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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걸은 지령이라, 예산의 ‘귀인’을 만나다


옛말에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 있다. 땅이 좋아야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이다. 예산이 내뿜는 좋은 땅의 기운 때문일까. 예산에서는 유독 ‘인걸’이 많이 났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명필가로 알려진 추사 김정희부터 항일운동가였던 수당 이남규와 매헌 윤봉길,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드높인 고암 이응로 등이 예산군에서 태어나거나 생활했고, 또 잠들었다. 지금도 예산군 곳곳에는 이들 ‘귀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추사의 고고한 기품이 서린 추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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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에는 조선 후기 대표 명필가로 알려진 추사 김정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추사고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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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사랑채 앞에는 추사가 직접 고안했다고 전해지는 해시계가 놓여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 실학자이자 ‘추사체’라는 고유의 글씨체를 남긴 명필가 추사 김정희 선생은 충남 예산 태생이다. ‘추사고택’은 그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될 때 하사받은 저택으로, 추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추사고택은 크게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추사의 영정을 모셔놓은 영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전형적인 중부지방 반가의 모습이며, 사랑채는 다시 큰사랑과 작은사랑으로 나뉜다. 사랑채 뒤에는 남향으로 난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ㅁ’자형이며, 양반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6칸 대청을 중앙에 두고 있다.

추사고택은 과거 한 차례 다른 사람에게 매매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는 하나, 다시 복원되면서 여전히 고고하고 단아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기둥에 붙어있는 주련은 추사의 글씨를 붙여놓은 것이며 이 밖에도 고택 곳곳에서는 추사가 직접 쓴 글씨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한다. 

 

윤봉길 의사의 애국정신이 느껴지는 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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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동상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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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윤봉길 의사 생가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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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가 4살부터 23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저한당(狙韓堂)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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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忠義祠)에는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의 의거로 잘 알려진 매헌 윤봉길 의사 또한 예산군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다. 윤봉길 의사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한학을 수학하였다. 19세 때인 1926년,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어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이후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애썼던 윤 의사는 1932년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른 뒤, 25세를 일기로 짧지만 강렬한 삶을 마무리한다. 그의 생애는 짧았으나, 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들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예산군에 자리한 충의사(忠義祠)와 생가인 저한당(狙韓堂)이다. 이곳은 윤봉길 의사가 4살 때부터 중국에 망명했던 1930년까지 살던 곳으로 저한당의 뜻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귀인’의 흔적들

구한말의 의병장 면암 최익현의 묘. 비록 살아서는 예산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이곳에 잠들어 인연을 만들었다. 

덕산면 사천리에 자리한 이응로선생사적지는 당대의 뛰어난 미술가로 알려진 고암 이응로 선생이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충남 홍성 출신의 이응로 선생은 과거 이곳의 ‘수덕여관’에서 머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옮겼다고 전해진다. 수덕여관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초가집 형태의 여관으로, 이응로 선생이 1944년 구입하여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ㄷ’자형의 초가집이 마당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며 소담한 농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술면 상항리에는 구한말의 항일운동가였던 수당 이남규 선생의 생가도 남아 있다. 그는 명성왕후의 시해사건에 격분해 벼슬을 그만두고 예산으로 다시 낙향하였으며, 을사조약 이후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며 위정척사운동을 행하다 의병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이 고택은 조선 인조 때(1637년) 건립된 것으로 충청남도유형문화제 제68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비록 생전은 아니지만 사후 예산에 잠든 귀인도 있다. 위정척사론으로 유명한 면암 최익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익현은 일제의 강요로 이뤄진 을사조약 체결 후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장으로 나섰으며 대마도에서 순국한 이후 논산시 노성면의 국도변에 묘를 썼는데 참배객들이 늘어나자 1910년 일본은 일방적으로 현재의 자리로 이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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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명필가 추사 김정희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매헌 윤봉길 의사, 구한말 의병장이자 항일운동가였던 면암 최익현과 수당 이남규, 한국미술의 거장 이응로 선생까지. 충남 예산군에서 많은 ‘귀인’들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트래블투데이 김혜진 취재기자

발행2019년 11월 3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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