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연한 시골의 향수를 담은 홍난파 생가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은 새벽에 출근을 준비하는 직장인, 입시경쟁에 치여 창문 밖을 바라볼 새도 없이 책상 위 교과서만 들여다보는 학생, 매년 늘어가는 실업률을 바라보며 한숨 짓는 취업준비생 등 지금 현대인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따사로운 햇빛이 나날이 강렬해지고 있는 요즘, 하루만큼은 어깨를 짓누르던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햇빛을 온 몸 가득 느끼며 문학적 감성을 충전하러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조용하고 한가한 풍경 속에 위치한 홍난파 생가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도시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내 서양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이 멜로디. 옛날의 정겨운 감성을 전해주는 이 곡, 고향의 봄을 작곡한 사람은 바로 홍난파이다. 홍난파는 대한민국 역사에 큰 상처로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시대 다양한 문예활동을 펼친 음악가이다. 그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나 근대 이후 최초의 전문음악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후 일본을 왕래하며 음악적 소양을 쌓는 것은 물론 봉선화, 애수의 조선 등 많은 음악작품을 발표하였다. 그가 대한민국의 음악가로서 이름이 불리는 이유는 한국적 선율을 반영해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경향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의 작품경향은 1930년대 이후 한국창작음악의 패턴을 정립시킨 작곡가로 평가받는 데 한 몫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몇 년 전 밝혀진 그의 친일행적 때문에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그의 업적을 기린 난파음악상은 매년 출중한 음악가에게 수여되고 있다.

길가 옆 아담하게 위치해 있는 홍난파의 생가이다.
홍난파의 생가는 사람의 흔적들로 때 묻지 않은 한적한 시골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 그의 생가는 멸실되었지만 1986년 목조초가로 복원되어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집을 생각하면 음악가라는 이미지 덕분에 좋은 집에 살지 않았을까하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그의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 다르지 않은 초가집일 뿐이다. 소박한 울타리와 작은 앞마당, 그리고 울타리 안 큰 나무 한 그루를 가진 'ㄱ'자 모양의 홍난파 생가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든다. 단출한 모습의 대청마루 벽쪽에는 그의 이전 생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두었으며 사진 속 당시 홍난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외 부엌이나 집 주변은 특별한 가재도구가 없어 다소 휑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가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은 그 허전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생가의 또 다른 매력, 가슴이 뻥 뚫리는 주변경관

홍난파 생가의 앞마당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 탁 트인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생가 주변은 시골인 만큼 풍성한 자연의 모습들로 가득하다. 홍난파 생가의 앞마당 입구에 서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바라보면 어린 손자를 자전거 뒤에 태운 채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다. 그렇게 산들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한참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어느 새 나의 도시생활은 잊혀진지 오래일 것이다. 파릇파릇한 색의 식물들로 주변이 물들어가고 있는 요즘. 답답한 도시를 떠나 이곳을 한번 찾아가 본다면 홍난파의 생가를 살펴보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광활한 자연들, 맑고 상쾌한 바람들로 지끈했던 머리와 뻐근한 몸을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트래블아이 한마디
'퐁당퐁당', '햇빛은 쨍쨍' 이라는 노래 다들 아시죠? 이 노래도 홍난파의 작품이랍니다. 생가를 찾아가기 전 홍난파의 작품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2년 01월 25 일자