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지역호감도

호국보훈의 성지, 국립대전현충원

살기 좋은 도시, 첨단 과학의 도시, 교통의 요충지 등 ‘대전’이라는 도시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여기 대전 앞에 붙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있다. 호국보훈의 성지가 그것이다. 대전 유성구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임무 수행 중 안타깝게 순직한 군인과 공무원 등 나라를 위해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이들을 모신 국립대전현충원이 자리 잡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을 조성하게 된 배경

우리나라 두 번째 국립묘지인 국립대전현충원은 6만 기 이상을 안장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돼 있다.

흔히 ‘현충원’하면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국립대전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의 분소로 출범하였다. 개원 이래 20년 동안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와 한국전쟁 때의 전사자가 안장되면서, 서울현충원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군에서는 1974년 중부지역에 새로운 국군묘지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1975년경부터 국립묘지 부지를 위한 답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때 충남 대덕군(현 대전 유성구)이 제2국립묘지 부지로서 최종 결정되었다.
 
그렇게 1979년 국립묘지관리소 대전분소로 출범한 국립대전현충원은 1991년 국립묘지대전관리소로 승격한 뒤, 1996년 현재의 국립대전현충원이라는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국립대전현충원의 안장 대상은 군인 및 군무원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자,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 된 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임무수행 중 전사․순직한 경찰관, 소방관,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자 등이며, 대한민국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도 안장 대상에 포함돼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의 보훈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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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문 앞에는 예로부터 충신과 효자를 보호해준다는 호랑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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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현충탑의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은 한국의 전통미와 세련된 현대미의 조화, 자연의 보존, 서울현충원의 미비점 보완, 또 전 묘역의 호국공원화 등 크게 네 가지 기본 방향을 세워 조성하였다. 부지만 해도 약 100만 평에 이르며, 안장 능력은 약 6만 3천 기 정도다. 이곳에는 나라를 위해 숭고한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장군, 장교, 사병 등이 안장돼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먼저 참배를 드리는 현충탑과 현충문이 눈에 띈다. 현충탑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추앙하기 위해 세운 탑으로 국립대전현충원을 상징하고 있다. 1979년부터 1983년에 걸쳐 4년여에 걸쳐 건립되었으며, 길이 110m, 높이는 43m다. 이 현충탑은 이일영 남산미술원장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편, 현충문은 현충탑으로 들어가기 위핸 관문으로 안내 요원이 상주하여 참배객에게 안내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현충관은 호국영령을 위한 영결식과 안장식 등 각종 행사가 거행되는 곳이며, 봉안관은 유해를 묘소에 안장할 때까지 임시 안치하는 공간이다. 보훈미래관은 순국선열들의 업적을 추모하는 교육 공간이며, 그 외에도 호국분수탑, 천마웅비상, 23개의 호국경구비 등 다양한 조형물이 현충원 곳곳에 설치돼 있다. 한편, 대전현충원에는 한국 최초의 영화인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 감독,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 ‘어린이날 노래’ 등 동요의 작사를 맡은 윤석중 작사가 등이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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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마다치 않았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보세요.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2년 06월 06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