞에서 뜻밖의 이야기까지 꺼내는 내가 놀라웠다. 그저 프랑스라는 나라와 파리라는 도시에 연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정도로 메브와 가까워 졌다고 느껴졌을까.
“꼭 와. 내가 불 반짝 하고 있을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프랑스 사람과 그 프랑스 앞에 서 있는 한국 사람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한발자국 더.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월출산에 올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길래 이름마냥 고요하고 아름다울줄 알았는데, 웬걸, 기암절벽에 바위 천지, 산세는 또 어찌나 험한지!
“이 산이 원래 이렇게 험한 거야, 아님 내가 가는 이 코스만 험한 거야?”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검색을 시작했다.
“월출산,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상으로 기세가 가장 센 산? 아, 내가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구만. 게다가 구름다리 코스가 가장 난코스? 아아악, 젠장!”
당장이라도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따 아내와 통화를 해야 하니까. 싸우고 꼴 보기 싫어도, 집에는 같이 가야한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아내와는 같이 안왔을텐데.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처음부터 월출산에 가는 걸 싫어했다. 이왕 여름휴가를 받아 쉴 거면 산 보다는 바다가 좋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가지도 않은 산악 캠핑장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망할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한민국 남자들을 전부 된장 캠퍼로 만들어 놨어...’
게다가 전국의 술이란 술은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인데, 하필 영암에는 그가 아직 섭렵하지 못한 술이 있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영월이 됐다. 도대체 그냥 막걸리도 아니고, 무화과 막걸리가 뭐길래!
남편의 소원대로, 그들은 월출산 캠핑장에서 무화과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처음에는 툴툴거리던 아내도 한 사발, 두 사발 받아먹더니, 혼자 한 동이를 다 비웠다. 그렇게 둘이서 세 동이쯤 먹었을까? 혀가 살짝 꼬인 채 남편이 말했다.
“야, 너는 그렇게 오기 싫어하더니, 이렇게 맛나게 출을 처마시냐? 너 인제 내가 하는 말에 토 달지마 이 여편네야.”
“야, 너 지금 말하는 스타일이 왜 그 모양이야. 너 잊었어? 난 지금도 산이 싫어. 벌레는 왜이리 많고, 저 깎아지른 듯 한 산세는 뭔데? 네가 언제 내가 원하는 대로 말 들어준 적이나 있어? 내가 참아주고 사니까 이게 그걸 당연한 줄 알아. 뭐 그리고 술을 쳐 마셔? 그래, 나 아주 상스럽게 처마시고 있다.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술이 아주 그냥 술술 들어간다. 됐냐?”
사실 남편은 말을 입 밖으로 뱉는 순간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아, 입이 방정이다. 오늘 분위기잡고 첫째 만들려고 했는데, 이거 뭐 분위기고 뭐고, 내일 무사히 집에나 갈 수 있음 다행이게.’
결국 아내는 텐트에서, 그는 해먹에서 잤다. 2세 만들기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오르기로 한 월출산을 따로 나섰다. 아내는 바람폭포 쪽으로, 남편은 구름다리 쪽으로.
월출산 캠핑장에서 구름다리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러나 구름다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산새는 무엇인가; 한 시간 밖에 안 걸었는데도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있었다. 게다가 남들은 고어텍스 옷이며 등산용 스틱이며 만반의 준비를 하며 걷는데, 그의 무기는 달랑 등산화뿐이었다. 걷다가 벌써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꼈던가! 긴장감에 물을 마구 들이켰더니, 물도 벌써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구름다리는 정말 장관이었다. 밥로스 아저씨가 나이프로 휙휙 휘저어 그린 듯한 바위절벽 사이에 끝도 보이지 않게 긴 다리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공포가 밀려왔다. 한참동안 다리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난간을 꼭 잡은 채 한 발 두 발 걸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경치는커녕 눈을 어디에도 돌릴 수 없었다. 간신히 눈을 돌려 난간을 잡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다, 그는 깜짝 놀랐다. 난간에는 매직으로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떨어져라.’
그는 꽁지에 모터가 달린 듯 건너편을 향해 걸어갔다.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산의 기운이 짓누르기 전에 산과 산을 잇는 이 허공에서 도망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구름다리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딸칵. 왜?”
“너 어디야, 바람폭포야?”
“아니, 나 천황봉 거의 다 왔는데? 이제 내려갈 거야. 끊어.”
“야야야야야! 너! 아니, 미안하다.”
“너 왜 그래, 약먹었어?”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오만생각이 떠올랐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건 역시 마누라밖에 없구나. 지가 아무리 기가 세고 바가지를 긁는들 그 기운이 월출산만큼 뻗치진 않으니.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아니하잖나. 악처라도 처가 있는 게 낫다고, 감사하며 살자.
“아냐. 생각해보니까 그냥 미안해서. 나 인제 구름다리니까 조금만 기다려. 사랑한다.”
“놀고 있네... 빨리와. 투둑. 뚜.뚜.뚜.뚜...”
12월 31일.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한걸 보니 비가 내린다면 눈으로 바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리면 안 될 텐데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남자친구가 오후에 날 갠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사람들 마음속에도 연말이라는 뜬 구름이 가득 차있는 듯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은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있었고 오늘이 세상 끝 마지막 날이라도 된 것처럼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는다고 해도 제야의 종소리는 들어야 한다며 종로 2가로 모여들 것이다. 사실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가는 하루일뿐임에도 사람들은 굳이 무엇인가를 하며 추억의 액자를 못박으려했다. 언젠가는 잊힐 무심한 다짐들과 함께.
여자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 남자친구와 처음 맞는 새해였기 때문에 여자는 더욱 들떠있었다. 여자는 아침부터 12월 31일의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오전에 만나서 간단히 브런치를 즐긴 뒤 점심은 좀 더 특별하게 도시락이 어떨까? 저녁은 정말 근사한 곳에서 칼질을 한 뒤 12시에 맞추어 종로로 가는 일정이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이렇게 짜임새 있는 일정을 짜본적이 없던 그녀였다. 남자친구도 그녀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페에 앉아 점점 맑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는 여자에게 선뜻 제안을 하나 했다.
“오늘 우리 해돋이 보러갈까? 너랑 해 뜨는 거 보고 싶은데.”
“해? 음, 나 외박 안 되잖아. 너도 알면서. 우리 엄마 아빠 난리 나실걸.”
“그럼 새벽에라도 출발하면 되잖아. 응? 해돋이 보러가자.”
남자는 좀처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자도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새해라고 해서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과 술 냄새인지 땀 냄새인지 뒤섞여 콧물은 주르륵 흐르고 몸을 오들오들 떨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소리소리 지르는 아저씨들 틈 사이에서 새해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여자는 코를 한번 훌쩍이며 ‘이따 상황 봐서’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남긴 뒤 화제를 돌렸다.
여자의 짜임새 있던 일정대로 둘은 간단히 브런치를 즐긴 뒤 여자가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까지 먹었다. 이제 남은 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종소리를 들으러 갈 것인지 해돋이를 보러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애국가를 통해서 나오는 일출도 볼만하다고 여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쉽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남자는 평소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여자는 오늘 특별히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무슨 다짐을 얼마나 거창하게 하려고 해돋이까지 보러갈까 싶었다.
“좋아, 가자. 해보러. 말갛게 떠오르는 해, 보자구.”
“가기로 한 거야? 고마워. 담요랑 손난로도 준비했지.”
남자는 활짝 웃었다. 가지말자고 떼를 썼다면 남자가 많이 실망했겠다 생각했다. 담요랑 손난로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연신 하품을 하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눈 좀 붙이라고 했지만 여자는 무거운 눈꺼풀을 끔벅이며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전 4시 43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남자는 곧 도착이라고 말했고 여자는 으응 이라고 대답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많았다. 가족, 연인들로 저마다 들뜬 표정을 지었다. 해가 떠오를 때 무슨 다짐을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넌 해 뜰 때 무슨 다짐할거야? 담배는 안 피우니 금연은 아닐 테고, 다이어트? 아님 승진?”
“그런 거 말고 있어. 비밀이야. 안 알려준다고.”
“치, 우리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어. 빨리 이야기 해줘 응?”
여자가 남자에게 딱 붙어서 이야기를 할 때 저 너머에서 붉은 해가 비쳤다. 사람들은 웅성웅성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검고도 붉은 해를 보니 괜스레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멋지다.”
쉿.
여자가 말을 하려는데 남자는 여자의 말을 막았다. 해는 이미 떠오르고 어스름히 새벽이 밝아왔다. 여자는 참았던 졸음이 몰려왔고 남자는 끝내 어떤 다짐 그리고 소원을 빌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여자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할머니 손에서는 매운 내가 난다.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아이고 예쁘다 내 새끼 하면서 내 볼을 쓰다듬는다. 그때마다 매운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기 때문에 안다.
엄마,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엄마 고집도 참. 근데 저번에 담근 고추장은 잘 됐나? 하며 은근슬쩍 장독대로 향한다. 그럼 할머니는 말없이 빛깔 좋은 고추장을 아낌없이 담아주신다. 말은 일 좀 그만하라고 하면서 매번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가질러오는 엄마는 할머니가 정말 일을 그만두시길 바라는 것일까.
할머니는 늘 손끝이 아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마당에 널려있는 고추들을 만질 때면 더욱 그러셨다. 고추를 만지면 손끝이 아리구나. 아린 다는 뜻이 무언지는 몰랐지만 만지지 않았다. 엄마는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은 쳐다도 안 봤다. 내가 우연히 마트에서 할머니네 동네에서 나오는 고추장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엄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동네 유명한 고추장 장인이셨다. 도심에서 수도 없이 맛의 비결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고추장을 만들 때만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그때까지도 할머니에게 또 잔소리를 했다.
“거봐, 그러니까 내가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이게 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
“노인성 치매이신 것 같습니다. 정밀한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의사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이미 충격에 의사가 말하는 뒷말이 그저 소음으로만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러니까. 치매라고요? 저희 엄마가요?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요?”
“아, 의사 소견상 치매인 것 같으나 아직 정밀한 검사를 …”
할머니는 소신 있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하는 여의사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일어났다.
항상 정갈하고 깐깐하게 한 길만을 고집하였던 할머니였기에 의사의 입에서 나온 치매 진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였다. 아니 할머니 자신이었다. 어쩐지 그런 할머니에게선 고추의 매운 냄새가 아닌 미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치매로 인해 가꾸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할머니조차 가장 아끼는 고추장처럼 발효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고추장 다음으로 장독대를 제일 아끼셨다. 그곳에서 고추장의 맛이 깊어진다고 하셨으니까.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에 담장을 끝으로 수십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다. 언젠가 할머니께 이 장독대에 다 고추장이 들어있느냐며 팔짝 뛰며 신기해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으시고는 장독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하셨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괜찮아 보일까 싶어서였을까.
장독을 세 개쯤 깨뜨리시던 할머니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고는 깨뜨린 장독에서 흘러나온 고추장을 맨손으로 매만지셨다.
“손끝이 아리구나.”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감퇴되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는 여전히 매운 내가 났다.
내가 참 좋아하는 소리들 몇 가지가 있다. 보글보글 끓던 어머니의 된장찌개 소리,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는 소리, 뎅그렁 하는 풍경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몽돌해변의 자갈 소리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사람들이 ‘엥?’하며 반문해 오는 것이 바로 이 마지막 소리. 몽돌해변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야, 너희들이 해변을 몰라서 그래. 해변 그리라고 하면 모래사장만 그리지? 이 형님이 알고 있는 해변은 말이야…….”
말 그대로 주변에는 의외로 모래로 덮인 해변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 번 빠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것이 바로 이 몽돌해변, 그 중에서도 몽돌들이 파도에 구르면서 나는 자그락자그락 하는 소리다.
나는 몽돌해변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천 년대 초반, 아이들은 아직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매일 방과 후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몽돌 위를 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뭐든 재미있다는 말이 맞다. 예쁜 색의 몽돌을 찾는 것도, 제일 큰 몽돌을 찾아오는 것도, 똑같이 생긴 몽돌을 찾는 것도 모두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그런데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몽돌해변에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은 노을이 다 진 뒤에야 돌아오셨다. 혼자 집에 있는 게 무서웠던 깡마른 초등학생 꼬마는 몽돌해변에 앉았다.
자그락자그락, 파도가 몽돌 새를 스치며 묘한 소리를 냈다. 쌀을 씻는 소리 같기도 하고, 조개껍질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몽돌 위에 누워, 나는 한참이나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몽돌해변으로 가자.”
여름방학을 맞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것이었는데, 난데없는 추억 얘기가 길어졌다. 머쓱해진 나는 ‘달궈진 모래에 몸을 파묻는 장난은 칠 수 없겠지만, 따뜻한 몽돌 위에 누워 있으면 온돌 침대가 따로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자! 재미있겠는데? 나도 정동진이나 해운대 같이 예쁘기로 소문난 해변은 많이 가 봤는데, 몽돌해변은 한 번도 안 가봤어.”
그런데 내 얘기에 빠져 있던 친구들이 모두 오케이 사인을 보내 왔다. 몽돌해변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이 절반은 됐는데, 몽돌해변에 가 본 친구들이 줄줄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앉은 자리가 몽돌해변 이야기로 들썩였다.
“몽돌이면 조약돌 같은 거지? 이름 정말 예쁘다. 돌 하나 주워 와도 돼?”
“당연히 안 되지, 임마.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해변이 없어지는 거야. 대학생씩이나 돼 가지고 자연 망칠 생각부터 해?”
독설가로 소문 난 영민이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몽돌해변에 가 보게 되었다.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오렌지 빛깔의 노을과 흑진주 같은 몽돌 사이에 누워 하루의 마지막 볕을 쬐고 있었다. 자그락자그락, 아이들의 작은 발이 몽돌 위를 달린다.
어디선가 ‘현규야, 밥 먹자!’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도, 몽돌의 온기도 아주 따뜻했기 때문에 나는 꿈속에서 또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