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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시장에서 만나는 진짜배기 광주

    양동시장에서 만나는 진짜배기 광주

    지역광주광역시 서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양동시장에서 만나는 진짜배기 광주

    • 프롤로그
    • 1.Old & New
    • 2.이름마다 참 다양한 사연들
    • 3.요즘 장사? 좀 거시기하제!
    • 4.사동에서 양동으로 옮겨온 까닭
    • 5.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 6.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 7.무지개마을에 걸린 미소
    • 8.광주 본연의 리얼리티
    • 에필로그

    양동시장에서 만나는 진짜배기 광주

    - 광주광역시 서구 -

    ‘거시기, 머시기’는 이도 저도 아닌 흑백의 경계를 넘어선 애매하고 이상한 전라도 말입니다. 대체 그 속뜻은 뭘까요? ‘거시기’는 이미 알고 있지만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로, ‘머시기’는 언어로는 줄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행위의 술어로 대략 쓰입니다. 아슬아슬하게 곡예 넘듯 줄타기하는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서로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위로해온 시장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광주인의 인생고락도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양동시장에서 광주인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라!’입니다.

    광주역에서 양동시장으로 이동한다.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에 식량을 제공했던 이 시장은 전남 최대의 상설시장으로 변모를 거듭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양동시장이 그간 여러 차례 보수와 신축을 통해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됐구나. 시내 번화가의 모던한 느낌 역시 시간의 변화에 따른 풍경이겠지?”

    “예전에 처음 광주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곳 양동시장이었는데, 왠지 이곳 시장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100여 년 전까지도 이 자리는 그저 갈대밭이었으나 일제 때 큰 장이 서기 시작했다. 그때 축구장, 씨름판도 있었다. 당시 이 장터를 명명했던 이름도 참 다양했다는데?

    “‘샘몰’, ‘천정’, ‘동명’ 등등 이 시장자리는 왜 그리 이름도 많았는지.” “그래도, 여러 직종에서 드센 사람들이 모이는 데라 그런가, 일제가 동명(洞名)이라고 이름짓자마자 그 잔영을 없애려고 양동(良洞)이라고 바로 바꿔 불렀다지?”

    “지역적 특성에 착안했다는데, ‘양동’은 무슨 뜻이지?”

    1910년 광주교 아래서 노천시장으로 출발한 양동시장. 농수산물, 공산품, 식품 등이 주로 팔리지만 이 시장에서 제일 인기 좋은 물건은 따로 있다는데?

    “신혼용 침대와 12자짜리 장롱을 합해 100만원? 어떻게 이렇게 싸진 거죠? 그런데 예전보다 활기는 좀 떨어지네요.”

    “아, 근처에 백화점 들어서면서부터 거리에 냉기가 팍팍 흐르제. 늦게까지 술 마시는 사람도 없고. 사람 없는 거 보면 모르겠소.”

    1932년 지금의 사동에 처음 장터가 생겨난 양동시장은 현재 호남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 품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국밥집’으로 알려진 하나분식이 이곳에 있다는 거 알고 있었니? 대선 5일전 시장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국밥을 남김없이 비웠다해 유명해졌지.”

    “어디 그뿐일까. 여기가 대인시장과 함께 광주시민에게 주먹밥, 약품 등을 제공하며 지원도 많이 했지. 지금 이 시장자리가 쫓겨난 곳이라는데, 혹시 그 사연을 알고 있니?"

    양동시장 상인들은 1980년 5월에도 언제 계엄군에게 보복당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나눠준 주먹밥.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심정으로 주먹밥을 만든 것일까?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신경림의 ‘겨울밤’이구나. 광주가 무참히 살육 당했지만 끝내 다시 살아난 까닭은 정말 이 지고지순한 주먹밥 때문이었을까?”

    굽이쳐 흐르던 광주천을 직강화 하천으로 만들고 광주천 주변에 근대식 공장과 운동장이 만들어지던 새마을운동 시기, 이곳 광주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삶이 있었을까?

    “그땐 부모님들에게 고난의 시작이었지. 시장에서 메리야스나 플라스틱 용기 같은 것들을 사서 머리에 이고 마을을 돌며 외상을 주고 추수 뒤에 받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셨으니까.”

    “맞아. ‘명색이 가장이라는 사람이 쯧쯧쯧~’ 하며 겨울에 동상 걸려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운 몸을 이끌고 다니는 어머니를 보다 못한 집안 어른들이 아버지를 크게 꾸짖을 정도였으니.”

    양동시장 신용협동조합 옆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양동문화센터’가 있다. 이곳에는 자기 둥지를 떠나와 시장옥상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들만의 공간이 있다는데?

    “말 안 통하는 짐승이야 삼시 세끼 밥만 챙겨줘도 되지만 이역만리까지 시집 왔응께 여그서라도 말 배워 편하게 살아야지라. 보믄 짠해 죽겄소.” “정말 애틋한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야. 가족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기도 하네.”

    “무지개마을이 물건만 파는 가게인 줄 알았는데 공방도 마련되어 있구나. 작은 쉼터 같아.”

    전라도 사람을 닮아 때때로 드세고, 때때로 곰살맞으며, 때때로 서럽고, 때때로 흥에 넘치한 치는 양동시장, 이곳에서 광주만의 리얼리티를 발견할 수 있을까?

    “1980년대 군부독재가 레코드판마다 강제로 주입시킨 검열 받은 건전성 짙은 음악은 없지만 독립운동하다 포목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의 이야기와 따뜻한 아무 의미 없는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가 한치의 꾸밈없이 좌판처럼 즐비해 있어.”

    “그래서 이 시장을 광주 본연의 리얼리티 전당이라고 하는 걸까?”

    이 별에 인류가 정착하고 산 이래로 양동시장처럼 독특한 공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만들어져 사고 팔리는 물건과, 그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 그들이 모인 공간과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 사람이든 물건이든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품고 시장살이를 함께합니다. ‘머시기, 거시기’를 연발하며 웃음도 눈물도 끊이지 않던 세월만큼 강하게 서로를 품고 의지합니다. 전라도 사람을 닮아 때때로 드세고, 때때로 곰살 맞으며, 때때로 서럽고, 때때로 흥에 넘치는 양동시장에서 여러분은 광주의 어떤 삶을 만나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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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지역광주광역시 북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 프롤로그
    • 1.한권씩 가져가세요.
    • 2.말발굽소리가 들린다.
    • 3.생소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 4.할머니들이 만든 거리
    • 5.자글자글 주름에 피어난 꽃
    • 6.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 7. 또 하나의 물음표
    • 8.구수하고 정겨운 추억을 사러가자!
    • 에필로그

    물음표를 달고 가는 시장

    - 광주광역시 북구 -

    간편함과 편리함과는 맞바꿀 수 없는, 아날로그가 흐르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입니다. 천막하나 없이 자리는 만들면 그만이라며 줄지어 늘어서 간이 가게를 만드는 할머니들의 얼굴엔 고단함이라고는 없습니다. 편리함을 따라 갈 법도 한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하나씩 달고 이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찾는 곳이지만 결국엔 같은 해답을 얻고 돌아가는 광주 북구의 말바우시장,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말바우시장에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돌아오라’

    화려한 겉표지에 ‘쇼핑 가이드북’이라 적혀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한권씩 가져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시장을 책으로 공부하고 간다고 하면 믿을까?

    “여기가 말바우시장 입구가 맞나? 길 따라 들어서긴 했는데 여기가 말바우 몇 길로 이어지는 줄은 모르겠다. 저기 어르신께 여쭤보자.”

    “처음왔구먼, 여기는 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가야된다우. 거기 보면 어디에 뭘 파는지, 말바우시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으니까.”

    말바우라는 시장의 이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유래가 궁금하다면 손에 든 쇼핑 가이드북을 펼쳐보라.

    “좁은 골목사이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왜 말바우시장일까? 가이드 북에도 말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말이랑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말바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이 훈련하던 말이 바위위로 힘껏 발굽을 내디뎠는데 그 바위에 말 발굽모양으로 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말바우 시장에서 팔고 있는 채소나 약초들은 그 이름을 듣기 전까지, 아니 들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줄곧 ‘이건 뭐예요?’라는 물음표를 머리위로 달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못 보던 물건들과 채소들도 많다. 장터라서 그런가?”

    “물론 재래시장이기도 하지만, 말바우시장은 직접 경작한 생산품을 파는 전통 직거래 장으로 각종 약초나 울금, 함초, 연근 등 생소한 것들이 많아. 그뿐인 줄 아니? 지네나 굼벵이도 판다는데?”

    말바우 1길에서 말바우 7길에의 골목골목엔 우리네 할머니들이 앉아있다. 천막도, 좌판도 없이 자리를 만들었다.

    “저기 할머니들께서 줄지어 앉아 물건을 파시네. 그런데 천막도 없이 그냥 스티로폼에 자리를 깔고 만드셨나봐. 정겹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우리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찡해진다.”

    “그러게, 팥이며 도라지, 대추, 고추, 가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난 붉은 팥 한 되만 사가지고 갈래.”

    눈가에도 손등에도 고단함이 만든 세월의 꽃이 활짝 피었다. 돈을 내미는 손을 덥석 잡으시고는 “곱네 고와~”라고 하시며 예쁘니까 특별히 덤을 더 주신단다.

    “할머니, 저기 붉은 팥은 한 되에 얼마에요?”

    “아이고,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시장엘 다 오고, 팥은 한 되에 이만 원인데 특별히 예쁘니까 조금 더 넣어줄게.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좋네 좋아. 생기도 도는 것 같고 아이고 곱다.”

    킁킁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냄새에 이끌려 간 곳에서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느낌표를 얻을 수 있을까?

    “많이 걸어서 그런가? 슬슬 배고프다. 맛있는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단팥죽이 유명하다던데 단팥죽 한 그릇 먹고 갈까?”

    “단팥죽도 좋은데 난 저기 보이는 도토리 묵국수! 국내산 도토리 100%라는 것에서 자부심이 느껴져.”

    흔히 남도음식을 맛깔스럽다고 하는데 문득 남도 음식이 궁금하다. 말바우 시장입구에서 삼각동으로 이동하면 남도의 향토음식을 알려주는 박물관이 있다는데?

    “음식을 맛보고 나니 남도가 더 궁금해지는데?” “그래? 그럼 남도향토음식박물관으로 가볼래? 거기에서 더 많은 남도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

    “아까 묵국수를 먹었는데도 입에 침이 고인다!”

    시장에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단순히 구입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심과 추억과 정을 살 수 있는 말바우시장이 더 궁금해진다.

    “흔히 시장을 보러간다고 하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도 둘러보고 물건들도 둘러보기 때문이 아닐까?”

    “맞아, 누군가에겐 사람냄새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정겨움에 미소를 짓기도 하지. 우리처럼 궁금하던 걸 속 시원히 알아가는 살아있는 박물관 같기도 하고 말이야.”

    상인들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며 좋지 않은 사정을 덤으로 메워주고 사람냄새가 그리운 이들에게 진한 그리움의 시간들을 메워줍니다. 물음표를 띄운 이들에게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그 해답을 알려주지요.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내고 정겨운 미소를 건네는 말바우시장은 떠나는 이들의 귓가에 생생한 말발굽소리가 맴돕니다. 수많은 물음표를 간직한 곳, 말바우 시장은 신선하고 저렴한 물건들로 가득하며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입니다. 할머니들이 만든 거리에서 아직 가시지 않는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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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80 고달픈 몸과 맘, ‘추억’으로 달래다

    7080 고달픈 몸과 맘, ‘추억’으로 달래다

    지역광주광역시 동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7080 고달픈 몸과 맘, ‘추억’으로 달래다

    • 프롤로그
    • 1.향토색 짙은 거리퍼레이드
    • 2.추억으로의 시간여행
    • 3.7080, 2030을 아우르다
    • 4.보물찾기와 무언극이 있는 골목문화제
    • 5.추억의 동창회
    • 6.영국 에딘버러 축제처럼
    • 7.이발소·밥집·술집… 옛거리 그대로
    • 8.문화적 환기구 역할 했던 충장동 다방들
    • 에필로그

    7080 고달픈 몸과 맘, ‘추억’으로 달래다

    - 광주광역시 동구 -

    광주 동구는 옛 충장로를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7080세대가 활개를 치던 충장로의 이발소부터 상점, 다방, 동창회 장소였던 금남로공원과 충장로를. 그래서 이맘때 이곳은 30∼40년 전 옛 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추억거리로 넘쳐납니다. 광주 ‘추억의 7080 충장축제’를 보고 있노라면 연방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늘 주제를 ‘추억’으로 삼아 그 의미를 새롭게 풀어내는 공간이 있기에 잔뜩 위축된 도심 한복판이 한 해 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충장축제의 현장으로 빠져라!

    전국 단위 행진단이 향토색 짙은 모습으로 가장행렬 경쟁을 벌이는 거리퍼레이드 경연 역시 볼거리다. 어떤 모습의 행렬이 거리를 누빌까?

    “전국에서 몰렸나 봐요. 우리만의 충장축제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내 눈에는 중국 관광단도 보이는구나. 동남아연합문화단에 어린이, 청소년 단체 등 팀들이 각양각색 풍물, 묘기를 하며 지나가네.” “저기 마당극을 하며 행렬하는 저 팀, 참 인상적이에요!”

    1960~80년대에 볼 수 있었던 각종 생활도구부터 학교, 군대, 시장골목 등 추억 속 공간을 하나하나 재현한 전시관도 눈길을 끈다.

    “올해도 금남로3가 옛 중앙교회에서 ‘추억의 전시관’을 열고 이발소, 상점, 다방 등으로 관람객을 맞네요. 그런데 작년보다 공간도 넓히고, 프로그램을 더 풍성해진 느낌이에요.”

    “그렇지? 실제 전당으로 옛 물건을 가져오면 비싸게 팔 수 있고, 가게에서는 도시락, 노트, 사탕, 핀, 성냥 등을 살 수 있다는구나. 나도 이 구슬을 조금 가져와봤지!”

    7080세대뿐만 아니라 충장로에서 미래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 2030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기 특설무대를 보세요! 힙합댄스 경연대회인가 봐요?” “그뿐이 아닌 듯하구나. 요들송, 마술쇼, 라틴댄스 등 전국에서 몰려든 참가팀이 100개가 넘는다니, ‘지역문화그룹공연’이 전국대회 급으로 진행되고 있어.”

    “과거를 회상하는 축제가 사실상 미래세대의 추억까지 만들어가는 역할도 하고 있군요!”

    음악·무용 등 여러 장르의 팀이 밤낮없이 금남로와 충장로 골목을 누비는 ‘골목길 문화제’도 관심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어떤 진풍경이 연출될까.

    “저기는 무대 없이 골목에서 돗자리만 펴고 공연하는 ‘충장로 골목길 문화제’도 열린다죠? 지금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언극으로 무대에 올리고 변사의 해설로 감상할 수 있는 연극이 볼 만하겠어요!”

    “보물찾기도 준비되어 있구나. 곳곳에 숨겨진 보물딱지를 틈틈이 찾아내면 뭘 줄까?”

    금남로공원에서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루에 한 학교씩 동창생과 은사가 만나는 ‘추억의 동창회’도 열린다는데?

    “선생님!” “오~ 이게 얼마만인가? 자네도 왔구먼!”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동창생과 은사가 만나는 자리가 충장축제 기간마다 마련이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요! 앞으로 더 자주 찾아뵐게요!”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 캄보디아 출신 등 다문화 가족들의 추억이야기도 이 지역 축제에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어떤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있을까?

    “이날만큼은 귀화한 외국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의 전통민속공연을 보여주고 연극,춤을 선보이며 모두 한 공간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는구나!”

    ”정말 멋져요! 이 충장축제를 영국의 에딘버러축제를 연상시켜. 앞으로 이 축제가 세계적 이벤트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요?“

    30∼40년 전 충장로에는 40대 이상이 이곳을 들리면 옛 거리를 40대 이상이라면 옛 다방을 그대로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데?

    “누구나 알다시피 충장로의 우다방은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다방이야. 그럼에도 어엿하게 존재하는 것인 양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지. 봐봐. 모던보이도 그대로구나.”

    “많은 이름들 가운데 구태여 ‘다방’이라 부르는 걸 보면 우리에게 다방이 아주 특별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술집 빼곤 변변한 문화적 소통구가 없었던 시절 광주에서 다방은 문화적으로 사뭇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는데, 그 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충장로2가의 아카데미다방은 김현승과 박봉우 같은 문인들, 김중배 같은 언론인들, 박서보 같은 화가들이 기웃거렸던 곳이지. 충장서림 일대 아폴로다방은 1950년대 이해동의 시화전이 열렸던 곳이고.”

    “다방이 문화공간으로 애용됐던 예는 이밖에도 많다지요?”

    광주시 동구 충장로5가 광주극장 옆 300m 골목길에는 1970~80년대 시절 이발관과 사진관, 의상실, 만화방, 다방, 오락실 등으로 꾸며진 ‘추억의 테마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충장축제만으로 돌아본 이곳 일대는 한마디로 위대한 다양성이 공존하고 사람의 원초적인 욕망들이 여러 갈래의 향기로 뿜어져 나오는 공간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거리의 생명이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이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향기가 여전히 짙게 배어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충장축제에 한번 들러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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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의 시점과 마주한 동네

    과거의 시점과 마주한 동네

    지역광주광역시 남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4-09-24 호감도

    과거의 시점과 마주한 동네

    • 프롤로그
    • 1.버드나무 그늘 아래 둥지를 튼 ‘양림동’
    • 2.고즈넉한 예스러움
    • 3.올곧은 성품이 깃든 기품
    • 4.서양과 마주한 동네
    • 5.선교사들의 성지
    • 6.학생들의 웃음소리로 메운 시간
    • 7.낯섦이 주는 뜨거운 마음
    • 8.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리
    • 에필로그

    과거의 시점과 마주한 동네

    - 광주광역시 남구 -

    광주를 연상시키는 단어는 '뜨거움'입니다. 역사가 숨쉬는 동네로 불리는 남구 '양림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으로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는 고택과 서양의 오래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양림동에 터를 닦고 가옥을 지어 올려 정착을 하여 새로운 열린 공간으로서의 공존을 보여줍니다. 과거와 현재의 고택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남구는 여전히 뜨거운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양림동에서 과거와 마주한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입니다.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이라는 뜻을 가져서일까? 아늑하고 따뜻함으로 걸어간 좁은 골목 끝에 비로소 옛집의 향기가 풍긴다.

    “고택이나 종택은 거의 시골이나 오지에 있지 않아? 이렇게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고?”

    “그렇다니까, 이제 거의 다 왔어. 양림동이라고 들어 봤지? 저기 멀리 기와지붕이 보이는 걸 보니 제대로 과거를 찾아왔다.”

    양림동에는 전통가옥 2채가 가까이 있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인데 안채와 사랑채, 팔작지붕을 보니 과거와 마주하였음을 실감한다.

    “이야, 도심 한 복판에 이런 옛집이 있었다니. 마치 우리 할머니댁에 온 것 같아.”

    “이곳은 최승효 가옥이야. 1920년대에 지어졌고 광주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곳이야. 곳곳에 옛것의 향기를 품어내는 고가구들을 보니 예스러움이 골기와만큼이나 깊은 것 같지?”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은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공간이다. 오래된 주거공간에 역사가 깃들어 있고 현대 속에 자리하고 있기에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옥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공간이래. 디자인비엔날레라고 하면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인데 좀 의외다.”

    “아마, 진회색빛 높다란 빌딩 숲 사이에 올곧은 성품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특별한 것이 아닐까? 과거와 마주한 현대라고나 할까?”

    20세기 초 선교사들이 들어와 정착한 동네로 서양식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서양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로 그 의미가 크다는데?

    “이곳이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구나. 회색빛 벽돌이 우리네 주택이랑 비슷해보여도 넓은 창이나 천장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아.”

    “개화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하며살던 살림집인 이곳은 1층과 2층의 생활공간도 눈길을 끌지만 동향으로 한 현관을 주목해보는 것이 좋아.”

    선교사들의 선교 흔적과 함께 당시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주택 건물은 네덜란드 식 건축양식을 보인다. 서양의 과거 건축양식의 발달도 속속들이 보이지 않을까?

    “여기는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오웬기념각!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지? 1900년대에서 선교와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오웬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친지들이 보낸 성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해. 회색벽돌과 창문 그리고 천장이 특히 더 아름다운 것 같아.”

    “확실히 선교에 목적이 큰 곳이라 그런지 순례지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구나.”

    지나간 세월은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피아여고는 그렇지 않다.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세월의 공간을 대신하고 있어 전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때마침 종소리가 울리네, 여기는 다른 가옥과는 다른 학교건물이야.”

    “그래서 그런지 다른 가옥들처럼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차 있어 어쩐지 좀 새로운 것 같아.” “응, 마치 현재 진행형처럼!”

    ‘서양촌’이라는 이름의 동네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낯섦이 지그시 깔려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렘과 동시에 낯섦이라는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서양촌’이라는 이름의 동네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낯섦이 지그시 깔려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렘과 동시에 낯섦이라는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네, 조금 낯설기도 한데 낯섦 때문인지 과거에 와 있다는 느낌은 조금 덜하다. 그래도 붉은 벽돌 건물은 좀 오래된 느낌이 들어, 수피아여고에는 무슨 역사가 깃들어 있을까?”

    역사, 문화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양림동의 건물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겠지만 다녀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타고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역사와 문화가 골목마다 피어나는 양림동 투어 어땠어?” “광주의 새로운 면모를 봐서 좋았던 것 같아, 무엇보다 양림동이라는 곳이 과거와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새롭기도 하고.”

    “그리고 더하자면 이렇게 누구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한 것 같지?”

    광주 남구 양림동이 문화관광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단순히 명소관광의 의미를 넘어서 단정하고 고즈넉한 고택의 모습과 당시 생소한 건축으로 양림동과 접촉을 한 서양의 고택들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광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여 더욱 특별한 양림동의 건축물은 살아있는 건축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어느 곳보다도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광주의 근대화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양림동’에서 과거와 마주한 그 순간 여러분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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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내공의 맛

    40년 내공의 맛

    지역광주광역시 광산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40년 내공의 맛

    • 프롤로그
    • 1.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아지면
    • 2.추억의 떡갈비
    • 3.참을 수 없는 그 맛
    • 4.단출했던 차림표
    • 5.쌈 크게 싸서!
    • 6.뜨끈한 갈비탕? 시원한 후식냉면?!
    • 7.빼놓으면 아쉬운 그것!
    • 8.맛에 깃들인 멋
    • 에필로그

    40년 내공의 맛

    - 광주광역시 광산구 -

    꼭 광주 광산구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비주얼로 봐서는 마치 함박스테이크를 연상시키지만 분명 철판에 내오는 떡갈비입니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시각부터 시작해 후각과 미각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송정떡갈비. 현재 광산구청 주변에 조성된 떡갈비 거리에는 12개 업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골목은, 여전히 과거의 그 소박한 멋과 맛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맛과 멋을 갖춘 음식점들이 들어찰수록 구에서는 지속적으로 환경·위생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는 송정떡갈비거리. 어떤 계기로 특화거리로 발전한 걸까?

    “와~ 여기에 ‘광산 ’ 지정서와 지정표지판이 부착되어 있구나.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특색 있는 메뉴와 원조 맛을 대물림하고 있는 맛집만이 마크를 달 수 있다지?”

    “과거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식당과 늘 주민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지자체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거로구나!”

    이제는 엄청나게 불어난 규모만큼이나 맛 또한 과거 주인의 정이 오롯하게 담긴 맛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과거의 떡갈비 맛은 어떠했을까?

    “송정동도 이렇게 현대화됐구나.”

    “예전 다 쓰러져가는 간판 하나 달랑 있던 송정떡갈비집이 문뜩 생각나. 허름한 곳에서 간혹 맛보던 그 맛, 아직도 고소한 그 맛이 남아 있지만, 왠지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지기도 하는걸."

    하지만 그 큰 규모의 식당으로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불평불만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은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옛 이름 그대로야. 이 집은 오랜 전통의 레시피도 참 특이해. 양념비법을 고수하면서 직화로 구워내는 방식, 초벌 뒤에 한 번 더 철판에 내오는 것까지.”

    ”그러게. 아~ 옛날 양은그릇에 내어주던 갈비탕도 여전하네! 얼른 맛보고 싶다!”

    산구청 주위에는 떡갈비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송정떡갈비가 원조다. 메뉴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름만 보고도 처음부터 여기가 바로 원조였으리라고 식객들은 짐작했겠지.” “맞아. 그런데 메뉴를 보니 예전과 좀 달라지긴 했어.”

    “공깃밥, 비빔밥뿐이었는데 육회랑 냉면도 추가됐네. 식당을 유지하면서 변한 것도 그대로인 것도 모두 정감이 묻어나.”

    야들야들하면서도 달콤한 이곳 떡갈비는 여타 갈비와 차이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쌈으로 먹는다는 것. 이제 직접 그 맛을 보는 일만 남았다!

    “철판에 올려 내와 온기가 오래간다. 조리면서 익힌 갈빗살은 보드랍고 비린내도 전혀 없어. 야들야들하니 입에 착 감기는구나!”

    “자, 이렇게 쌈을 싸서 먹어봐! 쌈장에 듬뿍 찍어 각종 야채를 올리고 천천히 음미하면 돼!” “음~ 달착지근함 뒤에 오랫동안 남는 고소한 맛이 참 풍성하다!”

    언뜻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 달콤한 떡갈비를 맛보고 있으려니 아까 차림표에서 보았던 후식냉면이 떠오른다. 어디, 다시 젓가락을 들어볼까?

    “후루룩, 후루룩, 캬~! 갈비탕과 함께 먹는데도 전혀 느끼함이 없어!” “이 후식냉면도 국물이 참 맛깔나! 고기에 싸서 먹으니 더 좋네!”

    “하하호호 웃음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듣기만 해도 배부른 소리들이 건넛방에서 넘어오니 흥이 더하는구나!”

    떡갈비를 다 먹고 난 뒤 이것을 추가로 꼭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이것을 빼놓으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꽤 아쉽다고!

    “잘~ 먹었다! 하지만 뭔가 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후식으로 식혜를 배놓았구나!”

    “이야~ 식혜 맛도 참 진하다. 요구르트도 선택할 수 있네.” “아이스크림도 셀프로 콘에 담을 수가 있으니 참 괜찮다!”

    식당을 나오면서 무심코 던져본 질문, 예나 지금이나 역시 ‘떡갈비의 진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떡갈비 본연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옛날 아빠, 엄마와 손 붙잡고 와서 먹던 겁나게 맛있던 그 맛은 아니야.” “지금은 먹는 게 귀했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의 맛과 낭만이 깃든 ‘멋있는 맛’이 빠져 있기 때문이겠지. 애석해하게도 영혼을 빼앗겨버렸다고나 할까.”

    “맛이란 게 꼭 변하지 않아도 먹거리 홍수 속에 우리 입맛도 얄밉게 달라지는 건 아닐까?”

    송정떡갈비거리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 정도로 이 나 있습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 광주 시골마을의 넉넉한 인심을 반추하려 물어물어 찾는 집들도 상당합니다. 분위기가 옛날과 많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때의 ‘멋있는 맛’이 아닌지라 또 한 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성과 인심은 여전합니다. 특히 송정떡갈비는 지금도 그때 이름 그대로입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에 즐겁게 발걸음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광주의 넉넉한 인심을 쫓아 떡갈비골목에 한번 들러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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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국의 도시, 차이나타운

    이국의 도시, 차이나타운

    지역인천광역시 중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이국의 도시, 차이나타운

    • 프롤로그
    • 1.제 1패루에서
    • 2.한국 속의 중국
    • 3.화덕만두 한 입
    • 4.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
    • 5.이색 박물관
    • 6.차이나타운이 걸어온 길
    • 7.삼국지를 한 눈에
    • 8.소원이 바람에 날리네
    • 에필로그

    이국의 도시, 차이나타운

    - 인천광역시 중구 -

    인천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 인천 중구. 서울과 가장 가까운 해양도시이며, 해방 직후까지는 서울 못지않은 정치와 외교,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인천의 100년 남짓의 화려한 역사를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에, 한 중구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중구에서도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바로 차이나타운. 인천역의 간판 뒤에는 ‘차이나타운’이라는 별칭이 함께 붙어 있기도 합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은 ‘차이나타운 한 바퀴를 완주하라!’입니다.

    중국 곳곳에서는 패루(牌樓)를 볼 수 있다. 마을의 입구에서 세워지는 탑 모양의 문인 패루는 충신과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황제가 내린 기념물이라는데?

    “말하자면 중국 민간 마을의 상징 같은 것이군요! 인천역 대합실 앞에 이 패루가 서 있으니, 멋지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패루는 패방이라고도 한단다. 패루에는 여러 가지 정교한 글자, 장식들과 예술적인 내용이 함께 담겨 있으니 자세히 봐 두렴. 건축과 문학, 그리고 예술의 결합을 볼 수 있단다.”

    화교(華僑)란 외국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 화교 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부터라는데, 지금의 모습은?

    “인천 지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 1900년을 전후로 중국 산동성 일대가 전쟁 지역이 되자, 중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인천으로 이주해 오기도 했단다. 한중수교 이후로, 이곳은 중국 문화 체험의 장이 되었지.”

    “중화루, 공화춘처럼 잘 알려진 중국 요리집들이 벌써부터 보여요. 배가 고파오는데요?”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달콤한 먹거리들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월병, 공갈빵부터 화덕만두와 포춘쿠키에 이르기까지, 중국 전통 주전부리 맛을 좀 보고 갈까?

    “저는 역시 포춘쿠키가 좋겠어요. 과자도 먹고, 행운이 담긴 메시지도 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중국 과자하면 또 역시 포춘쿠키지요! 어디… 저는 ‘행복하게 사는 법, 10분 이상 고민하지 말라’는 글귀가 나왔어요.”

    “좋은 글귀구나. 나는 저기 있는 화덕만두를 좀 맛봐야겠어. 맛이 일품이라던데?”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서부터 붉은 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건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의선당은 특별한 곳. 안쪽을 살짝 엿보자.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서부터 붉은 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건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의선당은 특별한 곳. 안쪽을 살짝 엿보자.

    “이곳은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중국 사람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란다. 의선당이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중국식 사찰이기 때문이지.”

    차이나타운 안에는 인천개장항 근대 건축 전시관, 인천 개항 박물관, 그리고 짜장면 박물관의 3개 박물관이 있다. 이 중 한 곳을 고르라면 단연 짜장면 박물관이 아닐까?

    “이름부터 친근해요. 짜장면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데, 모두 해결할 수 있겠네요!”

    “1940년대 말에 산동 출신의 화교 한 사람이 중국 춘장에 설탕을 더해 달콤한 맛이 나는 짜장면을 만들었지. 1960년대의 짜장면은 15원이었는데 지금은 4,000원 가량 하니 물가가 오르는 것에 따라 짜장면 가격도 450배 정도 오른 셈이구나. 신기하지 않니?”

    1983년, 일본이 현재 중구청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조계지를 설정하자, 청나라도 일본 조계지를 경계로 차이나타운 일대를 조계지로 정했다.

    “이 근엄한 공자상은 계단 중앙을 기준으로 중국 쪽에 세워져 있단다. 한중문화관 옆길의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신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지. 한 번 걸어보자꾸나.”

    “길 양쪽에 늘어선 석등 모양이 달라요! 이건 일본식, 저쪽 것은 중국식 같은데요? 조계지의 경계 지점이라 그런 건가요? 두 석등 모두 아름답네요!”

    차이나타운의 대표적인 포토존은 바로 삼국지의 내용이 담벼락 가득 그려진 삼국지 벽화거리. 천천히 걸으며 삼국지의 내용을 되새겨볼까?

    “저 사람이 유비, 그리고 저쪽이 관우, 장비! 아, 저 붉은 말은 적토마가 아닐까요? 항상 책으로만 읽었는데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 느낌이 색다른데요? 벽화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 작품 같아요. 정말 아름답게 그려내었네요.”

    “보기에도 멋지만, 중국의 문화가 그림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구나.”

    한중원 쉼터는 차이나타운의 야외 문화 공간으로, 중국의 4대 정원 중 졸정원과 유원의 시설 양식을 따 와서 조성한 쉼터. 이곳의 풍경 또한 특별하다는데?

    “장미, 대나무, 모란… 모두 중국의 전통 수목들이구나. 중국의 정취가 한껏 느껴져. 등과 다리, 계단에 이르기까지 작은 장식물 하나하나도 모두 중국식으로 꾸며져 있어.”

    “저는 저쪽에 있는 소원마당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소원이 담긴 천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요. 어쩌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중국 사람들의 소원일지도 몰라요.”

    우리나라 안에 작은 화교 사회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일입니다. 중국 양식의 건물과 장식물, 중국 음식과 중국 꽃들까지 그대로 옮겨져 있는 차이나타운은 흡사 중국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차이나타운에 다녀온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이 경이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바로 차이나타운에 직접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지 벽화를 모두 이해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우셨다면, 책꽂이에 오랫동안 잠들었던 삼국지를 한 권 꺼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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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깃처럼 아름다운

    흰 깃처럼 아름다운

    지역인천광역시 옹진군 편집국        사진옹진군청 2017-02-15 호감도

    흰 깃처럼 아름다운

    • 프롤로그
    • 1.전설로 여는 이야기
    • 2.이름에 얽힌 비밀
    • 3.백령도 가는 길
    • 4.콩들이 한 가득!
    • 5.심청이의 섬
    • 6.청이의 흔적들
    • 7.물범이 사는 곳
    • 8.바위가 빚은 절경
    • 에필로그

    흰 깃처럼 아름다운

    - 인천광역시 옹진군 -

    인천 옹진군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유인도 25개, 무인도 75개의 100개의 섬입니다. 100개의 섬이 제공하는 100가지 경관은 옹진군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과 인접한 이곳은 서해 최남단 지역이기도 합니다. 신도, 시도, 모도로 이루어진 트래킹 코스와 부아산에서 송이산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 선재도의 갯벌체험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한 곳, 옹진군.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백령도의 절경입니다.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백령도의 매력을 속속들이 알아내라!’

    백령도에는 오래 된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황해도의 가난한 선비와 고을 원님의 고명딸의 사랑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고 하니, 한 번 들어볼까?

    “이 가난한 선비는 원님의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이를 원님이 매우 싫어했다고 해. 결국 원님은 딸을 먼 외딴 섬으로 쫓아 보냈는데, 선비는 그곳이 어딘지 알 길이 없었지. "

    "그러던 어느 날, 선비는 백조의 꿈을 꾸었는데 이 백조가 힌트가 되어 장산곶에서 배를 얻어 타고 백령도로 향했다고 해. 그곳에는 꿈에 그리던 처녀가 있었지.”

    선비는 어떻게 처녀를 찾아내었던 것일까? 바로 백령(百翎)이 흰 날개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에 대한 비밀도 한 번 풀어보자.

    “백령도는 예로부터 철새의 보금자리였단다. 백령도의 고구려 때 이름은 곡도인데, 곡이라는 말은 바로 고니에서 온 말이지. 그래서 백령도는 백조의 고향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새하얀 백조가 백령도를 뒤덮고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레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을까요? 오늘 만나 볼 백령도도 그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서해 최북단 백령도’라는 글씨가 선명한 비석이 사람들을 반긴다. 인천 연안부두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치면 그곳이 바로 백령도.

    “멋진 바위들이 정말 많아요! 저 바위에는 꼭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을 것만 같은데요?”

    “하하, 눈썰미가 좋구나. 저 바위는 코끼리 바위, 그리고 저 바위는 용트림바위란다. 바위의 모양이 꼭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이 생겼지? 백령도에는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하지. 이 넓고 평평한 해안을 좀 보렴. 이곳은 군용기가 이용하는 천연 활주로란다.”

    백령도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특별한 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바로 동글동글한 콩돌들이 가득한 콩돌해수욕장! 이곳의 매력을 살펴볼까?

    “해변 가득 콩을 흩뿌려 놓은 것 같아요! 가만, 귀를 기울여 보세요. 밀려오는 파도에 자갈이 소리를 내고 있어요.”

    “이 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지. 해변에 앉아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니까? 이 콩돌 해수욕장은 자연이 제공하는 발 마사지 장소이기도 하니, 신발을 벗고 걸어보렴.”

    저 멀리 연봉바위가 건너다보인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흩어진 작은 바위들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을까?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의 바다가 바로 설화 속의 인당수란다. 그리고 저 바위의 이름은 연꽃 봉오리 바위, 연봉바위지. 잘 보렴. 바위의 모습이 마치 활짝 핀 연꽃잎들 같지 않니?”

    “아, 심청이 설화의 배경이 실제로 있는 곳이었군요! 저는 몰랐어요.” “그럼! 백령도에는 연화마을과 심청각도 있는데, 그곳으로 한 번 가 볼까?”

    백령도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바로 심청각. 심청각의 청이 동상 앞에서는 꼭 기념사진을 찍어 주어야 한다던데?

    “치맛자락을 움켜 쥔 청이의 모습이 굳건해 보여요. 청이도 백령도의 자랑 중 하나군요? 심청각 안에도 볼 것들이 참 많아요! 심청 설화를 재현해 놓은 모양들도 예쁘네요. 아, 저쪽에는 백령도를 대표하는 경관들이 있어요! 연화리 무궁화, 사곶 해변, 감람암 포획 현무암…”

    “녀석, 아주 신이 났구나! 어디,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볼까?”

    점박이물범은 북위 45도, 북극권을 서식지로 삼는 동물이다. 4월 즈음에 이 점박이 물범이 북위 38도의 백령도를 찾는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물범 캐릭터들이 많이 보여요.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아직 그것도 몰랐단 말이니? 그건 바로 이 백령도에 물범이 살고 있기 때문이야.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동물이라던데, 운이 좋으면 물범 바위에서 물범을 볼 수도 있다고 해.” “그게 정말인가요? 물범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어요!”

    배를 타고 두무진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백령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사암과 규암으로 이루어진 이 바위산은 입이 절로 벌어지게 만드는 절경을 자랑한다.

    “절벽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금방이라도 마법사가 나타날 것 같은 경관이네요.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기 하얀 바위는 바로 가마우지의 서식처야. 가마우지의 흰 배설물이 바위를 덮어 바위가 하얗게 보일 정도인 거지. 백령도가 철새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지?”

    극소수의 지역에서만 생산된다는 백색고구마와 코끼리 바위, 해당화가 핀 바닷가와 백령대교 등 백령도의 자랑거리를 모두 설명하자면 하루가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명성만으로도 얼마나 수려한 경관이 기다리고 있는 곳인지 예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진 백령도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 섬이기도 합니다. 특별함이 필요하다면, 백령도로 떠나보세요. 백령도 여행 중에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이기도 한 백령도 점박이 물범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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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고한 넋이 잠들어 있는 곳

    숭고한 넋이 잠들어 있는 곳

    지역인천광역시 연수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숭고한 넋이 잠들어 있는 곳

    • 프롤로그
    • 1.최대 규모의 상륙작전
    • 2.겁먹을 필요는 없다.
    • 3.전쟁이 일어나면?
    • 4.할아버지의 모습
    • 5.두 눈을 감으면
    • 6.생생한 기억에 맺히는 눈물
    • 7.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다한다.
    • 8.잠들어 있는 넋을 위한 위로
    • 에필로그

    숭고한 넋이 잠들어 있는 곳

    - 인천광역시 연수구 -

    두 눈을 감으면 꿈결인 듯 몽롱한 기억이 혹은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것은 실감(實感)의 차이에서부터 오는 것으로, 겪은 것 같은 느낌 혹은 겪고 있음에도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의 차이 말이다. 현재 휴전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대들도 연수구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둘러보면 실로 전시상황임을 실감하게 되고 숭고한 영령들의 넋 앞에 절로 경건해진다.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잠들어 있는 아픔을 실감하고 오라’입니다.

    때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을 시작하는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 계획된다. 작전명은 ‘인천’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왜? 그것도 애까지 데리고. 어렸을 때는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아이 유치원 숙제 때문에. 그런데 할아버지가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래서 너 어렸을 때 종종 데리고 왔었는데 벌써 새까맣게 까먹은 거니?”

    굳은 표정의 수호비와 사진자료들, 위압적인 전투기와 탱크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것들에 당시의 아픈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이곳은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열심히 싸워주신 분들을 기리는 곳이야. 그러니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단다.”

    “그렇지만 여긴 너무 조용하고 무서운 탱크도 보이는 걸요? 저기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도 그렇고.”

    아이가 조몰락거리던 손을 번쩍 들며 묻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게 아이는 점점 실감이 나나보다. 그럴 땐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 그러고 보니 엄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아마 이때처럼 지금도 열심히 나라를 지키고 있는 멋있는 군인아저씨들이 계시니까 안전할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아이가 낯선 할아버지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내 여기에 할아버지가 보인다고 한다.

    “어! 엄마, 할머니! 여기 할아버지가 보여요.” “어디보자, 엄마는 잘 안 보이는데?”

    “잘 보세요. 저기서 열심히 싸우고 계시는 거 안보이세요?” “그럼 눈을 감고 마음으로 찾아볼까?”

    두 눈을 감으니 실제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웅장한 총성들이 귓가에 맴돈다. 더불어 호국영령들의 얼굴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엄마, 울어요? 왜 울어요? 엄마도 무서운 거예요?” “아니, 갑자기 엄마의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그래. 저기 사진들 보이지?

    전쟁이 났을 때 상황이란다. 저기에 엄마의 할아버지가 계셨어. 그래서 너무 자랑스러워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가슴이 저민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였기에 더 먹먹한 것일 것이다. 생생한 흔적들이 눈앞에 펼쳐져 그만 눈물이 맺힌다.

    “어쩐지 전쟁이라는 단어나 평화에 대한 의미조차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 우리 같이 참전유공자 가족들도 그런데 요즘 세대 사람들은 오죽하겠니.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발길 한 번 않는 이들도 많다더구나.”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한다. 아이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묵념을 한다.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감은 두 눈과 앙다문 입술이 마음을 대신하는 듯하다.

    “자, 이제 묵념하고 가자. 눈감고 호국영령에게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다하는 거야.”

    “무슨 생각했어?” “전쟁나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자유와 평화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영령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다하여 기리는 것이 아닐까?

    “아이 숙제 덕분에 새로운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매번 무슨 날이면 텔레비전으로 슥 보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할아버지께서 가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래, 이렇게 잠잠히 잠들어 있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실감하고 넋을 기리는 것만으로 아이에게도 충분히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을 게다.”

    땅이 요동치고 하늘이 울리던 그날의 기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집니다.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나 흉터는 남을지언정 얼룩은 점점 옅어지겠지요. 그렇듯 기억도 점점 희미해집니다. 침략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위기 앞에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이곳에서 가끔씩이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며 그 뜻을 소중히 기리고 굳은 입술과 표정으로 전달되는 그 단단한 마음을 실로 실감하고 느끼고 돌아오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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