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원을 그려보았다. 손끝을 따라서 동그란 원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나무를 향해 말했다.
“나는 일곱 살이야. 너는? 너는 나이가 많으니?”
그리고는 밟아도 소리 나지 않고 발이 푹푹 빠지는 아주 고운 모래에 다시 동그마니 원을 그렸다. 손끝을 따라 그려지는 원은 모래에 나이테가 그려지는 듯 동그랗게 또 동그랗게 그려져 나갔다. 여러 개의 원이 모이니 톱니바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린근원의 손끝에 흐르는 동심원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근원은 등산화 끈을 조금 당겼다. 오늘은 등산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A, B팀으로 나뉘어 각자 배정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근원은 A팀에 배정되었고 아침으로는 김밥과 음료수, 물이 주어졌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남편과 자식들 이야기로 버스를 가득 메웠고 근원은 홀로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오늘의 사회자로 나선 남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근원은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대다수의 입장에 반기를 들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경을 다른 데로 쏟기 위해 근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온 시집을 꺼내들었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한두 번쯤 나가본 시사랑 동호회에서 추천받아 사게 된 시집이었다. 시를 잘 모르는 그였기에 어쩌면 시를 더욱 잘 읽고 느낄 수 있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노송’이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했다. 8줄 내외로 간략하게 쓰인 시에는 늙은 소나무에 대한 작가의 영감이 손끝을 타고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읽기 어려운 점이 없었음으로 근원은 비교적 잘 쓴 시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한번 읽고 밀려오는 졸음에 정신을 내어주고 목적지까지 다다랐을 그였지만 근원은 자신이 시를 쓰는 작가라면 늙은 소나무를 가지고 어떤 시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읽었던 시가 머릿속에 맴돌아 근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근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몸짓이었다.
‘늙은 소나무라. 소나무는 원래 좀 늙지 않았나? 어디를 돌아다녀보아도 1,2년 된 소나무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한 400년쯤은 되어야 하지 않나?’
근원은 속으로 속삭였다. 속으로 말하는 것이라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근원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도착 10분 전입니다. 오늘 저희가 가기로 한 곳은 산이 아니라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에 크게 힘든 점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므로 단단히 준비하시고 내리셔서 일사분란하게 모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소나무가 정말 예술입니다.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사진 찍으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제 차가 멈춰서면 내리세요.”
사회를 맡았던 남자는 도착 10분전을 알리며 깔끔하게 정리멘트를 보냈다. 근원도 잠시 생각을 접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모처럼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 따라 물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였다. 사회자 남자의 말에 의하면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했다. 남자는 차안에서 읽은 시를 떠올렸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동호회 사람을 제외하고도 많은 인파가 색색 깔의 등산복을 입고 소나무 숲길을 걷기위해 몸을 풀었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뒤 각각 흩어져 걷기 시작했다. 송림이 우거진 숲에 다다르자 길게 뻗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그 자태를 뽐내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고 근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소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오백년 된 늙은 소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노송이라’
근원은 머릿속에 시를 그려나갔다.
늙은 소나무
너는 말없이 늙어있구나
너의 늙음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너의 몸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갔구나
지나간 세월만큼 너는 늙어있구나
굵은 기둥은 단단하고
네 몸뚱이에서 풍겨오는 짙은 냄새가
너의 늙음을 대신하는 구나
근원은 다시 한 번 흙바닥에 동그마니 원을 그려보았다. 어린 근원이 모래바닥에 작은 동심원을 그려 넣듯이 늙은 소나무 앞에서 동심원을 그려나갔다.
조금만 더 힘내. 다와 간단 말이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까부터 저 말만 족히 30번째다.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아 함께 뒷동산에 묻은 타임캡슐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으나 여자의 들뜬 목소리에 남자는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차라리 뭐라도 나왔으면 하고 땅을 파볼까 생각도 했다. 여자는 지친 기색은 없었으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질까 염려가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수 있지?
바보 같긴. 당연히 1999 더하기 1은 2000이 되니까 그렇지.
저렇게 무드와 낭만이 없다. 아무튼 공대생이란. 혀를 소리 내지 않게 끌끌 차고는 남자의 손을 이끌고 한가로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아끼던 예쁜 편지지와 알록달록한 사인펜을 꺼내고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선물도 꺼내었다. 남자도 여자가 신신당부를 하며 준비해 오라던 선물을 꺼내었다.
“자. 이제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나는 미래의 너에게. 너는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타임캡슐에 담아 저기 대추나무 밑에 묻고 3년 뒤 오늘! 짠 하고 열어보는 거지. 어때?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으 응. 이라고 겨우 대답하는 남자를 얄밉다는 표정으로 한번 쏘아본 뒤 편지지를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여자의 강요에 겨우 펜을 잡은 남자는 몇 자 끼적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편지와 선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상기된 표정으로 큰 대추나무 밑에 땅을 파 타임캡슐을 묻었다. 3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몇 차례 주입시킨 뒤 서로의 편지와 선물이 궁금했지만 3년 뒤에 열어보기로 하였기 때문에 궁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 여긴 것 같아. 여기 대추나무!
여자와 남자는 족히 40분간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 3년 전 타임캡슐을 묻었던 대추나무를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나왔다. 등에는 식은땀도 주르륵 흘렀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변하긴 뭐가. 똑같구만. 우리 변한 것 봐. 우리가 변해서 대추나무도 변한 것 같은 것일 뿐이야.”
“그런가? 아무튼 얼른 파보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추나무 밑을 파보았다. 쏘옥하고 3년 전 묻어두었던 둘만의 추억이 솟아올랐다.
“있었구나. 정말. 그대로. 얼른 읽어볼래 편지!”
다소 오글거리는 편지를 나눠 읽은 뒤 작은 선물을 열어보았다. 여자는 남자가 당시 가지고 싶어 하던 카세트테이프를 넣었었다. 당시 남자가 좋아하던 가수 신승훈 카세트테이프다.
여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열었다. 어?
대추씨 반쪽
“이게 뭐야?”
“대추씨 반쪽이잖아.”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나한테 줄 선물이 고작 대추씨였어? 그것도 반쪽짜리?”
“우리가 있는 곳 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 그리고 이 나무를 잘 봐.”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다섯 살 이후로 녀석은 줄기차게 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졸라댔다. 생일은 물론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에도 녀석의 1순위 선물은 줄곧 동생이었다. 유치원에서 어떤 친구가 동생자랑을 했나보다. 그렇게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뒤로하고 동생소리부터 나오는 것을 보니 하나 낳아주면 좋으련만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철저한 계획아래 아이 하나를 키우려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약한 아내는 자궁벽이 약하여 착상이 잘 안되어 임신이 힘들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어렵게 첫아이를 임신하였으나 기쁨도 잠시 얼마 안 되어 유산을 했다. 아내는 첫 아이를 그렇게 보낸 마음에 절망감이 심했는지 몸이 더욱 약해져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지금 나를 똑 닮은 이 녀석을 낳았다. 사실 워낙 임신가능성이 희박했었고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한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적적으로 아이가 생겼고 우리는 더할나위없이 기뻤다. 그런데 이러한 속사정을 알리 없는 요 귀여운 악당은 그렇게 엄마를 졸라댔다.
“아빠! 나 오늘 유치원에서 희망편지 썼는데 보여주까?”
“그래, 보여 줘봐. 뭐라고 썼어?”
“음. 다음 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산타할부지한테 편지쓴고야.”
“보자, 또 동생 가지고 싶다고 썼어?”
“아니!”
“그럼?”
“음. 엄마가 안 아파서 동생 생길 수 있게 해달라고.”
이 녀석 꽤나 혼자 외로운가보다. 주말이나 틈틈이 놀아준다고 했는데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모양이었다.
다음날 이 녀석을 위해 귀여운 진돗개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충성심이 강하고 사람과 친밀도가 많은 성격을 가졌다고 해서 특별히 진돗개로 정한 것이다.
“짜잔! 아빠가 우리 동민이 동생 데려왔다.”
“우와, 강아지다.”
“귀엽지? 얘는 진돗개야. 동민이가 귀여운 이름도 지어주고 동생처럼 잘 챙겨줘야해. 밥이랑 물도 챙겨주고 알았지? 그리고 아무데나 오줌 싸면 동민이가 치워줘야 해. 할 수 있겠어?”
“그럼. 당연하지. 헤헤. 이름은 음~ 진도로 할래. 진도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그냥 진도라고 불렀을 거 아니야. 그래서 그냥 진도라고 불러줄래.”
“그래. 앞으로 진도 잘 돌봐야해. 알겠지?”
“네!”
그날 이후로 녀석은 진도를 친 동생처럼 귀여워했다. 물론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어도 진도는 더욱 각별하게 여겼다. 유치원을 가기 전에도 진도와 떨어지기 싫다며 유치원에 진도를 데려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아내와 한참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면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와 당당하게 동생이라고 소개시킨 적도 있다. 다행히 동민이가 진도와 잘 지내며 혼자 있는 시간에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형아가 되었다며 한결 씩씩해졌고 의젓해졌다. 진도가 지정된 곳에 볼일을 보지 않고 아무데나 배설을 하면 진도의 손을 잡고 타이르기도 했다 야단을 치기도 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진도는 생각보다 쑥쑥 자랐다. 잘 놀고 잘 먹어서 그런지 몸집도 동민이 만해졌고 진도가 아기 때 사준 폭신한 집도 이제는 진도에게 너무 작았다. 아파트에서 몸채가 큰 개를 키운다는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동민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도무지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을 구하려고 해도 집이 팔리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가 맞지 않아 약 한달 정도는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했다. 동민은 그렇게 잘 따르던 진도를 잠깐 동안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일단은 동민이 유치원을 간 사이에 진도를 분양받았던 곳에 몇 주 정도만 맡겨놓기로 했다. 그 사이에 집을 알아보려던 참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동민은 울며불며 진도를 찾아다녔다.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울면서 진도를 찾았다. 예상하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동창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집을 보러 와도 되겠냐는 연락이었다.
드디어 우리 네 식구가 한 자리에 있을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마음에 얼른 동민이를 차에 태우고 진도를 데리러 갔다.
진도야 진도야. 나 왔어. 형아 왔어!
진도야 진도야, 이제는 우리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돼!
진도도 꼬리를 반갑게 흔들었다.
“아빠, 제발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한 번만, 네?”
아빠도 엄마도 좀처럼 내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셨다. 지난 여행에 대한 실망이 크신 모양이었다. 백령도에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백령도가 그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백령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떠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지난 주말,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백령도를 여행하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설명해 주시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얼굴 모양을 한 바위나 예쁜 조약돌들이 널린 해변 같은 것도 그 순간에만 신기할 뿐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주말인데 친구들과 놀러 가지도 못하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봐야 하다니. 내가 빨리 집에 가자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었기에, 1박 2일의 일정이 당일치기로 줄어들며 백령도 여행은 싱겁게 끝나 버렸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백령도가 뉴스에 나왔다. 인천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로 점박이 물범이 선정되며, 점박이 물범이 사는 백령도가 언급된 것이다.
“엄마, 나한테는 저기 점박이 물범 산다고 얘기 안 했잖아!”
“얘는. 네가 얘기하면 듣기나 했니?”
엄마가 핀잔을 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콩돌 해변을 거닐거나 두무진을 구경하고, 사곶 해수욕장 사진을 찍기만 하는 등 유명한 곳들만 골라서 돌아다니신 엄마랑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경치가 좋은 곳보다는 재미있는 곳에 가기를 좋아하는 내가 백령도 여행 내내 지루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물범이 산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나도 그렇게 짜증 안 냈을 거 아니야!”
아쉬운 마음에 괜히 안방을 향해 외쳐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지, 뭐.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했다. 물개나 물범 같은 해양 동물들은 외국에나 사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점박이 물범 서식지가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다녀온 백령도에 물범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텔레비전 속의 점박이 물범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수면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거나 하며 놀고 있었다. 동물원의 작은 풀장이 아닌,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물범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인터넷을 켜고 백령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 물범의 숫자도 점점 줄고 있어서, 환경단체에서 점박이 물범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무진에 갔던 사람들이 가끔 바위 위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 물범을 육안으로 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점박이 물범의 매력에 푹 빠진 뒤였다. 어린 아기 같은 얼굴의 물범은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순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도 백령도 앞바다라고 한다. 게다가 심청이를 감싼 연꽃이 걸렸던 바위인 연봉 바위도 있는데 이 바위는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활짝 핀 것처럼 생겼다고 한다. 연봉바위에 걸리기 전에 연꽃에서 떨어진 연밥이 흘러들어 연꽃이 피게 된 마을인 연화마을까지, 백령도는 점박이 물범의 섬이면서 심청이의 섬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일주일 내내 조른 결과, 다음 달에 다시 백령도에 가 보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심청이의 전설과 신비로운 점박이 물범을 모두 마음속에 담고 올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얀 날개 섬이라는 뜻인 백령도. 이 섬의 이름에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백령도의 진가는 백령도 이야기를 모두 안 뒤에나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년째 열애중이라니.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을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견하지는 순간이다. 말이 6년이지 꽃다운 시절의 기억이 온통 한 남자와의 기억으로 빼곡하다는 것이다. 사진첩 빼곡히 둘이 찍은 사진들이고 그 속에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친구들은 저 부부는 언제 갈라서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 하지만 그것도 다 풍경처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리라.
2월 14일 남자친구의 생일이자 밸런타인데이인 겹경사의 날. 너는 매년 불공평하다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남자친구의 생일선물과 동시에 초콜릿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장을 보러 나섰다.
“야, 너네는 아직도 이런 거 주고받니? 이젠 이런 것쯤 그냥 넘어가도 될 때 아니야? 무슨 사귄지 100일, 200일 된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 오래 사귀면 뭐 연애감정도 없는 줄 알아? 우리도 다 이런 거 주고받으면서 하하 호호 하거든?”
최고로 예쁜 모습에 초콜릿이랑 선물까지 준비했다. 함께 지나온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차곡차곡 쌓이는 기억들이 사진첩에 남은 사진들처럼 선명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많이 성장해있는 모습에 가끔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지금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고 손을 잡으면 따뜻하고 편했다. 가끔은 풋풋했던 대학시절 이름만 불러도 얼굴이 빨개지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넌 언제나 특별한 날 우리가 갈 곳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나 오늘 어때? 예뻐? 이거 네가 만난 지 4년 될 때 사준 원피스잖아. 어때?”
“여전히 예뻐.”
남자친구는 이렇게 참 세심했다. 그냥 예쁘다고 했어도 물론 좋았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만나자고 한 거야? 난 오늘 하루 종일 만나서 놀려고 시간 다 비워놓고 기다렸는데. 혹시 나 몰래 어마어마한 이벤트라도 준비한 거 아니야?”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차가 세워진 곳에는 정말 화려한 동화 속 세상처럼 온통 반짝이는 불빛이 가득했다.
무지개, 하트, 나무들은 화려한 불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멋져. 정말 아름답다.”
불빛으로 물든 놀이공원 곳곳에는 지난 6년간 함께 했던 시간을 꺼내 보여주기라도 하듯 둘이 찍은 사진들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만나고 처음 싸웠다가 화해한 날, 남자친구가 말없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던 날, 처음으로 공포영화보고 펑펑 울던 날, 내가 준 선물 받고 좋아하는 네 모습 등 평범하다고 느꼈던 하루하루가 특별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지난 6년이라는 시간이 덩달아 특별해지는 느낌이었다.
남자친구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불빛으로 가득한 회전목마 앞이었다.
“우리 결혼하자. 네 말대로 우리 벌써 6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지내왔잖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주변을 밝히는 불빛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꺼져있던 불빛이 다시금 환한 빛을 받는 듯했다.
남자는 장미꽃 한 다발을 내밀었다.
“반지는 내가 알아서 찾으면 되는 건가?”
손을 맞잡으며 힘차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나는 지금 마른 풀을 엮어 만든 움집 앞에 있다. 거대한 버섯을 말려둔 것 같은 모양의 움집 안에서, 금방이라도 온몸에 진흙을 묻힌 원시인 하나가 기다란 창을 들고 나올 것만 같다. 움집 안에서는 바싹 바른 여자 하나가 떨고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곰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 말이다.
“엄마, 다른 데로 좀 가자니까요? 나 숙제하려면 사진 많이 찍어야 한단 말예요.”
옆에서 아들이 몇 번이고 옷을 당기는데도 나는 그 움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시간과 운명의 인과관계를 다룬 영화였는데, 다른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우울증에 걸린 여주인공을 지키는 주인공의 모습이, 곰으로부터 아내를 지키는 원시인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원시 복장 차림의 여자에게 이제는 곰이 없다고 되뇌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오래도록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초등학생인 아들이 기행문을 써야 한다며 나를 졸랐다. 가까운 곳에 무엇이 있나 보았더니, 하필이면 그게 또 선사유적지였다. 나는 영화 속의 그 장면이 꿈에도 나오더니, 이제는 내가 선사유적지를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원시인과 내 사이에 운명의 끈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했었다.
아들이 다시 내 옷자락을 당겼다. 알았어, 알았어. 나는 못이기는 체 걸었다.
아들을 낳고, 나는 꽤 길게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눈앞에 내 몸에서 나온 아이가 있는데도 몸속이 비어버린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울고, 짜증을 냈으며, 사소한 일로도 남편과 크게 싸웠다.
몇 년이 지나, 우울증은 모두 나았지만 나는 남편을 잃었다. 그 동안 쌓여 온 앙금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던 남편은 두 달이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없는 곰을 두려워하며 움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아들은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처음 보는 원시인들의 모습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움집 앞 여기저기에 사냥 도구를 만들거나, 잡아 온 사냥감을 굽고 있는 모습들의 황동상들이 서 있었다.
“엄마! 저것 좀 봐요!”
아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나무 막대를 들고 남자에게 사냥법을 배우고 있는 어린 원시인의 모습을 한 황동상이 서 있었다. 아들은 바닥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더니, 그 모습을 똑같이 흉내 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했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는데, 남자 원시인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 원시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란 어쩌면 저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먼 옛날, 선사 시대에 살았던 나도 움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나는 이제 곰을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의미 모를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보낸 문자였다. 잠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휴대전화에 찍힌 정다운 발신자명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나는 남편의 문자를 보고 울었다. 나는, 나의 움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십 분만 일찍 깨워도 하루 종일 짜증을 내는 나이지만, 오늘만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분주히 움직였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불자이시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일 년 중 딱 하루, 부처님 오신 날만큼은 내게도 특별한 날이다. 평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절에 다니시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초파일에만 이른 아침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범어사에 가신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째 범어사 가는 길에 동행하고 있다.
내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니, 오래되었다면 오래 된 이야기다. 친구와의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도시락을 싸 들고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나섰는데, 그 곳에서 꿈속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기마다 보랏빛 포도송이가 매달린 신비한 나라에 가는 꿈을 종종 꾸었다. 산자락 한 귀퉁이로는 맑은 샘물이 솟고, 그 안에는 자잘한 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큼직큼직한 바위들 사이로, 거대한 나팔꽃처럼 굵직한 나무줄기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그 모습에 반하여, 하루는 꿈에서 깬 뒤에 그 숲의 모습을 남몰래 크레파스로 그려 두었었다.
몇 년 뒤, 어머니께서 그 스케치북을 발견하시며 이 숲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스케치북을 보시고는, 어머니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요 녀석, 여기 갔던 걸 기억하고 있네? 아주 코흘리개일 때 데리고 갔었는데.”
그랬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갔었던 범어사의 등나무 숲이 꿈속에 나왔던 것이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연보랏빛 등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포도나무 숲이라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었다고 한다.
“정말 괜찮겠니? 이따가 엄마랑 할머니랑 같이 가지 그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지만,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내가, 어머니의 눈에는 언제까지고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자꾸만 나를 돌아보시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범어사로 올려 보내고,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등나무 숲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안개가 짙었다. 등나무 꽃이 구름처럼 핀다 하여, 이곳을 등운곡(藤雲谷)이라고도 부른다 하였는데 안개와 등나무 꽃이 한 군데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신비로웠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오래 걷지를 못하는 탓에 잠시 등나무 숲 한 복판에 주저앉았다.
“등나무는 지가 살려고 소나무 같이 좋은 나무를 감아 올라가서 다 죽이삔다 아니가.”
구불구불한 등나무 사이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쭉 뻗어 있는 모습을 보자, 작년 이곳에 왔을 때 들었던 이 동네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 날 집에 돌아가 방문을 잠그고는 숨을 죽여 울었다.
하나 뿐인 아들, 하나 뿐인 손자가 갑자기 사고를 당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되자, 어머니와 할머니가 내 다리를 낫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는 지팡이를 짚고는 도저히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검정고시라도 준비했으면 되었을 텐데,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했다. 결국 나는 대학에도 가지 못했고, 취직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 백수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만 하셨다.
저 멀리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단숨에 나를 찾아내어 달려오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 소나무 생각을 했다. 넘어지지는 않았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익살스럽게 내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내밀어 보였다.
“이 녀석이 있잖아요.”
할머니가 웃으며 끼어드셨다.
“녀석, 그 지팡이도 요 등나무로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누? 지팡이 중에서는 등나무 지팡이가 최고지. 옛날에 신선들도 다 등나무 지팡이 짚고 다녔다잖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소나무를 죽이는 등나무가 아닌, 다른 이들이 짚고 일어설 수 있는 등나무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에는 포도송이처럼 보였던 등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었다. 해가 지면 범어사 안에는 등불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저도 꽃을 피울게요, 어머니.”
어머니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엔 항상 ‘후’하고 심호흡을 했다. 마치 일련의 의식 같은 느낌이었다. 벌써 몇 달째 같은 병실에 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앞에 서면 심장이 쿵쿵 뛰었고 손이 떨렸다. 두려움은 언제나 같은 공포를 안겨준다. 익숙해지지 않고 같은 자리에 맴도는 것 같았다.
“예쁜 우리 수진이. 깨어있었네? 엄마가 깜짝 놀래어주려고 했는데. 에이. 실패다!”
“킥킥, 어떻게 놀래 주려고 그랬는데?”
“음. 비밀이야. 다음에 수진이 자고 있을 때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머리 안 아팠어? 속은 안 아파? 토할 것 같으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한꺼번에 물어보니까 어지럽다. 헤헤. 오늘은 의사선생님이 치료 잘 받았다고 칭찬해줘서 별로 안 아픈 것 같아.”
“다행이네. 예쁜 우리 수진이.”
왜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에게 그런 못된 병이 찾아오는 걸까. 세상에 나쁜 짓 하면서 떵떵 거리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무 잘못도 없고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왜 이런 병이.
수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의사는 태어나도 세 달을 못 넘길 것이라 단정 지었지만 수진이는 어느새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수진이는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다.
병원에 입원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고 칭얼거렸다. 그런 수진이를 볼 때마다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슬펐다.
사람들은 미혼모가 낳은 아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아픈 아이에게 참 모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나이에 미혼모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나를 걱정하는 말들이었으나 그저 하나의 시끄러운 가십거리로 여기며 떠들어대는 말들도 많았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라거나 엄마의 발목을 잡은 귀찮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 수진이의 존재를 알았을 때 두려움이 컸다. 남자친구에게 말해야 할까, 부모님이 아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점점 배는 불러올 텐데.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지워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수진이에게 더욱 미안했다. 수진이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 그런 못된 말들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뒤면 수진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무슨 선물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어떤 선물이 받고 싶냐고 하면 자전거라고 할까봐 물어보지 못한 적도 있다. 작년 생일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아이에게 다섯 살이 되면 사준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수진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잠에서 깬 수진이의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다행이다.
“수진아, 우리 수진이 곧 생일이지? 엄마가 무슨 선물 사줄까? 자전거 빼고.”
“치, 작년에 자전거 사준다고 했으면서. 그런데 나 이제 자전거 안 갖고 싶어. 시시해졌어.”
“그래? 시시해졌어? 그럼?”
“음. 의사선생님한테 나 하루만 나갔다 온다고 허락 맡아줘. 그게 내 소원이고 선물이야.”
“나갔다 오고 싶어? 수진이 많이 답답했구나. 그런데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아직은 많이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어려울 것 같으니까 소원이라고 이야기 하지. 엄마도 참, 의사선생님한테 부탁해봐. 응?”
차라리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지.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 것일까?
“알겠어, 엄마가 한 번 말해볼게.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안된다고 하면 엄마도 몰라!”
“치. 알겠어.”
결국 의사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건 수진이었다. 아직은 안 된다고 하는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받은 일종의 휴가였다. 우리가 떠난 곳은 아주 커다란 우체통이 있는 곳이었다. 수진이는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비밀편지였다. 누구한테 쓰는지 뭐라고 썼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수진이는 활짝 웃었다. 편지가 언제 도착할지 궁금하다며 기대에 부푼 표정을 보였다.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큰 희망인 듯했다.
수진이는 생일 이틀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랑스럽던 아이가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아이가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먼저 떠났다. 병실에서 수진이의 물건을 챙기고 나서는데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꼬박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수진이가 입원했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모르는 주소로 편지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편지?
병원에서 보니 수진이가 우체통에 넣은 편지였다.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엄마랑 나랑 생일 똑같은 거 사실 나 알고 있었어. 엄마는 나 챙겨주느라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했지? 엄마랑 여기 오니까 너무 좋다. 이 편지가 내가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야. 어때? 좋아?
엄마, 내가 얼른 씩씩해져서 엄마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퇴원하면 소풍도 가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솜사탕도 사줘야 해! 이 편지가 언제 도착할까? 궁금하다. 사랑하는 엄마, 다시 한 번 생일축하해요. 엄마랑 똑 닮은 예쁜 수진이가.‘
천사 같은 수진이에게 편지가 왔다. 눈에서는 눈물이 한 없이 흘렀지만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수진이에게 답장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