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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성지, 명동성당


명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하나인 명례방(明禮坊)에서 유래하였다. 명동이 금융과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충무로 일대가 상업지구로 개발되면서부터였다. 해방 후 산업이 발달하고, 60~70년대를 지나면서 명동은 우리나라의 중심 상권을 형성하고 유행의 메카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며 홍대 주변과 강남지역의 개발은 명동이 가지고 있었던 찬란한 영광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여전히 명동은 서울에서 매우 붐비는 곳 중 한 곳이지만 자세히 보면 유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혹은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명동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동안에도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킨 것이 있다. 언제나 변함없이 명동과 한국 천주교회를 상징하는 곳. 한국 천주교 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통칭 ‘명동성당’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본당

우리나라 최초로 가톨릭 본당이 세워진 명동성당은 천주교회의 성지이자 상징이다.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서울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성당이며 우리나라의 천주교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광해군 때였다.

당시 명례방(명동)은 천주교가 유입된 이후 처음으로 천주교 신도들의 교회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었다. 통역관으로 일하던 김범우를 비롯하여 이승훈, 정약전 삼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이곳에서 종교 집회를 가졌다. 또 명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한국에 들어와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명동 성당 자리는 초기 천주교 신도이자 순교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며 천주교 박해가 중단되자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가 성당 터로 매입했다.

1887년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통상조약에 체결된 후 1892년에 공사에 착공했으나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6년 후인 1898년에야 비로소 명동성당이 준공된다.

정국혼란과 전쟁 등 정치경제적 상황이 불안한 탓도 있었지만 실제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청나라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청일전쟁 당시 모두 귀국한 탓이기도 하다.

한편 명동성당은 1839년 기해교난, 1846년 병오교란, 1866년 병인박해 때의 가톨릭 순교자 유해가 모셔진 성지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여러 가지 의미가 깃든 '한 번쯤 꼭 찾아볼 법한 성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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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의 내부에 들어서면 그 웅장함에 거룩한 기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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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이자, 최초의 순수 고딕양식 건축물이다. 또 한국 근대건축사에 있어서 가장 규모가 큰 고딕양식 건축물이기도 하다. 준공 당시 ‘뾰족집’이라 불리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매일 많은 구경꾼이 몰려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면은 라틴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가 23m, 첨탑의 높이는 45m다.

명동성당은 고딕양식의 정수(精髓)라 불리는 석조가 아닌, 불에 구운 벽돌로 쌓아 축조한 연와조 건축물이다. 때문에 유럽 등 다른 고딕양식에 비해 장중함은 다소 덜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건축 기술을 최대한 살려 벽돌이라는 재료로 석조의 고딕양식의 세부적인 부분을 성공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명동성당의 모든 창은 아치형이고 중세양식인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있다. 명동성당의 내부에 들어서면 그 규모와 깊이의 웅장함에 절로 거룩하고 경건한 기분이 든다. 정면 중앙의 제대에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 그 좌우로는 예수 성심상과 분도 성인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도들의 초상과 성인화가 장식돼 있다. 

 

명동성당, 종교를 넘어 우리나라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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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서는 곳곳에 사도들, 성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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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은 관광지일 뿐 아니라 종교시설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명동성당은 또한 암울했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 등불이 되어주기도 했다. 70년대와 80년대, 많은 시국선언들이 잇달아 선언된 곳이 명동성당이며 고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으로 은신한 많은 청년들의 보호자로 나서기도 했다. 천주교의 성지를 넘어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한 명동성당은 종교를 넘어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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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본당이자 아름다운 고딕양식을 자랑하는 명동성당! 종교를 떠나 천주교회와 우리나라에 등불이 되어준 명동성당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명동성당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7년 12월 2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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